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과 맞짱 뜬 베트남…군수산업 존재감은 '제로' [인사이드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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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9-30 07:52   수정 2020-09-30 09:15

미·중과 맞짱 뜬 베트남…군수산업 존재감은 '제로' [인사이드 베트남]

베트남 경제는 뿌리 없는 나무와 비슷하다. 겉에 보이는 가지와 잎은 제법 무성한 듯 보인다. 심지어 옹골찬 열매도 맺을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지면 아래에 뿌리는 제 땅에 굳게 밀착돼 있지 못하고 있다. 태풍이라도 한 번 불면, 언제든 뽑혀 버릴 것처럼 위태롭다. 제조업이라는 경제의 뿌리가 견고하지 못하다는 얘기다. 첨단 ICT(정보통신기술) 산업도 제조업과 결합하지 못하면 사상누각이나 다름없다.

베트남 정부가 빈그룹을 통해 자동차, 스마트폰, 가전뿐만 아니라 향후 반도체 제조까지 하려고 하는 데엔 이런 이유가 있다. 미국과의 전쟁, 그리고 1986년 개혁 개방정책을 택한 이래 ‘통제 가능한 성장’을 달성했다는 자신감이 이 같은 실험을 가능케 하고 있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이 그랬던 것처럼 차근차근 축적의 경험을 쌓기에는 시간이 별로 없으니 단숨에 도약하겠다는 것이다. 100년을 기다리다간 10년 안에 몰락할 수도 있다는 게 베트남의 위기감이다.

베트남에 거주하면서 약 30곳의 도시를 다녔다. 북쪽 고원의 도시 사파(Sapa)에서부터 남쪽 붕따우(V?ng Tau)와 푸꾸억까지 기회가 닿을 때마다 베트남의 속살을 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갈 때마다 놀라는 게 몇 가지가 있다. 우선,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자연에 놀란다. 북부 고원 지대만해도 사파 외에 가봐야 할 곳들이 많다. 하장(Ha Giang) 고원은 숨겨진 비경을 간직한 곳이다. 오토바이크 라이딩의 성지로 알려져 있긴 하지만, 아직 이곳을 찾은 한국인은 손에 꼽을 정도다. 게다가 베트남은 3000km가 넘는 해안선을 갖고 있다. 아직 손이 닿지 않은 순백의 해변이 즐비하다. 중부와 남부로 이어진 열대림엔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다양한 생명들이 그들만의 순리대로 살아가고 있다.

각 지방성(省)들을 연결하는 공항이 꽤 많고, 잘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에도 놀라곤 했다. 베트남 전역에 20개의 공항들이 그물망처럼 연결돼 있다. 이런 이유로 배낭족들은 인도차이나 반도를 여행할 때 베트남을 중간 경유지로 곧잘 활용하곤 한다. 베트남 공모 시장에서 가장 뜨거웠던 종목은 LCC 항공사인 비엣젯이었다. 마지막으로 놀라운 점은 전국 각지에 산업공단이 실핏줄처럼 뻗어 나가 있다는 점이다. 등록된 공단 숫자만 700개를 훌쩍 넘길 정도다. 2020년 봄, 코로나19가 글로벌 경제를 강타하고 있던 때에도 베트남 전역에선 공장 부지를 조성하고, 공장을 짓고, 건물을 올리는 모습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었다.

필자가 놀랐던 세 가지 현상은 한 가지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베트남의 취약한 산업 기반을 증명한다는 점에서다. 그토록 많은 공단들은 대부분 외국계 기업을 위한 시설이다. 이들 FDI(외국인투자) 기업이 베트남 수출의 68.8%(2019년 말 기준)를 담당한다. 항공 교통이 발달한 것은 육상 교통의 미발달과 연관돼 있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고속도로가 베트남엔 아직 없다. 2019년 하노이와 호찌민을 잇는 북남 고속도로 프로젝트가 발표됐지만, 실제 길이 놓이려면 넘어야 할 산들이 너무 많다.

