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순의 관점] '자치 경영'의 힘…지방소멸론 뒤집는 '우월지역'을 보라

입력 2020-07-21 18:25   수정 2020-07-22 00:31

올해부터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인구가 나머지 비(非)수도권 인구보다 많아졌다는 최근 통계청 발표로 대한민국은 또 한 번 술렁였다. 예고된 코스로 틀림없이 진행되는 현상이지만, 수도권의 과밀화는 여전히 손대기 힘든 난제다. 과도한 저출산·고령화만큼이나 심각한 문제다. 인구 집중, 1극 도시지역의 과밀 해소도 숙제지만 지역의 양극화 문제를 과연 어떻게 풀 것인가. 지역 간 격차 문제는 해묵은 ‘지방소멸론’을 계속 자극할 것이다. 현상은 단순하게 나타나지만, 원인과 구조는 복층적이다. 해법 찾기도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 코로나 쇼크 극복 차원에서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고 기업 리쇼어링을 과감하게 추진하려 해도 대부분은 수도권 정착을 고집하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도 수도권 외 지역은 여전히 수도권 규제 완화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은 채 지방 지원을 더 많이 요구하고 있다.

지방은 양극화의 메가트렌드를 극복하지 못한 채 더 어려워지고, 결국 소멸되는 지역까지 나올 것인가. 이런 와중에도 열악한 현실을 이겨내며 발전하는 지역이 있다. 단순히 수도권과의 거리나 접근성 때문만은 아니다. 지방자치 행정에 경영 개념을 적극 반영해 투자를 유치하고 인구를 지키는 곳이다. 중앙 정부에 기대려 하지 않고 스스로 변화하며 혁신을 도모하는 지방자치단체도 적지 않다. 인구가 큰 변수지만 줄어든 인구의 약점을 극복하는 지자체도 있다. 한국공공자치연구원(이사장 박우서·원장 이기헌)이 매년 비교 평가하는 기초지방자치단체의 경쟁력 평가를 보면 시사점이 있다. 전국 226개 시·군·구의 자치행정을 ‘경영’개념으로 24년째 분석해온 이 연구원의 평가에서 두각을 드러낸 곳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지방소멸은커녕 ‘지방우월’이라고 할 정도의 성과도 보인다. 고유의 특성을 어떻게 살리면서 경쟁력을 키우느냐가 관건이다. 타성적 ‘자치행정’에서 벗어나 생산적 ‘자치경영’을 하는 지자체는 지방 위축의 시대에도 오히려 발전할 것이다.
중앙 의존 ‘천수답 행정’ 벗어나 자체 경쟁력 키운 지역 주목
경영자원·경영활동·경영성과로 나뉜 연구원의 ‘한국지방자치경쟁력지수(KLCI·2019년)’를 보면 전체적으로 시(市)가 구(區)보다 낫고, 구가 군(郡)보다 낫다.

시 부문 1위는 경기 화성이다. 교통 인프라, 산업 기반, 재정 여건, 인구 활력, 지역 경제가 두루 좋다. 관내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자동차 연구소의 기여도가 컸다. 미래 전망도 상당히 좋은 도시다. 2위 충남 천안이 경기 수원(3위) 용인(4위) 고양(8위) 등 서울과 맞붙은 인구 100만의 ‘밀리언 시티’를 줄줄이 제친 것을 보면 서울과의 거리가 지역 발전의 절대변수는 아니라는 점이 확인된다. 천안은 광역교통 여건과 첨단산업 단지 효과를 보고 있는데 대한민국 축구종합센터 유치 추진이 주목을 받았다.

수도권의 최대 핵심지역인 서울 강남·송파와 맞붙은 경기 성남이 16위에 그친 것이나, 성남 옆 경기 광주가 22위로 포항(12위)보다 한참 뒤떨어져 전남 광양(23위)과 나란히 선 것에도 시사점이 있다.

군 가운데 1위를 차지한 대구 달성은 5년 연속 출생률이 증가한 게 돋보인다. 대구 기반의 산업을 유치하면서 문화·관광을 특화해 나간 게 높이 평가받았다. 2위 울산 울주는 ‘미래농업’ 행정이 호평받았다. 귀농·귀촌·청년창업농 행정으로 인구 유입을 꾀해 높은 점수를 받았다. 3위 기장도 광역시 부산의 후광을 입었다고 봐야겠지만, 방사선 의·과학 일반산업단지, 수출용 신형연구로 같은 국책사업 수행에 적극 나선 게 주효했다.


군 평가에서는 전북 완주가 4위를 차지한 게 돋보인다. 달성 울주 기장은 어떻든 광역시 안의 군이다. 하지만 완주는 여건이 다르다. ‘로컬 푸드’ 본산을 자처하면서 도농복합의 자족도시를 추구해 온 게 평가받았다. 최근 5년 새 지역내총생산(GRDP)이 연평균 13.4%씩 성장하는 놀라운 성과를 냈다. 소득 증가와 함께 ‘삶의 질’이 향상되는 지역으로 평가받았다. 5위 충북 진천은 지리적 위치를 잘 활용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CJ제일제당 한화큐셀 등 대기업을 불러들이면서 3년 연속 1조원 규모의 투자 유치 실적을 냈다. 충북 음성(8위)도 특화된 ‘5대 신성장동력산업’ 기업 유치가 돋보였다. 결국 기업의 힘이다. 강원 평창(9위)은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라는 이점을 지역 브랜드와 경제 활성화에 잘 활용했다.

