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빈 수협은행장, '해놓고 보자'式 영업 없애고 디지털 승부사로 변신

입력 2020-05-19 17:30   수정 2020-05-20 00:51

“남들은 저만치 가는데,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포기할 겁니까?”

2018년 2월 이동빈 수협은행장이 주요 간부를 긴급 소집했다. 취임 몇 달간 사업 현황을 꼼꼼히 뜯어봤지만 디지털 분야에 마땅한 로드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은행들은 잇따라 ‘디지털 초격차’를 선언하고 모바일 앱 개편에 여념이 없었다. 위기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비대면마저 뒤처지면 ‘어업인 전용 은행’이라는 꼬리표를 영영 떼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때부터 이 행장은 1주일에 한 번씩 디지털 전략 회의를 열었다. 2018년 12월 출시한 ‘헤이뱅크’라는 새 모바일 앱도 이 회의의 결과물이다. 앱은 출시한 지 1년 만에 5만여 명의 비대면 고객을 끌어모았다.


이 행장은 국내 은행권에서 한 발짝 뒤처져 있었던 수협은행을 ‘정규 트랙’에 올려놓은 주역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과감한 디지털 혁신으로 고객 기반을 크게 넓혔고 지난해에는 첫 해외 진출에도 성공했다. ‘수협만 팔 수 있는 상품’을 잇달아 내놓으며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한 것도 이 행장의 신념이 바탕이 됐다.

외환위기가 키운 여신 전문가

이 행장은 부산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1983년 상업은행(현 우리은행)에 입행했다. 안정적이고 보수가 좋은 직장이라는 말에 택한 직장이었다. 예금계에서 주판을 튕기며 젊은 시절을 보냈지만 특별한 목표는 없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생각이 달라졌다. 이 행장은 그해 상업은행 일본 오사카 지점 과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해외 근무의 부푼 꿈을 안고 떠났지만 4년간 맡은 일은 부실 여신 정리가 대부분이었다. 하루에도 수없이 부실 기업의 ‘민낯’과 마주해야 했다. 이 행장은 “일본에 진출한 부동산업체 등이 줄줄이 무너지면서 200억~300억원짜리 여신이 휴짓조각이 되는 것을 생생하게 체험했고 지점 폐점까지 겪었다”며 “은행의 리스크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깨달았다”고 말했다.

실력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귀국 후 밥 먹듯이 야근할 때도 집에 돌아오면 반드시 책을 폈다. 신용위험분석사(CRA), 공인중개사, 여신심사역(CLO), 신용분석사 등 그가 입행 후 딴 금융 관련 자격증만 10개를 넘었다. 2015년 우리은행 여신지원본부 부행장을 맡으면서 기회가 왔다. 이광구 당시 우리은행장은 자산 건전성을 개선할 것을 주문했다. 2014년 말 우리은행의 고정이하여신(NPL) 비율은 2.10%로 대형 시중은행 중 가장 높았다. 이 행장은 “당시만 해도 ‘해놓고 보자’는 식의 대출 영업이 성행했다”며 “부실 여신을 정리하고 상환 가능성이 높은 기업 위주로 여신을 취급하는 문화를 조성했다”고 회상했다.

성과는 숫자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은행의 NPL 비율은 2년 만에 0.99%로 떨어졌다. 우리은행이 민영화에 성공한 것도 이 기간 체질 개선이 바탕이 됐다는 평가가 많다. “우량 기업 중심의 대출 문화를 부디 그대로 유지해 달라.” 2017년 수협은행장으로 취임해 우리은행을 떠날 당시 그가 직원들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이메일 내용이었다.

민간 출신 은행장의 혁신

이 행장은 수협은행 역사상 첫 민간 출신 은행장이다. 2016년 수협중앙회에서 독립한 수협은행은 당시까지 수렁에 빠져 있었다. 실적은 정체됐고 과거 지원받은 공적 자금 1조1600억여원을 고스란히 부채로 안고 있었다. 수협은행은 외부 출신인 이 행장을 ‘구원투수’로 영입했다.

