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단지에서 같은 주택형의 전셋값이 두 배나 차이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전세 매물 품귀로 새로 계약을 맺는 전셋값은 크게 치솟았지만, 기존 계약을 갱신할 땐 전셋값을 최대 5%까지만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31일 시행된 전·월세 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제 등 새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임대차 시장을 왜곡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서초구 반포동 ‘반포자이’ 전용 59㎡는 지난달 5일 14층 매물이 11억5000만원에 전세계약을 체결하며 신고가를 경신했다. 그런데 이 거래가 있고 11일 뒤인 16일 같은 주택형 15층 매물이 절반 수준인 5억5860만원에 전세계약을 맺었다.
지난달 15일 20층 전세 매물이 보증금 15억5000만원에 새 주인을 찾은 반포동 ‘반포래미안아이파크’ 전용 84㎡는 같은 달 27일 26층 매물이 이보다 5억5250만원 싼 9억9750만원에 전세 거래됐다.
서울 비강남권도 상황은 비슷하다. 마포구 성산동 ‘성산시영’ 전용 50㎡는 지난달 25일 9층 매물이 3억9000만원에 전세 거래되며 신고가를 경신했다. 이후 5일 뒤인 30일에는 같은 주택형 14층 매물이 이보다 1억4000만원 더 낮은 2억5000만원에 전세계약을 맺었다. 성북구 길음동 ‘래미안길음센터피스’ 전용 59㎡는 지난달 초 전세 실거래가가 6억4000만원까지 뛰었지만 지난달 27일 같은 주택형이 보증금 3억7800만원에 전세계약이 이뤄졌다.
같은 층에 있는 동일 주택형의 전세보증금이 두 배 가까이 차이나는 사례도 있다. 서초구 잠원동 ‘잠원동아’ 전용 84㎡는 6층 전세 매물 두 건이 지난달 각각 5억원(7일)과 9억2400만원(21일)에 계약됐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 전용 76㎡도 지난달 28일 9층 전세 매물이 4억5000만원에 계약을 체결했는데, 3일 뒤인 31일 같은 층의 동일 주택형이 3억8000만원 더 비싼 8억3000만원에 새 세입자를 찾았다.
송파구 문정동 ‘올림픽훼밀리타운’ 전용 117㎡는 지난달 20일 5억7750만원(11층)에 계약갱신이 이뤄졌다. 이는 5억5000만원에서 5%(2750만원) 올린 금액이다. 성동구 금호동 ‘금호삼성래미안’ 전용 59㎡는 지난달 6일 3억7000만원에서 약 5%(1840만원) 인상된 3억8840만원에 전세 거래됐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전세의 ‘이중 가격’은 장기적으로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리서치본부장은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는 임차인의 경우 당장은 싼 가격에 전세를 살지만 2년 뒤에는 너무 올라버린 전셋값 때문에 새로 이사갈 집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중 가격 현상은 아파트 매매 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같은 단지 내 비슷한 조건의 매물이더라도 세입자가 없거나 당장 입주 날짜를 확정할 수 있는 물건이 수천만원 이상 비싸게 거래되고 있다.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전용 84㎡는 세입자를 끼고 있는 경우 호가가 19억3000만원 수준이지만 바로 입주할 수 있는 매물은 호가가 최고 21억원에 달한다.
정연일 기자 nei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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