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부족주의'가 갈등·분열의 뇌관이었네

입력 2020-05-21 15:09   수정 2020-05-21 15:11

때로는 편견이 눈을 가린다.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해서 모두를 당황하게 만든다. 미국의 경우 베트남전과 이라크전 패배가 그런 사건이었다. 초강대국 미국이 패배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에이미 추아 예일대 로스쿨 교수의 《정치적 부족주의》는 ‘국가’라는 틀에 가려져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부족’적 정체성이 세계 곳곳에서 어떤 분열을 일으키고 있는지 보여준다. 저자는 《불타는 세계》 《제국의 미래》 등을 쓴 국제분쟁 전문가다.

저자는 오늘날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과 분열 그리고 대립과 혐오를 기존의 좌와 우의 시각으로 보려 하지 않는다. 이런 구도를 뛰어넘은 저자는 ‘부족주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누구나 ‘부족 본능’이 있다. 부족은 개인에게 소속감과 애착을 느끼게 하는 집단을 뜻한다. 인종, 지역, 종교, 분파 등 어떤 것에든 기반을 둘 수 있다. 사람들은 이 안에서 유대감과 안정감을 느낀다. 집단에 속하지 못한 외부인은 무조건 징벌하려는 속성도 있다.

베트남전 당시 미국은 남베트남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남베트남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다. 친자본주의 정책을 펼치는 미국이 그 약속을 지킬지 의문을 품었다. 이라크전의 경우 미국은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쫓아내면 이라크 국민이 미국을 따르며 안정을 찾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이라크는 여전히 혼란 상태다.

저자는 미국의 엘리트들이 평범한 미국인들의 집단 정체성에 대해 망각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 이 엘리트들이 스스로는 ‘세계 시민’이라 자부하면서 실제로는 배타적 표식을 지니고 있다고 꼬집는다. 엘리트 계층에 대한 반발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으로 이어졌다. 교육 수준이 낮고 인종주의·애국주의적 성향이 강한 계층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몰표를 줬다는 것이다. 이들은 주로 농촌과 중서부의 노동자 계급에 속한다.

저자는 정치적 부족주의를 관통하는 분명한 법칙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지배집단이 자신의 권력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면 4·15총선 이후에 전개되고 있는 선거 결과를 둘러싼 이런저런 주장도 정치적 부족주의가 가져온 한 가지 특별한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아울러 “부족주의를 해소하기 위해선 ‘면대면 접촉’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정 당 지지자와 특정 지역 거주자 사이에는 교류가 거의 없어 큰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관찰되는 맹목적인 특정 정치그룹 편애 현상도 이런 범주에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주장 가운데 마치 우리 사회를 두고 하는 말처럼 보이는 진단이 있다. “위기감을 느끼는 집단은 부족주의로 후퇴하기 마련이다. 자기들끼리 똘똘 뭉치고, 더 폐쇄적, 방어적, 징벌적이 되며, 더욱더 ‘우리 대 저들’의 관점으로 생각하게 된다.”

공병호 < 공병호TV·공병호연구소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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