구 가운데 1위를 한 대전 유성은 우수한 인적 자원 기반의 스마트도시 추진이 평가를 받았다. 인천 서구도 25개나 되는 서울의 쟁쟁한 구를 제치고 2위에 올랐다. 주민 1000여 명이 ‘클린 서구 추진단’ ‘청소환경 서포터스’로 활동하고, 보육 행정에서도 앞섰다. 3위인 인구 68만 명의 송파는 일자리와 문화 등으로 서울에서 최고 점수를 받았다. 부산에서는 전국 15위 안에 든 구가 한 곳도 없다. 울산도 16위 안에 들어간 곳이 없다. 도시 규모와 경쟁력은 직접 상관관계가 없고, 대도시의 구 경영도 천차만별이다.

이기헌 원장은 “지방자치경쟁력은 시-구-군 순으로 높게 나타났고, 대도시의 군과 신도시 자치구가 상대적으로 앞선 반면 대도시 구(舊)시가, 접경·도서지역 지자체는 뒤처졌다”며 “자치경영 활동을 제대로 해 혁신적으로 지역 경쟁력을 높여 나가야 좋은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자체, 지역 기업·대학·언론과 머리 맞대고 미래 열어나가야
성장산업을 발굴하며 질주하는 곳은 소수, 투자유치를 힘겨워하며 뒤처지는 곳은 다수인 게 지방행정, 지역 경제의 현실이다. 그만큼 지방 간 격차도 수도권과 비수도권만큼이나 분명하다. 낙후된 곳이 살아남을 길은 무엇일까. 앞선 지역에서 스스로 배울 필요가 있다. 확실한 것은 시·군·구 사이의 평가 순위도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자치경영의 혁신, 주민 늘리기와 투자 유치에서 선의의 경쟁이 필요하다. 단체장과 지방의회의 건전한 협력과 견제야말로 자치경영을 건강하게 발전시킬 것이다. 지자체-지역 기업-지역 대학-지방 언론이 머리를 맞대 특화 산업을 발굴해내고 인구 늘리기 대책을 함께 고민할 필요도 있다.

지역의 선출직 공직자들이 ‘여의도 정치’의 하청업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떻게든 국가 지원이나 더 받아내려는 ‘중앙 의존형 지방자치단체’로는 지방 퇴락의 무서운 미래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지방자치단체인가, 지방정부인가’라는 논쟁에서처럼 지방에도 ‘정부’라는 말을 쓰려면 그만한 노력을 해야 한다. 2020년 평가에서는 선두그룹에서 어떤 변화가 있을지 기대된다. 역동적이고 혁신적인 지방자치, 지역 스스로의 변신이 관건이다.
■ 지자체 경쟁력평가 어떻게…

인구구조·교육문화 여건부터
인터체인지 숫자까지 비교
13개 부문 81개 항목 평가
한국지방자치경쟁력지수(KLCI)는 한국공공자치연구원이 1996년 기초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한 ‘도시경쟁력연구’로 시작됐다. 지역별 경쟁력 측정·활용이 주된 목표다. 2002년부터 전국의 시·군·구가 모두 조사 분석 대상이 됐다. 기업에 투자와 입지 계획의 기초 자료로 쓰이게 하자는 취지였다. 평가의 기본 틀은 각 지자체가 가진 인적·물적 자원과 지역 내 재정·경제·문화 수준이 어느 정도이며, 이런 것들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관리·운용되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다. 정량평가가 기준이지만 정성평가도 병행한다.

지방자치 경쟁력은 경영자원(투입), 경영활동(운영), 경영성과(결과)라는 세 가지 큰 범주로 분석한다. 경영자원은 인적 자원·도시 인프라·산업 기반으로 나뉘고, 경영 활동은 공공행정·지방재정·생활환경·지역경제로 다시 나뉜다.

경영성과는 인구 활력·보건복지·교육문화·공공안전·지역사회·경제 활력 항목으로 세부 평가한다. 인구 증가율, 순전입인구수, 청년 유입 비율, 출생아 수, 혼인 수, 대학생 수 등 인구구성부터 도로 포장률과 지자체 내 고속도로 인터체인지 개수까지 계산한다. 의료기관과 공공 도서관, 지방·국가지정 문화재 수도 포함된다. 평가항목은 상하수도 보급률부터 농업용지면적·건축허가면적, 사업체 증가, 재정자립도·보조금 수준까지 다양하다. 가령 범죄 발생·화재 건수는 공공안전 평가 항목에 들어가고, 공업지역면적은 지역산업 평가항목에 포함된다.

13개 부문에 걸쳐 81개 평가항목이 있다. 지표 항목별로 가중치가 달라 배점(5~30점, 총 1000점)도 차이가 있다. 사업체 증가율과 그 종사자 증가율이 각각 35점으로 가장 높다. 그다음이 인구성장률(30점)과 광업제조업생산액 증가율(30점)이다. 기초 데이터만 4만2000개에 달한다.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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