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숨만 쉬고 있다”…스타트업 ‘암흑기’

입력 2020-09-07 17:10   수정 2020-09-25 16:08


“총 40억원짜리 계약이 기약없이 미뤄지고 있습니다. 시기가 너무 안 좋아 안타깝습니다.”

스타트업 B사는 세계 최초로 흐르는 물로 전기에너지를 만들어 사용하는 휴대용 수력발전기를 개발해 주목받는 업체다. 올초만 해도 독일 레저 관련 업체 네 곳에서 러브콜을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최종 사인만 남겨뒀던 40억원 규모 수출계약이 기약없이 미뤄지고 있다. 주력 시장인 미국에서도 캠핑 수요가 끊기고 영업활동까지 중단되면서 매출이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다. B사 관계자는 “수년간 개발한 기술이 이제야 빛을 보기 시작했는데 아쉬울 따름입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코로나19는 취업이 아니라 창업을 택한 2030세대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상당수 스타트업이 사업이 중단되고 자금줄이 막히면서 생존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7일 코리아스타트업포럼에 따르면 스타트업의 41.5%가 매출 급감에 휘청이고 있다. 투자 차질(33%)과 해외 사업 난항(16%)으로 어려움에 처한 곳도 많다. 특히 초기 단계 스타트업의 피해가 크다. 벤처캐피털업계에서 시드, 시리즈A 등 초기 단계 투자에 더 신중해졌기 때문이다. 코로나19는 스타트업이 도약할 발판까지 앗아갔다. 모바일 환전 서비스 기업 캐시멜로는 최근 매출이 ‘0원’으로 떨어졌다. 작년 정부의 규제 샌드박스를 통과하며 사업 기회를 얻었지만 국가 간 이동이 사실상 막히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윤형운 캐시멜로 대표는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외화를 출금하는 서비스를 올해 출시할 계획이었는데 전면 중단됐다”고 말했다.

스타트업들이 매출 감소, 해외 사업 난항, 투자 차질 등 3중고를 겪으면서 ‘성장 사다리’가 끊겼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용민 인라이트벤처스 대표는 “벤처투자업계에서는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대마불사(大馬不死)’ 위주의 투자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신규 투자는 줄고 후속 투자만 늘면서 스타트업계의 세대교체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월 매출 0원' 스타트업 속출…"투자금만 까먹으니 미칠 노릇"
취업 대신 창업 택했는데…벤처 생존율 OECD 최하위

“투자금만 까먹지 말자고 매일 기도합니다.”

한 여행 스타트업 대표 A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칼날 위를 걷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해외 여행자들을 위한 서비스로 인기를 끌던 이 업체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국내 여행 중심으로 상품을 재편했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19가 다시 확산하면서 국내 예약건마저도 취소가 속출하고 있다. 이 회사는 직원들을 1주일에 2~3일만 출근시키고, 월급도 크게 줄였다. A씨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고 싶어 취업 대신 창업에 도전했는데, 지금은 대기업 우산 아래에 있는 친구들이 너무 부럽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스타트업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국내 창업 초기 기업의 5년 생존율은 28.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은 기업들의 생존율은 이보다 더 낮아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해는 여행, 공연, 마이스(MICE: 기업회의·포상관광·컨벤션·전시회) 업종에 집중돼 있지만 제조, 바이오 등 업종에서도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직장 때려치우고 창업했는데…”
전자의수 제조업체인 만드로의 이상호 대표는 2015년까지 삼성전자 소프트웨어센터 책임연구원으로 근무했다. 같은 해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을 해보자며 창업한 게 만드로다. 창업 이후 내전을 겪는 중동, 아프리카 등에 전자의수를 수출하며 의미있는 성과를 냈다. 하지만 올해 매출은 작년의 20% 선으로 곤두박질쳤다. 의수는 실제 사이즈를 맞춰야 해 방문이 필수인데 코로나19로 출장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매출이 줄면서 올 2월로 예정됐던 투자 유치도 무산됐다. 이 대표는 “탄탄한 직장도 때려치우고 나왔는데, 막 꽃을 피울 때 코로나19라는 장애물을 만나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코로나19는 업력이 짧은 스타트업에 직격탄을 날렸다. 특히 오프라인 기반 사업모델은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다. 서울 역삼역 인근에서 공유미용실을 운영하는 아카이브코퍼레이션은 올해 매출이 급감했다. 이 지역 입주 기업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재택근무를 시행하면서다. 이창열 대표는 “거리의 유동인구가 확 줄었다”며 “올해 2호점까지 계획하고 있었는데 이마저도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바이오는 코로나19 수혜 업종으로 꼽힌다. 하지만 바이러스 진단 분야를 제외하면 코로나19의 타격이 작지 않다. 한 암진단 의료기기 개발업체는 임상시험이 무기한 연기됐다. 임상시험이 예정돼 있던 병원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면서다. 이 기업 대표 C씨는 “암진단을 포함해 세포, 살균 등 의료기기 업체는 다들 죽을 맛”이라며 “창업가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건 불확실성”이라고 설명했다.
해외 진출·투자 막혀
해외 진출에도 고전하고 있다. 올해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슬러시 등 해외 대형 전시회가 줄줄이 취소되면서 신기술을 선보일 기회를 잃었기 때문이다. 한 웨어러블 장비 업체 대표는 “수출이 전체 매출의 50%를 차지하는데 올해는 해외 판로가 막혀버렸다”고 말했다.

스타트업 투자 역시 크게 위축됐다. 정부의 벤처·창업 활성화 정책으로 최근 5년간 증가세를 보이던 벤처투자 금액은 올 상반기 주춤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벤처캐피털(VC)의 스타트업 신규 투자금액은 전년 동기보다 17.3% 줄어든 1조6495억원으로 집계됐다. 업계에서는 3분기에 더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창업자들이 몸으로 느끼는 ‘투자 절벽’은 더 가파르다. 데모데이가 줄줄이 취소되면서 투자 유치와 네트워킹 기회를 잃었기 때문이다. 데모데이는 스타트업들이 투자자에게 사업모델을 소개하고 투자를 유치하는 행사다. 초기 스타트업 창업자에게는 투자자를 직접 만날 수 있는 무엇보다 소중한 기회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데모데이는 사실상 ‘올스톱’됐다. 올초 NH농협, 액셀러레이터 기업 프라이머 등은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데모데이를 취소했다. 비대면 방식으로 간간이 이뤄지기도 하지만 투자자와의 관계 쌓기에는 한계가 있다. 업계 관계자는 “대면 만남이 어려워지면서 투자 절차 진행이 더뎌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홍윤정/구민기/최한종 기자 yj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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