마지막홀 '8m 끝내기 버디쇼'…김세영, 17억원 '잭팟 드라마'

입력 2019-11-25 17:24   수정 2020-02-23 00:02

25일(한국시간) 열린 CME그룹 투어챔피언십 최종 4라운드 18번홀(파4). ‘빨간 바지의 마법사’ 김세영(26)의 8m 버디 퍼트가 오른쪽으로 흐르더니 홀 안으로 들어갔다. 우승을 결정한 150만달러(약 17억6400만원)짜리 퍼트. 못 넣었다면 마지막 세 홀에서 3연속 버디를 기록하며 쫓아온 찰리 헐(23·잉글랜드)과 연장전을 치러야 했다. 연장에서 졌다면 상금은 48만달러(약 5억6400만원)로 쪼그라들 수 있었다. 경기를 지켜보던 해설위원은 “김세영 우승”이라고 외쳤다. 지켜보던 동료들도 두 손을 들고 펄쩍 뛰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드라마 같은 상황. 평소 같으면 클럽을 멀리 던지며 포효했을 김세영이지만, 이날은 주먹을 가볍게 쥐고 흔들 뿐이었다. 리더보드를 뒤늦게 확인한 김세영은 그제서야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김세영은 “마지막 홀에서는 투 퍼트만 해도 되는 줄 알았다. 믿을 수 없다”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블록버스터에서 빛난 ‘승부사 DNA’

‘승부사 DNA’가 다시 빛났다. 김세영은 이날 미국 플로리다주 네이플스의 티뷰론GC(파72·6556야드)에서 열린 대회 4라운드에서 버디 5개와 보기 3개로 2언더파 70타를 쳤다. 최종합계 18언더파 270타를 적어낸 그는 이날만 6타를 줄이며 뒤쫓아온 헐을 1타 차로 따돌렸다. 나흘간 선두를 지킨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 우리 돈으로 17억6000만원에 달하는 우승상금 150만달러가 그의 차지가 됐다. 메이저대회를 포함해 역대 여자프로골프 사상 가장 큰 액수다. 올해 US오픈 총상금 규모는 550만달러로 이번 대회보다 많았으나 우승상금은 100만달러였다. 김세영의 시즌 상금은 275만3099달러로 불어나 1위 고진영(277만3894달러)에 이은 2위로 수직상승했다.

김세영은 “한국에서 처음 우승했을 때 받은 상금이 10만달러 정도였다”며 “이번에 이렇게 큰 상금을 받은 만큼 의미있는 곳에 쓰고 싶다”고 말했다. 김세영의 우승으로 올 시즌 상금왕을 결정한 고진영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김)세영 언니가 우승해서 내가 상금왕을 했다. 밥은 내가 사야 하지만 (김세영) 언니 우승상금이 정말 대박”이라며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김세영은 우상 타이거 우즈(미국)처럼 빨간 바지, 검은 티를 마지막 날 즐겨 입는다. 이번에도 이 ‘드레스코드’로 시즌 피날레를 드라마로 만들었다. “빨간 바지만 10벌이 있고 대회를 통틀어 100번은 입은 것 같다”는 그가 ‘빨간 바지의 마법사’라고 불리는 이유다. 어릴 때부터 태권도로 다진 탄탄한 신체와 양궁 선수들을 돕는 스포츠심리학자에게 훈련받는 ‘강철 멘털’도 김세영의 강점이다.

2015년 LPGA롯데챔피언십에서 18번홀 칩샷 파로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간 뒤 연장전에서 샷 이글로 박인비(31)를 눌렀을 때도, 지난해 손베리크리크클래식에서 LPGA 역대 최다 언더파인 31언더파를 적어냈을 때도 그는 빨간색 바지를 입었다. 2015년부터 꾸준히 우승을 쌓아온 그는 또 한 번 빨간 바지를 입고 올 시즌 3승이자 투어 통산 10승 고지를 밟았다. 한국 선수로는 박세리(25승), 박인비(19승), 신지애(11승)에 이어 네 번째다. 아직 메이저 우승은 없다.

1~3라운드를 선두로 마친 김세영은 마지막 3개 홀에서 내리 버디를 뽑아낸 헐에게 공동선두를 내줬다. 17번홀(파5)에선 5m 버디 퍼트를 놓쳐 헐과 동타로 18번홀에 들어섰다. 그 홀에서 김세영의 두 번째 샷은 그린을 벗어나지 않았지만 홀 뒤쪽으로 흘렀다. 8m 남짓한 거리에 오른쪽으로 휘는 내리막 경사. 쉽지 않은 퍼트였다. 모두가 연장전을 떠올렸고 헐도 연장전을 준비했다. 김세영의 퍼터를 떠난 공은 그러나 긴 포물선을 그리며 천천히 굴러가더니 홀 왼쪽으로 빨려들어갔다.

‘K골프’ 징검다리 15승 공식 이어가

김세영의 우승으로 ‘K골프 군단’은 LPGA투어에서 올 시즌 15승을 합작했다. 15승은 2015시즌, 2017시즌에 이어 한 시즌에 거둔 가장 많은 승수다. 미국이 6승으로 뒤를 이었다. 3승을 거둔 일본과 호주가 세 번째로 승수가 많았다.

내용 면에선 2015시즌, 2017시즌을 압도한다. 2015시즌에는 뉴질랜드 동포 리디아 고(22)가 상금왕과 올해의 선수를, 2017년에는 렉시 톰프슨(24·미국)이 평균타수 1위를 기록했다. 올해는 고진영이 상금왕과 올해의 선수, 평균타수 등 핵심 타이틀을 휩쓸었고 김세영이 CME글로브레이스를 1위로 마치면서 주요 타이틀을 모두 한국 선수가 독식했다. 또 김세영이 우승상금 150만달러를 더해 상금 2위로 올라섰고 ‘핫식스’ 이정은(23)이 3위(205만2103달러)를 기록하면서 시즌 상금 200만달러를 넘긴 세 명의 선수가 모두 한국 선수로 채워졌다.

김세영의 우승으로 2020년 도쿄올림픽 출전 기준이 되는 세계랭킹 싸움도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지난주 세계랭킹 11위였던 김세영은 새로 발표되는 명단에서 ‘톱10’ 진입이 유력하다. 도쿄올림픽 골프는 내년 6월 기준 세계랭킹으로 15위 내 한국 선수 중 상위 4명이 출전할 수 있다. 김세영은 내년 목표로 “올림픽 출전과 (올해보다 1승 더 많은) 4승을 거두고 싶다”고 말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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