油레카, 오일러시는 무한한 탐욕을 낳고…'석유 사냥꾼'에게 자원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입력 2020-11-06 17:04   수정 2020-11-13 18:22


영화 ‘데어 윌 비 블러드’는 1900년대 초반 미국의 석유 개발업자인 대니얼(대니얼 데이 루이스 분)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다. 타고난 사업수완과 추진력으로 초창기 석유 시장에 뛰어든 진취적인 사업가. 동시에 늘 가족이란 존재에 목말라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한정된 자원을 둘러싼 기업 간의 경쟁, 생산과 파괴라는 개발사업의 양면성, 석유를 향한 한 인간의 집착과 열망을 생생하게 담고 있기 때문이다.
석유사냥꾼 대니얼
“여러분에게 개발권을 구걸하는 사람 중 진짜 석유 사업가는 드뭅니다. 대부분은 여러분과 기업 사이에서 당신이 받을 몫을 가로채는 투기꾼들이죠. 전 직접 시추를 합니다. 저와 계약하면 열흘 안에 작업에 들어갈 수 있어요.”

광부 출신인 대니얼은 땅 밑에 석유가 흐르는 곳을 찾아다니며 개발권을 확보해 사업을 벌이는 석유업자다. 영화 배경은 1911년 미국. 석유가 새로운 자원으로 부상하면서 앞다퉈 탐사에 나서는 ‘오일러시’가 벌어졌던 시절이다. 정제기술의 개발로 램프용 등유 수요가 늘어 등유 가격이 급등한 게 시작이었다. 보통 수요와 공급이 퍼즐처럼 맞춰질 때 자원 대체가 일어난다<그래프>. 자원은 시대의 환경과 기술 수준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데 이를 자원의 가변성이라고 한다.

사업 초기 기술도 자본도 부족했던 대니얼에게 석유 시추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탐사 작업 도중 사고로 세상을 떠난 동료의 어린 아들 H.W(딜런 프리지어 분)를 친자식처럼 데리고 다니며 자신이 성실하고 믿을 만한 ‘패밀리 맨’임을 강조한다. 자원사업의 핵심은 생산요소인 개발권을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축복일까 저주일까
“장담컨대 석유만 발견되면 이 마을은 살아날 뿐만 아니라 번성하게 될 겁니다.” 숙명 같은 가난에 지친 주민들 앞에서 대니얼은 이렇게 공언한다. 석유 생산의 직접적인 이득뿐만 아니라 작업자들이 마을에 머물면서 도로가 깔리고 학교도 생겨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는 얘기다. 이른바 자원의 축복이다. 반대로 자원이 풍부할수록 경제성장이 둔해지는 현상을 일컫는 ‘자원의 저주’라는 말도 있다. 천연자원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제조업이나 서비스업 발전이 더뎌지는 경우다.

대니얼이 땅을 사겠다며 제시한 돈은 가난한 주민들에겐 엄청난 액수다. 하지만 석유가 발견된 후 대니얼이 벌어들일 돈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자신의 땅에 석유가 있다는 것을 안다고 한들 시추 기술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기술력을 갖춘 업체들이 땅 주인을 설득해 탐사권을 따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천연자원의 특성상 탐사 성공률이 100%가 아니라는 것. 대니얼 같은 석유 개발업자들은 10%도 채 되지 않는 확률에 운명을 걸어왔다. 기술이 발전한 지금도 유전탐사 성공률은 30% 수준밖에 안 된다. 고위험·고수익 사업인 만큼 성공하면 ‘대박’이지만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시장에서 가격이 오른다고 해서 공급을 바로 늘리기도 어렵다. 천연자원의 특성상 공급 가격탄력성이 비탄력적이라서다. 자원 매장량이 정해져 있는 데다 유전 탐사에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대니얼처럼 검증되지 않은 곳에서 탐사를 통해 돈벌이를 시도하는 사람들을 석유업계에선 ‘와일드캐터(wildcatter)’라고 한다. 최근엔 위험도가 높은 사업에 대한 증권을 파는 사람도 이 명칭으로 부른다. 치밀한 분석보다는 직관으로 사업을 벌이기 때문에 이들은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맞닥뜨리기도 한다.