은행의 속살부터 제대로 알아야 했다. 그는 취임 100일 만에 126개 영업점을 모두 돌았다. 주말을 포함해도 하루에 한 곳 이상의 점포를 찾은 셈이다. 이 행장은 “현장의 목소리를 많이 듣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경영 과제였다”며 “만나는 모든 직원에게 ‘1등 중견은행을 만들자’는 비전도 꾸준히 제시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말까지 전 지점을 두 바퀴 ‘완주’했다.

그렇게 파악한 문제점은 자산과 고객 수가 적다는 것이었다. 영업점에 방문하는 고객도 많지 않았다. 리테일(소매) 영업을 강화해야겠다고 판단했다. 고객 방문이 많은 주요 점포는 리모델링해 분위기를 확 바꿨다. ‘디지털’은 또 다른 리테일 강화의 열쇠였다. 이 행장은 취임 후 디지털 사업본부를 개편하고 젊은 직원들에게 전권을 줬다. 매주 디지털 전략 회의를 여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그렇게 공을 들여 개발한 ‘헤이뱅크’가 2018년 말 출범하면서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었다. 2030 젊은 층을 겨냥한 디지털 상품도 속속 출시했다. 30만 계좌가 팔려나간 잇(it)딴주머니통장 등 ‘메가히트’ 상품도 나왔다.

창사 이래 첫 해외 진출에도 성공했다. 수협은행은 지난해 9월 미얀마 수도 네피도에 ‘수협 마이크로파이낸스 미얀마’를 설립했다. 아직 채 1년이 안됐지만 네피도 내 4개 지점에서 1만 명의 고객을 확보했다. 이 행장은 “수협은행의 ‘해피콜’ 제도를 미얀마 현지에 맞게 변형한 뒤 대출 고객 만족도를 적극 체크해 영업 현장에 반영했다”며 “아직까지 연체율 0%, 고객 만족도 10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 베트남 등 다른 국가 진출도 검토 중이다.

실적 고공행진…공적 자금 상환은 과제

이 행장 취임 이후 수협은행의 외형도 눈에 띄게 성장했다. 지난해 말 기준 수협은행의 자산은 40조7220억원(신탁 자산 제외), 순이익은 2192억원을 기록했다. 2016년 말 대비 각각 41%, 305% 늘어난 수치다. 건전성도 눈에 띄게 높아졌다. NPL 비율은 2016년 0.90%에서 0.46%로 낮아졌다. 이 행장은 “그동안 기업에 편중됐던 여신 구조를 재편하고 개발 금융 등 리스크가 큰 대출은 과감히 줄였다”며 “외형 성장도 중요하지만 큰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기초 체력을 튼튼히 하자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반년여 임기를 남겨둔 이 행장에게 남은 과제도 있다. 우선 비이자 부문을 강화해야 한다. 수협 네트워크에 의존해 영업을 오래 유지하다 보니 이익의 90% 이상을 대출에 의존해 왔다. 카드 부문 강화 등을 통해 대출이자 외의 수익 기반을 창출해 나가겠다는 게 이 행장 계획이다.

공적 자금 상환도 ‘밀린 숙제’다. 이 행장 취임 후 2500억여원의 공적 자금을 갚았지만 아직까지 8500억여원이 남아 있다. 이 행장은 “고객을 늘리고 자산 구조를 안정화하는 게 결국 공적 자금 상환을 앞당기는 바탕”이라며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중견은행을 만드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 이동빈 수협은행장 약력

△1960년 강원 평창 출생
△1983년 부산대 경영학과 졸업
△1983년 상업은행(현 우리은행) 입사
△2012년 우리은행 서대문영업본부장
△2017년 우리피앤에스 대표
△2017년 10월~ 수협은행장


정소람/정지은 기자 r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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