베트남에선 길이 없거나, 있어도 끊기는 일이 다반사다. 베트남 중남부의 고원 도시인 달랏에서 겪었던 일이다. 숙소에서 달랏역까지 도보로 이동하려는데 길이 없어 애를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바로 코 앞에 역이 보이는데도 길이 없어 갈 수가 없었다. 결국 다시 길을 돌아 나와 자동차와 오토바이크가 다니는 도로로 나와서야 역에 닿을 수 있었다.

아시안 하이웨이(Asian Highway) 구실을 하는 1번 도로는 명색이 고속도로일 뿐이다. 아시안 하이웨이는 한국의 부산에서부터 북한을 지나 러시아와 중국을 거쳐 인도차이나 반도까지 이르는 도로다. 아시아 대륙의 동맥과도 같은 도로지만, 베트남에 이르면 초라한 왕복 2차선 국도일 따름이다. 그나마 한 차선은 폭주족 같은 대형 슬리핑 버스와 화물차들이 점령한다. 오토바이크들이 차선 구분 없이 종횡 무진한다. 길이 막혀 있어 사람들의 이동이 제한적이다 보니 아직 손길이 닿지 않은 신비한 자연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1975년 미국과의 전쟁이 끝난 후, 베트남엔 거의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베트남전(戰)의 포문을 열면서 미국은 ‘베트남을 석기 시대로 되돌리겠다’고 했다. 그 끔찍한 선전포고는 현실이 됐다. 1965년부터 10년 간 이어진 전쟁은 베트남 전역을 파괴했다. 미 해병대가 가장 먼저 상륙한 중부의 다낭은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됐다. 지상 위의 모든 것들이 흔적없이 사라진 터라 전후 다낭은 휴양 도시로 계획돼 재건됐다. 다낭의 도로와 건물들이 베트남의 다른 도시들과 달리 깔끔하게 정비돼 있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포항제철(현 포스코)이 1992년 4월 베트남 호찌민시에 법인을 설립하고, 1996년 아연도금강판, 그러니까 함석판을 만드는 공장을 하노이에 완공했을 때 포스코는 시쳇말로 ‘대박’을 터트렸다. 1975년 전쟁이 끝난 지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하노이는 여전히 재건 중이었다. 주택과 공장의 지붕을 함석판으로 새로 바꾸기 위해 하노이 사람들은 돈다발을 싸들고 포스코 공장을 찾았다. 포스코 관계자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꼬깃꼬깃한 베트남 동화를 부대 자루에 한 가득 짊어진 이들이 장사진을 이뤘어요. 물건을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니까요”

베트남이 가진 것이라곤 노동력뿐이었다. 베트남의 제조업이 얼마나 열악한 지는 군수산업이 증거다. 거의 20년 가까이 전쟁을 치렀음에도 제대로 된 군수 공장조차 짓지 못했다. 베트남 전쟁 중에 남베트남은 미국으로부터 엄청난 양의 군수 물자를 공급받았다. 북베트남은 소련제 중고 무기를 들여와 닦고, 조이고, 기름칠해서 사용했다. 캄보디아-베트남 전쟁(1977~1989년) 때도 베트남 육군은 소련제 무기와 장비로 중무장했다.

현재까지도 베트남 군부는 거의 대부분의 무기를 해외에서 수입한다. 러시아가 베트남에 무기를 가장 많이 파는 나라다. 우크라이나와 루마니아도 베트남에 무기를 수출하는 나라 중 하나다. 베트남이 자국 동해(남중국해) 영해권을 놓고 중국과 다툼이 많아지면서 미국, 유럽산 무기들이 해군력을 중심으로 베트남에 수입되고 있다.

최근 들어 군수 산업의 군산화를 서두르고는 있지만, 워낙 제조업 기반이 없다보니 IT(정보통신)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베트남 최대 통신사이자 군부가 최대 주주인 비엣텔(Viettel)이 2019년 5월 국방 기술을 선도할 자회사를 설립했다. 비엣텔 첨단기술산업 코퍼레이션(Viettel High Technology Industries Corporation, VHT)라는 이름의 신생 회사는 인공지능, 빅데이터, 밀리터리 네트워킹 시스템 구축을 목표로 내걸었다.

(2편에 이어집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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