대니얼이 마을에 유정탑을 세우고 석유를 퍼올리기 시작할 때 예상하지 못했던 가스 폭발이 일어난다. 작업 현장을 구경하던 대니얼의 양아들 H.W가 이 사고로 청력을 잃는다. 하지만 대니얼은 사고현장에서 솟아오르는 불기둥을 보며 기뻐한다. “이 아래 석유 바다가 있다. 모두 다 내 거야.”
거액의 제안 들어오지만
대니얼의 예상대로 유전에선 엄청난 양의 석유가 쏟아져나온다. 자신을 돌보지 않은 대니얼에게 실망한 H.W가 크고 작은 사고를 치기 시작하자 그마저 멀리 있는 청각장애인 학교에 보내버리고 사업에만 집중한다. 어느 날 거대 정유회사인 스탠더드오일의 간부가 대니얼을 찾아와 “100만달러에 유전을 팔라”고 제안한다.

스탠더드오일을 세운 사업가 록펠러는 당시 열병처럼 번지던 석유 탐사 흥분에 휩싸이는 대신 다른 전략을 택했다. 탐사 실패율이 높고 유가 변동에 직격탄을 맞는 석유 시추업 대신 운송과 정유에 패를 걸었다. 석유가 산업용으로 다양하게 쓰일 가능성을 보이자 정제공장을 차린 것이다. ‘블랙 골드’라고 불렸던 석유도 정제하지 않으면 끈적끈적한 구정물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액의 제안이었지만 아들을 떠나보내고 사업을 한창 확장하던 대니얼은 예민하게 반응한다. “직접 땅 파면서 찾아보시죠. 남이 고생해서 얻은 유전 꿀꺽할 생각 말고.” 스탠더드오일의 간부가 “아무리 석유가 쏟아져봤자 팔지 못하면 소용없다. 어떻게 운반할 생각이냐”고 협박해도 대니얼은 꿈쩍 안 한다. 록펠러는 정유사업의 성공 여부가 물류비용을 얼마나 줄이느냐에 달렸다고 봤다. 관련 기업의 수직·수평적 결합을 통해 실질적인 시장 독점을 이뤘다. 이를 경제사에선 ‘트러스트’라고 부른다. 스탠더드오일은 당시 미국 석유 시장의 90%를 점유했다.

대니얼은 제안을 끝내 거절한다. 대신 바다까지 이어지는 송유관을 만들기 시작한다. 땅을 팔지 않겠다는 한 주민 때문에 송유관 길이를 80㎞ 늘려야 할 일이 생기자 대니얼은 무릎까지 꿇는다.
대니얼이 빠진 ‘자원의 저주’
영화의 마지막은 송유관 건설 성공 몇 년 후 거부가 된 대니얼. 하지만 이제 그의 주변엔 아무도 없다. 어른이 돼 찾아온 H.W가 “그동안 배운 것으로 내 회사를 차려 멕시코 유전을 개발하겠다”고 하자 대니얼은 “넌 내 아들이 아닌 경쟁자”란 악담을 퍼붓고 이들의 관계도 파탄이 난다. 대니얼은 거대한 저택에 혼자 살면서 외로움에 미쳐간다. 개발권을 따낼 때마다 대니얼은 자신을 ‘패밀리 맨’이라 자칭했지만 사실은 누구와도 자신의 것을 나누지 않았다. 석유가 콸콸 쏟아지는 유전을 찾아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끝까지 자신의 가족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가 진정 찾아내고 싶었던 것은 석유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의 성공을 함께 나눌 피붙이였지만 스스로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또 다른 자원의 저주에 빠져버린 것이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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