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 쓰고 후드티셔츠 입은 중국인을 노려라

입력 2019-12-28 08:39   수정 2019-12-28 10:34


# 25일 오후 6시. 크리스마스에도 서울 모 면세점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매장 안에 들어가 보니 '여기가 한국이 맞나' 싶을 정도로 중국인 손님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한 젊은 중국 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몇십 분째 영상통화를 하며 여러 벌의 옷을 들었다 놨다 했다. 어설픈 중국어와 함께 온갖 손짓과 몸짓을 동원해 누구와 통화하냐 물어보았다. 친구들이 사달라고 부탁을 해서 전화를 하며 실시간으로 옷을 찾고 있는 거란다. K패션 호황에 이른바 '대리 구매'까지 하는 것이다.

한때 높은 수익으로 '황금알 낳는 거위'라 불렸던 면세점들이 올해 크게 휘청였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국내 면세점 매출은 20조원을 훌쩍 넘기며 역대 최고 기록을 세우며 외형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그런데 정작 올해 실적 성적표는 '유명무실'이라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급기야 올 한 해에만 대기업 두 곳이 힘들게 딴 시내면세점 면허를 수익에 대한 우려로 반납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2000년 AK면세점 이후 19년 만의 일이다. 면세점 업계는 '힘들다' 아우성인데 그 속에선 '방긋' 웃고 있는 품목이 있다. 바로 중국인들을 겨냥한 K패션이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 사상 최대 실적낸 면세점…수익성은 '글쎄'

국내 면세업계의 매출은 중국인이 50~90%를 차지하는 보기 드문 구조로 되어 있다. 중국 정세에 따라 매출이 들쑥날쑥 한다. 국산 제품에 대한 중국인의 애호도는 여전히 높지만, 올해 역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여파 등으로 중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전반적으로 줄어 수익이 줄었다.

그 가운데 올해 면세점에서 주문받은 물품만 사들이는 중국 보따리상(따이궁)을 유치하기 위한 업계 간 출혈 경쟁이 격화됐다. 따이궁들을 면세점으로 인도해주는 대가로 여행사에 지불하는 송객수수료도 크게 증가해 내실을 흔들었다.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관세청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시내면세점이 여행사나 가이드에 지출한 송객수수료는 2015년 5630억원, 2016년 9672억원, 2017년 1조1481억원, 지난해 1조3181억원으로 급증했다.


면세점의 외형은 확대됐지만 면세점의 수익성은 정작 낮아졌다. 이전 10%대 중반이었던 송객수수료가 최대 40% 수준까지 크게 늘고 중국인 관광객들을 유치하려는 마케팅 비용이 확대돼서다. 3분기 호텔신라의 면세 부문 매출은 시내면세점에서만 37% 늘어난 8564억원, 공항 면세점까지 합치면 사상 최대인 1조3386억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해당 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4% 감소한 451억원에 그쳤다.

롯데면세점은 3분기 매출 1조5692억원, 영업이익 893억원을 기록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20%, 22% 증가했다. 반면 영업이익은 최대 분기 실적을 기록했던 1분기와 비교하면 3분기는 16% 감소한 수치다. 신세계면세점의 3분기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5.9% 성장한 7888억원, 영업이익은 106억원을 기록해 지난해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했다. '면세업계 톱3'라는 신라 롯데 신세계면세점의 실적도 썩 좋은 편이 아닌데 시중 중소 면세점은 더욱 사정이 어렵다. <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 9월달부터 중국인 관광객↑…면세점 내 K패션 '성황'


올해 4분기 들어 중국인 입국자가 조금씩 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27일 신한금융투자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중국인 입국자의 수는 50만5369명으로 전년보다 25% 증가했다. 9월과 10월에 이어 중국인 입국자가 예상치를 뛰어넘는 모습이다. 관광목적 중국인 입국자도 42만6849명으로 전년보다 30.3% 늘었다.

한국을 찾는 중국인들이 늘며 이들의 눈을 사로잡은 K패션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면세점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올 1~11월 롯데·신라·신세계 등 서울 시내 주요 면세점 내 K패션의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 대비 최대 세 배 정도까지 늘었다. 그간 중국인들이 많이 찾았던 K화장품과 함께 K패션이 양대 산맥으로 떠오른 셈이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징둥닷컴의 '2019년 중국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젊은 세대는 후드티셔츠를 입고 모자를 즐겨 쓴다. 이처럼 간편한 옷 중에서도 큰 브랜드 로고가 박힌 옷을 찾는다. 디자인과 장식적 요소는 최소화하면서도 자신이 걸친 물품의 가치를 드러낼 수 있는 이른바 뉴미니멀리즘 의류들이 인기라는 얘기다. 그리고 이를 잘 구현해낸 K패션은 중국인들의 선택을 받았다.


면세점에서 특히 주목받는 브랜드는 널디·MLB·휠라 등 토종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다. 국내 스트리트 패션은 주요 상품의 가격대가 100달러에서 300달러 수준으로 고객 접근성이 좋다. 그러면서도 독특하면서도 간단히 입을 수 있는 K 스트리트 패션이 젊은 중국세대들에게 어필된 것으로 보인다.

널디는 올해 모든 면세점에서 대박을 터뜨렸다. 특히 신세계면세점에서 전년 대비 판매량이 3.5배 이상 늘었다. MLB를 총괄하는 F&F 관계자에 따르면 MLB 브랜드 상품 매출은 국내 면세채널 실적 덕에 올해 3분기 전년동기대비 약 60% 상승했다. 실제로 올해 3분기 F&F의 연결기준 누적 매출은 전년동기대비 38.1% 상승해 5807억원을 기록했다. 휠라코리아의 중국 사업을 맡고 있는 '풀프로스펙트'의 내년도 매출은 올해보다 30% 늘어난 1조6091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K패션의 인기에 발맞춰 면세점 역시 중국인 손님을 모시기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다. 신라면세점은 판매하는 국내 캐주얼 브랜드 수를 지난해 110개에서 올해 140개로 늘렸다. 매출도 30% 이상 늘었다. 신세계면세점 관계자는 "K패션의 매출이 올해 전년 대비 175% 늘었다. K패션 입점 브랜드 수도 전년 대비 80% 증가했다"며 "올해는 아크메드라비, 피브레노, 에디하디 등 새로운 K패션 브랜드를 발굴해 K패션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고 말했다.

배성수 한경닷컴 기자 baeb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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