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라의 공간] 대한민국에서 카페가 사라진 시간

입력 2020-09-14 17:44   수정 2020-09-15 00:13


“카페란 혼자이고 싶은 사람들이 머무는 곳, 동시에 옆자리에 벗이 있어야 하는 곳이다.”

카페를 사랑한 오스트리아 수필가 알프레드 폴가르가 한 말이다. 그런 카페가 사라졌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된 지난 2주간. ‘커피 1주일쯤 안 마신다고 세상 안 망한다’는 말은 틀렸다. 우리 모두 무언가 잃은 기분을 호소했다. 누군가는 일터를, 누군가는 독서실과 공부방을, 누군가는 일상의 유일한 휴식처를 상실했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2020년 대한민국에서 카페라는 공간이 가진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세계에서 하루 25억 잔 이상 소비되는 커피. 물과 차 다음으로 소비량이 많은 음료다. 커피가 세계인의 음료가 된 것은 ‘카페’라는 공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커피는 단지 거들 뿐. 커피를 마시기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진 카페는 17세기 유럽의 ‘커피하우스’가 그 원형이다. 카페에선 많은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다. 유럽 각국 혁명의 발상지로, 새로운 예술의 탄생지로 주목받았고, 많은 산업의 뿌리가 되기도 했다.
17세기 카페는 21세기 인터넷
영국을 금융강국으로 만든 건 카페였다. 글로벌 보험거래소 ‘로이즈’는 원래 무역상과 선원들이 모이는 커피하우스였다. 여기서 오가는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던 증권 브로커들은 해적의 공격과 침몰로 피해를 볼 수 있는 배의 리스크를 보상해 준다는 내용으로 무역상들을 고객으로 유치했다. 최초의 보험업이 시작된 배경이다. 런던 주식거래소 로열익스체인지 주변에도 ‘겟어웨이’ ‘조너선스’ 등 커피하우스가 상담 장소로 각광받으면서 17세기 말 주식거래소는 텅텅 빈 날이 많았다고 한다. 정치와 언론도 카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영국 양당제의 기원인 자유당과 보수당도 각자의 거점 커피하우스를 두고 집회를 열었고, 일간지들은 커피하우스에서 정보를 모아 계약해 둔 카페에 신문을 게시해 독자를 확보하곤 했다.

프랑스 혁명도 카페에서 시작됐다. 절대왕정 체제에서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체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던 곳이 파리의 카페들이다. 19세기 말 오스트리아 빈에선 카페가 천재와 예술가들을 잉태했다. 거리 곳곳 넘쳐나는 살롱과 카페는 이들이 만나 작품을 구상하고 서로의 생각을 교환하는 장소로 기능했다. 예술의 영역에선 다 셀 수도 없다. 카페에서 수많은 영감을 얻은 구스타프 클림트, 120개의 이름을 가진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 매일 카페에서 긴 시간 머물던 사상가 장 폴 사르트르, 카페에서 주로 글을 완성했다는 소설가 헤밍웨이와 JK 롤링까지…. 경제와 정치, 예술까지 모든 분야의 정보와 사람이 모여들었던 17세기의 카페는 오늘날 인터넷과 같은 기능을 했다.
카페가 없다면 꿈도 사라질까
2020년 대한민국의 카페는 집과 일터의 중립지대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대학생들의 문화와 예술, 혁명의 중심지였던 다방 문화는 1999년 스타벅스가 상륙하며 ‘모두의 공간’으로 진화했다. 한국의 1인당 카페 수는 세계에서 가장 많다. 카페는 이제 꿈을 꾸는 공간이자 미래를 준비하는 공간이 됐다. 아이를 돌보고, 일을 하고, 글을 쓰고, 취업 준비를 하는 그런 공간 말이다.

카페가 생산성을 높인다는 건 검증된 가설이다. 일본 교육심리학자 사이토 다카시는 자신의 생산성 비결을 ‘카페에서 일하기’라고 말한다. 30년간 카페를 집필 장소로 이용하며 타인의 시선, 개방된 공간, 자유로운 분위기라는 세 가지 요소가 집중력을 끌어올린다는 설명이다.

프랜차이즈형 카페 매장 이용금지 조치는 단지 카페 영업 규제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지금 이 시간 어느 카페에서 제2의 혁신 산업이, 세기의 예술이 탄생할지 모를 일이다. 코로나19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완화됐지만, 방심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코로나19가 앗아간 건 그냥 커피 한잔이 아니었다. 우리의 새로운 생각, 건강한 관계, 두근거리던 내일이었다.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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