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비대위 잔혹사' 끊고 성공할 3가지 조건은

입력 2020-05-24 16:35   수정 2020-05-24 16:44



미래통합당이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출범을 눈 앞에 두고 있다. ‘4·15 총선’ 참패 뒤 ‘김종인 비대위원장 카드’를 놓고 당내 거센 찬·반 격론이 벌어진 끝에 지난 22일 당선인 워크숍에서 투표를 통해 승인을 받았다. 오는 28일 전국위원회의 승인을 받고 비대위원 9명을 선발한 뒤 정식 출범하게 된다.

한국 정치사에서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은 거의 습관적이다. 선거가 잦기 때문이다. 전국 단위의 선거인 국회의원·지방선거가 2년마다 한 번 씩 치러지고 5년마다 대통령 선거가 실시된다. 재·보궐선거는 2014년까지는 매년 두 번, 그 이후엔 매년 한 번씩 실시된다.

선거에 패배한 당은 대표가 물러나고 여지없이 비대위를 꾸린다. 그 만큼 정당정치가 제대로 뿌리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더불어민주당 계열 이전 정당은 선거 패배가 잦았던 2000년대에서 2010년대 중반까지, 미래통합당 계열은 2010년대에 비대위를 자주 구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열린우리당 시절인 2003년 10월부터 2007년 8월 초까지 3년이 채 안되는 동안 지도부가 11번 바뀌었고, 이 가운데 비대위 체제는 3번 등장했다. 1년에 한 번씩 비대위를 가동한 것이었다. 2008년 18대 총선과 2012년 19대 총선, 2014년 지방선거 패배 뒤에도 비대위가 꾸려졌다.

통합당의 경우 2010년 이후에만 7번 비대위가 등장했다. 이번 ‘김종인 비대위 체제’까지 포함하면 8번이다. △2010년 6월 김무성 비대위 △2011년 5월 정의화 비대위 △2011년 12월 박근혜 비대위 △2014년 5월 이완구 비대위 △2016년 6월 김희옥 비대위 △2016년 12월 인명진 비대위 △2018년 7월 김병준 비대위 △김종인 비대위 체제(2020년 5월 예정) 등이다.

그러나 비대위 체제는 대부분 성공하지 못했다. 비대위원장은 일종의 임시직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정식 선수가 아닌 대타로 등장해 선거 참패 뒤 어수선한 당을 추스리는 역할을 한 뒤 전당대회를 통해 뽑힌 대표에게 바통을 넘겨주는 것으로 임무가 끝난다. 그러다보니 당내 복잡한 계파 갈등을 조정하고 이끌 리더십을 발휘하기 쉽지 않다. ‘말발’도 제대로 서지 않는다.

비대위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는 대타가 아닌 주전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박 전 대통령은 한나라당 시절인 2004년과 2011년 두 번 비대위원장을 맡았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비대위원장을 맡은 박 전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풍’으로 한나라당이 100석도 건지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을 깨고 121석을 확보해 당을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1년 박 전 대통령이 비대위원장을 맡은 것은 앞서 10월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하고 홍준표 대표 체제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친이(친이명박)계 반대를 뚫고 비대위원장이 된 박 전 대통령은 당 이름을 새누리당으로 바꾸는 등 쇄신 바람을 일으켰다. 이에 힘입어 새누리당은 이듬해 총선에서 과반의석인 152석을 얻어 승리했다. 박근혜 비대위 체제가 성공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선거 공천권을 비롯해 당을 강력하게 이끌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계파 의원들이 뒤에서 강력하게 받쳐줬다.

그 밖의 비대위 체제는 대부분 실패하면서 ‘비대위 잔혹사’라는 말까지 나왔다. 2016년 총선 뒤 출범한 김희옥 비대위는 친박-비박계간 다툼 등을 제대로 조정하지 못하다가 두 달만에 막을 내렸다. 박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2016년 12월 국회를 통과한 뒤 등장한 인명진 비대위 체제도 친박계 청산 문제로 친박 주류와 정면 충돌했고, 김무성·유승민 의원 등 비박계의 탈당 러시가 이어지면서 석달만에 문을 닫았다. 박 전 대통령과 같이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요소들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반대파의 저지선을 뚫을 수 없었다.

김종인 통합당 비대위원장 내정자가 몇개월짜리 임기를 반대한 것도 이런 실패 전례들을 반추한 결과다. 김 내정자가 임기를 8월 또는 연말까지로 하는데 대해 강하게 반대한 것은 단 몇 개월 갖고는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기 여의치 않다고 봤기 때문이다. 개혁의 밑자락을 깔려면 적어도 1년 정도는 돼야 한다는 것이 김 내정자의 판단이다. 내년 4월 재·보궐선거때까지 위원장직을 수행하는 것으로 결론 난 것도 비록 작은 선거지만 공천권을 행사하게 되면 비대위원장에 힘이 실리게 된다. 밀고 당기기를 통해 말발이 센 통합당 중진의원들의 기선을 제압하려는 성격도 있다.

1년 가까이 당을 이끌게 됐지만 김 내정자 앞에 놓인 과제도 적지 않다. 내년 재·보궐 선거에서 패배한다면 그 책임을 고스란히 짊어지게 된다. 물론 그 때까지 임기여서 어짜피 물러날 예정이지만, 선거 승리 땐 임기 연장 문제가 자연스레 거론될 가능성이 크다.

통합당 안팎의 대선주자들이 강하게 견제하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김 내정자가 차기 대선과 관련,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현 통합당) 무소속 당선자와 유승민 통합당 의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등에 대해 “지난 대선에서 검증이 다 끝났다”면서 ‘1970년대생 경제전문가’를 언급한 게 도화선이 됐다. 김종인 비대위 체제 자체를 반대했던 홍 전 대표는 “이왕 됐으니 당을 제대로 혁신·개혁해 국민에게 다가가는 정당으로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한 발 물러섰지만 ‘대선에 관여해선 안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유 의원 측도 김종인 비대위 체제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했다. ‘자강론’을 외쳤던 적지 않은 중진의원들이 비대위에 협조하지 않거나 제동을 건다면 김 위원장 내정자로서는 가시밭길을 걸을 수 밖에 없다.

김 내정자는 통합당의 이념과 정책 노선을 새로 정립할 예정이다. 김 위원장 측에 따르면 지향점은 개혁적 중도 보수다. 통합당의 한 관계자는 “지난 총선에서 확인됐듯, 중도층의 지지를 얻지 않고는 대선을 가망이 없다”며 “1970년대식 반공과 신자유주의 노선에서 탈피해 부의 불평등 문제와 공정, 복지 분야에서 전향적으로 다가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런 점에서 김세연 의원을 비롯해 중도 보수 성향의 일부 의원들이 거론하고 있는 기본소득제와 전국민보험제 등 여권의 아젠다를 선점하기 위한 노력도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당내 보수 성향의 의원들의 반발이 예상되고 김 내정자의 리더십도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관측된다. 통합당 관계자는 “김 내정자가 2016년 민주당 비대위원장 시절 공천 문제로 친노(친노무현)와 충돌한 끝에 자택 칩거에 들어가면서 당시 민주당 내에서 독단적이라는 평가가 나온 적이 있다”며 “이런 성격이 당을 휘어잡는 무기가 될 수 있지만, 반대로 당 분열을 가져오는 독도 될 수 있다. 김 내정자가 적절하게 균형을 잡는 것이 관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홍영식 한경비즈니스 대기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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