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10년…기업할 의욕 살려야 '도약의 문' 열린다

입력 2019-12-31 16:27   수정 2020-01-01 00:39


산업보국(産業報國). 산업화 시대를 관통한 기업인들의 정신이었다. 먹고살기 힘든 시절 허허벌판에 공장을 세워 일자리를 창출하고, 수출로 외화를 벌어들여 한국 경제를 일으켜 세우겠다는 게 그들의 꿈이었다. 기름때 묻은 야전점퍼를 입은 채 공장을 누비고(고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해외 출장 중엔 공항에서 쪽잠을 자기(고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일쑤였다. 그렇게 산업 현장을 떠받쳤다.

그리고 한 시대가 지났다. 어김없이 새해(庚子年)가 밝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기업인들은 여전히 ‘경제 전쟁’의 최전선에 서 있다. 그들을 둘러싼 기업 환경은 녹록지 않다. 미·중 무역분쟁, 한·일 경제전쟁 등 숱한 악재에 파묻혀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기업인들의 기업할 의욕이 꺾여 있다. 기업인을 죄인 취급하는 정치권과 ‘규제 폭탄’을 쏟아내는 정부에 짓눌려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울분을 참다못해 벽에다 머리를 박고 싶다”(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는 호소가 터져 나오는 지경이다. “반도체와 조선, 자동차산업 등을 일궈내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공(功)은 사라지고, 어느새 과(過)만 부각돼 손가락질받는 처지가 됐다”는 한탄마저 흘러나온다. 한국 기업이 맞닥뜨린 ‘현실’이다.

외국은 딴판이다. 세계 각국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법인세율 인하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에 이어 중국까지 감세 대열에 동참(법인세율 25%→20%)했다. 인공지능(AI), 드론, 자율주행 등 미래 산업을 키우기 위한 규제 완화 방안도 경쟁적으로 쏟아낸다. 기업을 마음껏 뛰게 하고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서다.

한국경제신문은 경자년 새해를 맞아 주저앉은 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새로운 10년을 준비하기 위해 기업을 가로막고 있는 ‘5적(賊)’부터 없앨 것을 제안한다. 툭하면 공장을 멈추도록 한 화학물질관리법 등 ‘그물망 규제’부터 걷어내야 한다. 탈(脫)원전, 소득주도성장, 지배구조 개편 압박 등 ‘일방통행 정책’도 폐기해야 한다. 준비 안 된 주 52시간 근로제, 해직자의 노동조합 가입 허용 추진 등 ‘친(親)노조 기조’도 바로잡아야 할 대목이다. 뿌리 깊은 반(反)기업 정서와 ‘타다 금지법’ 등 ‘표(票)퓰리즘 정책’도 버려야 할 구태로 꼽힌다. 매번 기업 발목을 잡는 ‘4류 정치’와 ‘지역 이기주의’도 마찬가지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우리 경제가 대내외 악재를 극복하고 새로운 도약에 나서기 위해선 기업을 제대로 뛰게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기업 투자·채용 늘리려면 그물망 규제 혁파·경제정책 대전환을"
'기업 5賊'부터 없애자


무기력증에 빠진 한국 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나 한 단계 도약하려면 기업들을 제대로 뛰지 못하게 하는 ‘족쇄’부터 풀어줘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조언이다. 기업을 옭아매는 ‘그물망 규제’와 뿌리 깊은 반(反)기업 정서, 정부와 정치권의 ‘친노조·일방통행식 정책’ 등을 없애야 기업 투자가 살아나고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것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 그물망 규제부터 걷어내야

한국 기업들을 가로막는 ‘대못’ 규제는 적지 않다. 개인정보 활용을 금지하는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법에 규정된 규제를 풀기 위해 지난해 개정 법안이 상정됐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해를 넘겼다.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각종 정보를 활용할 수 없다. 네이버가 원격의료 사업을 한국이 아니라 일본에서 시작한 이유다.

이혁우 배재대 행정학과 교수는 “미국처럼 규제가 한 개 새로 생기면 그 두 배에 해당하는 기존 규제(비용 기준)를 없애는 규제총량관리제도를 도입해볼 만하다”며 “미국에선 2017년부터 2년여간 17개의 규제가 생겼지만, 이 제도 덕분에 243개 기존 규제가 폐지됐다”고 말했다.

(2) 현장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정부의 ‘일방통행식 정책’도 기업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제 강행, 화학물질 관련 규제 강화 등 경제와 산업 전반에 큰 부담을 지운 사안들을 결정할 때 기업들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

규제에 숨이 막힌 기업들은 입을 닫은 채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업 실적 악화의 상당 부분은 정부의 규제 정책에 따른 비용 증가 때문”이라며 “정책을 도입하기 전에 현장의 목소리를 잘 듣고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3) 기울어진 노사 운동장 바로잡아야

노동조합 세력에 기울어진 노사 환경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기업들 사이에서 크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을 대상으로 평가한 결과 한국의 노동시장 경쟁력 순위는 27위였다. 노동유연성 부문에선 34위로 거의 꼴찌였다.

OECD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7년까지 파업으로 노동 손실이 발생한 날은 한국이 연 42.3일이었다. 미국(6일)과 일본(0.2일) 등에 비해 훨씬 많았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일자리전략실장은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직장점거 금지 등을 통해 노사가 대등하게 협의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4) 반기업정서 해소로 기업 의욕 되살려야

일부 대기업의 잘못 등이 부풀려지면서 생겨난 반기업 정서를 정부가 나서 악화시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기업을 ‘적폐’로 몬다거나, 기업인을 죄인 취급하는 행태는 국가 경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반기업 정서는 규제를 양산해 기업 생산성과 경쟁력을 떨어뜨려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다”며 “다만 기업인들도 편법, 위법 행위를 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비전이 있는 국가일수록 반기업 정서가 낮다”며 “반기업 정서는 기업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5) 정치권은 ‘표(票)퓰리즘’ 지양해야

‘타다 금지법’(여객자동차운수법 개정안)은 정치권이 조장한 대표적 기업 환경 악화 사례로 꼽힌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이제 정치가 제발 경제를 놓아달라”고 호소한 이유다. 황인학 한국기업법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선거철만 되면 정치적 이득을 위해 시장을 이용하려는 정치인들이 문제”라며 “정치권이 나서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국 경제가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창민/김재후/박상용 기자 cm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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