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논설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코로나가 일깨워준 교훈들

입력 2020-02-25 09:55   수정 2020-02-25 13:11


센 놈이 왔다. 모습을 드러내고 다시 숨은 듯 하더니 순식간에 덮쳐왔다. 지난 24일 하루 코스피 시가총액을 67조원이나 빼가고, 미국 다우지수를 1000포인트 이상 끌어내린 걸 보면 '진짜 센 놈'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생명체라기에도 어설픈 단백질과 핵산 덩어리에 이렇게 국가기능이 속수무책으로 마비될 줄이야. 그것도 한 달 만에.

주말을 지나 4배로 불어난 코로나19 확진자수는 이제 네 자릿수가 임박했다. 일본과 크루즈선 확진자를 합친 것보다 많고, 중국 일본 외에 세계 모든 나라들의 합계보다도 많다. 세계가 한국을 격리하고 있는 판이다. 중국의 '적반하장 훈수'만큼이나 정부의 무능과 오판에 체온이 오른 사람들도 많다.

언젠가는 물러갈 것이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지만 '진짜 센 놈'이 남길 상처와 후유증을 치유하는데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두고두고 2020년을 기억하고 이야기할 것이다. 바이러스가 일깨워준 교훈을 하나씩 짚어보자.

◆시작과 끝, 인간이 결정 못한다

바이러스의 시각에 보면 인간은 우습기 짝이 없다. 코로나바이러스만 해도 사스 메르스 등 다양한 변종으로 엄습하며 "만물의 영장? 웃기지 마라"고 비웃는 듯하다. 유발 하라리의 표현을 빌면 미생물들은 40억년간 유기체 적들과 싸운 경험을 축적했다. 반면 인간이 바이러스의 존재를 알고 대처하기 시작한 것은 고작 200여년 전(1798년 제너의 종두법)이다.

더 빨라지고, 좁혀지고, 밀집하고, 왕성해진 인간 세상은 바이러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증식 환경이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바이러스가 힘을 잃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속단은 금물이다. 전염병의 시작을 코로나 마음대로 했듯이, 끝도 코로나가 결정한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

'말 앞에 마음이 있고, 말 다음에 행동이 있다'는 격언이 있다. 지난 13일 문재인 대통령이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고 하자, 여당 수뇌부와 장관들은 앞다퉈 '한국이 방역 모범' 등 자화자찬을 늘어놨다. 전 정권의 메르스 대처와 비교하며 자랑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바이러스는 비웃기라도 하는 듯 '무한 증식' 되고 있었다. 불과 열흘 뒤 코로나19는 '심각' 단계로 격상됐고 이제는 대유행을 걱정한다.

'종식'이란 말 앞에 느슨해진 마음이, 그 말 다음에는 '별 거 아니다'는 해이가 있었던 셈이다. 오히려 문 대통령이 야당 대표시절 했던 말들이 부메랑처럼 되돌아오고 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는 성경 구절은 동서고금의 어떤 정권에도 예외가 없다. 변함 없는 것은 인간 본성이기 때문이다.

◆G2? 중국몽? 바이러스는 그런 거 모른다

중국이 세계 2위 경제대국이고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를 넘었다. 세계의 공장, 세계의 시장이란 타이틀에 중국의 위상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G2니, 중국몽이니 하는 것을 모른다. 위상이 높을수록 떨어질 때 더 아프다. 경제의 압축성장은 있어도 그 나라 정치 문화 관습 행동양식에서는 '압축성숙'이 있을 수 없다. 벼락부자 같은 '돈많은 무뢰한', '덩치 큰 중2' 같은 나라가 세계의 리더가 될 수 있을까. 우리는 그런 중국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철저한 숙고와 성찰이 필요하다.

◆최선의 백신은 겸손과 투명함이다

국민이 그나마 신뢰하는 것이 이 시간에도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들이다. 이런 영웅들을 격려하고 칭찬하는데 인색할 이유가 없다. 하루하루 초췌해지는 모습과 조근조근한 말투의 질병관리본부장이 아니었다면 이 정부는 더욱 욕을 먹었을 것이란 게 세간의 평가다.
과거 시행착오에서 배우고 익힌 우리의 의료진과 시스템은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결코 뒤쳐지지 않는다. 문제는 그 윗선의 의사결정자들이다. 그들의 아는 체와 좌고우면이 사태를 키웠다고 할 수 있다. 코로나보다 무서운 게 불안의 전염이다. 그러나 불안을 잠재울 최선의 백신은 언제나 겸손함과 투명함이다. 이제는 제발 전문가들의 말을 들으라.

◆'언택트 시대' 못 막는다

코로나 사태로 사람간 접촉을 기피하는 '언택트(untact) 소비'가 더 가속화될 것이다. 백화점 마트 면세점 등 오프라인 유통이 심각한 상황인 것과 달리, 온라인 소비는 폭발적으로 늘어 표정관리를 해야 할 판이다. 지난해 온라인 소비가 134조원으로 전체 소매판매의 21.4%를 자치했다. 해마다 약 20조원씩 불어나고 있다. 올 1분기 온라인 비중은 내수소비의 30~40%에 이를 수도 있다. 더 빨라질 언택트 시대는 자영업 몰락, 유통구조 재편, 대량 실업 등 크나큰 경제·사회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바이러스는 돌아온다(Virus will be back)

"지상의 모든 바이러스를 일렬로 늘어놓을 경우 그 길이가 2억 광년을 넘어 은하수 가장자리를 훨씬 넘어선다"(네이선 울프 '바이러스 폭풍의 시대') 외계인이 지구에 와서 본다면 바이러스의 세상에 인간 등 다른 동물들이 얹혀 사는 것으로 비칠지도 모른다. 바이러스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이 H(헤마글루틴) 16가지, N(뉴라미데이즈) 9가지여서 총 144종이 나올 수 있다. 특히 돼지독감(H1N1)의 확산력과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H5N1)의 치사율이 더해진 신종 바이러스가 생겨날 경우 지금까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파국이 연출될 수도 있다.
코로나 사태는 언젠가는 종식될 것이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4~5년 주기로 다시 올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제는 보건·방역도 국가안보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 이유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참 많은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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