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반도체 지원 '올인'하는데…삼성·SK는 '각자도생'

입력 2020-07-03 08:30   수정 2020-08-13 00:02


애플이 15년간 이어오던 인텔과의 동맹관계를 청산했다. 지난달 23일(현지시간) 애플은 2020 연례 개발자 행사에서 자사 PC 제품 맥(Mac) 중앙처리장치(CPU)에 인텔 제품 대신 아이폰·아이패드 처럼 ARM 설계 기반 자체 개발 칩 '애플실리콘'을 넣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팀 쿡 애플 CEO의 이 같은 발표에 대해 미 언론은 '인텔과의 결별' 그리고 '반도체의 독자화'라고 평가했다. 미 CNBC는 "애플은 장기적으로 '반도체 독립'이라는 야심을 드러낸 것"이라며 "그러기 위해선 '동지'였던 인텔과의 관계도 과감히 청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애플의 '탈(脫) 인텔' 선언이 그 자체로도 과감했지만 보다 많은 것을 함의한다고 분석했다. 독립할 수 있는 '힘'이 갖춰지면 같은 국가 기업이라도 언제든 뒤돌아설 수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줘서다. IT(정보통신) 기업들이 인공지능(AI)와 반도체 등 차세대 먹거리에 공을 들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이후 이 같은 '독자화', '반세계화', '고립주의' 등의 가치가 가속화 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미국 정부가 최근 고삐를 죄고 있는 '반도체 리쇼어링(제조업 본국 회귀)'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인텔과 퀄컴, 마이크론 등을 필두로 하는 반도체 설계기술의 최강국이다. 공정·양산기술은 삼성전자의 한국과 TSMC의 대만이 앞서가고 있다. 다만 문제는 중국이 최근 '반도체 굴기'를 선언하며 메모리반도체 뿐만 아니라 비메모리 반도체를 비롯해 미국의 '안방'인 팹리스(반도체 설계) 영역을 추격하고 있는 데에 있다.

지난 2년 간의 미중 무역갈등으로 골이 깊어진 가운데 올해 발발한 코로나19 사태에 '반도체 굴기'의 본격화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중노선'을 더욱 확실하게 만들었다. 미 워싱턴포스트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미국은 중국 공산당을 약화하는데 혈안이 돼 있고 중국을 경제적이면서 안보상의 위협으로 보고 있다"며 "이는 트럼프뿐만 아니라 조 바이든 역시 마찬가지"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택한 건 '반도체 안보'다. 미국은 최근 세계 유수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들을 자국 영토에 불러 모으고 있다. 이를 위해 미 상원은 자국 내 반도체 제조업체에 228억달러(약27조3000억원) 이상을 지원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반도체 설계는 가능하지만, 자체 칩 생산은 할 수 없는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를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미국은 전 세계 반도체 절반을 위탁생산하는 파운드리 업계 1위 TSMC에 압박(?)과도 같은 '러브콜'을 보냈고, TSMC는 결국 미 정부의 요구에 현지에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했다. 업계 3위 기업인 글로벌파운드리도 미국 내 공정에 추가 투자가 유력하다. 2위 삼성전자 역시 미국 오스틴에 파운드리 공장이 있다.

파운드리 1, 2, 3위 업체 공정을 자국에 모두 상주시킨 미국은 최근 미국 기업의 기술로 해외에서 제조한 반도체를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에 판매하려면 정부 허가를 받으라는 제재 조치를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반도체 안보' 지키기에 패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 같은 제재로 TSMC는 화웨이와의 거래를 중단했다.

중국도 맞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국가주도의 AI·반도체 청사진으로 대응 전략을 짜고 있다. 중국은 2015년부터 '반도체 자급자족'을 위해 '반도체 굴기'를 추진하고 있다. 정부를 중심으로 수백조원의 자금을 조달해 산업 전반의 지원 정책을 펼치며 '제조업 부흥'을 통한 글로벌 생산 기지화를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중국 정부는 2030년까지 삼성전자·TSMC와 유사한 수준의 기술을 보유한 파운드리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이를 위해 국영 반도체 기업 SMIC에 막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 한편 대만에서 기술인재 3000명을 데려오는 과감한 승부수를 두고 있다. SMIC는 최근 중국 국영 투자자들로부터 22억달러를 투자 받은데 이어 지난달에는 상하이증시 기업공개를 통해 28억달러 규모의 추가 자금 조달 계획을 세웠다. 상하이증권거래소는 SMIC의 상장 신청을 18일 만에 초고속 승인하면서 SMIC의 빠른 자금 조달을 돕고 있다.

한국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 "기업의 유턴을 촉진하고 해외 첨단산업 유치를 통해 한국을 '첨단산업의 세계공장'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이 자국 중심의 공급망 구축을 강화하면 문 대통령이 언급한 세계공장 전략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는 최근 '한국판 뉴딜' 정책을 통해 리쇼어링을 장려하며 혹시 모를 국내 업체들의 해외 이탈을 방지코자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향후 미국과 중국 정부가 "우리한테 물건을 팔려면 현지 공장을 더 지으라"고 할 수도 있어서다. 국내보다 해외 시장 비중이 더 큰 우리 반도체 기업들이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건 지나친 낙관이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으로부터 제공받은 지난 10년간 글로벌 반도체 시장 관련 지표에 따르면, 글로벌 반도체 시장 2위 국가인 한국 기업은 정부지원금 비중이 2014~2018년 기준 미국과 중국 대비 현저히 적은 수준으로 조사됐다. 삼성전자 매출 대비 정부지원금 비중은 0.8%였으며 SK하이닉스는 0.6%에 불과했다.

반면 매출 대비 정부지원금 비중이 높은 상위 5개 기업 중 3개가 중국 기업의 차지였다. 1위인 SMIC는 매출의 6.6%를 정부로부터 지원받았으며, 화홍 5%, 칭화유니그룹 4%가 뒤를 이었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 1위 국가인 미국 기업들도 세제 혜택과 연구개발(R&D) 등 명목으로 지원을 받고 있었다. 마이크론의 정부지원금 비중은 3.8%, 퀄컴 3%, 인텔 2.2% 수준이었다. 여기에 스위스, 네덜란드 등 국적 기업의 매출 대비 정부 지원 비중 역시 높게 나타났다.

김봉만 전경련 국제협력실장은 "그동안 수출 제1의 상품인 우리 반도체가 지금의 세계적 입지를 갖추기까지 기업 홀로 선방해온 측면이 있다"며 "최근 미중간 기술패권 경쟁에 더해 일본 수출규제까지 여러 악재들이 계속되는 가운데 세계시장 입지 수성을 위해 우리도 R&D, 세제혜택 지원 등 정책적 뒷받침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배성수 한경닷컴 기자 baeb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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