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개혁한다며 검찰 힘만 키우는 與

입력 2020-12-16 17:42   수정 2020-12-17 00:20

“관행적으로 넣었던 형사처벌 조항이 결국 검찰을 키우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얼마 전 지인인 정부 부처 전직 고위공무원 A씨의 말을 빌려 SNS에 올린 글이다. A씨는 사무관 시절 꽤 많은 법안의 초안을 만들면서 관행적으로 ‘징역 3년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식의 형사처벌 조항을 넣었다고 했다. 이제 와서 보면 과태료 과징금 등 행정처분으로 처리해도 충분한 사안이었다는 것이다. 이 의원은 “우리도 지금 그런 우(愚)를 반복하고 있지 않은가 돌아봐야 하지 않겠냐”고 당내를 향해 쓴소리를 했다. 글 말미에는 “우리 사회가 점점 더 형사처벌 과잉 사회로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김주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장)는 내용의 언론 기고문도 링크했다.

민주당은 연일 검찰 개혁을 부르짖고 있다. 급기야 추미애 장관의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는 16일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 정치적 중립 훼손 등을 명목으로 정직 2개월 처분을 내렸다. 민주당은 다음달에는 검찰을 견제한다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출범시킬 계획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을 줄지어 내놓고 있다. 기업 관련 처벌 조항이 두드러진다. 경제계 관계자는 “기업인들은 정말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1년9개월 동안 50여 차례 압수수색을 하고 430여 차례 임직원을 소환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수사 같은 사례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다.

한국경제신문이 지난 13일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함께 조사한 결과 21대 국회 출범 후 가결됐거나 민주당이 입법과제로 정해 본회의 통과가 확실시되는 기업 관련 법안 25개 중 18개가 기업 및 기업인 처벌 조항을 담았다. 이로 인해 신설된 징역형을 합산하면 62년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9일 국회를 통과한 금융복합기업집단감독법은 금융복합기업집단 임직원이 경영개선계획 정보를 누설할 경우 최대 10년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일반 대기업 지주회사가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을 제한적으로 소유할 수 있도록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국회 심사 과정에서 처벌 조항이 새로 들어갔다. CVC 투자금을 회수하는 ‘엑시트’ 단계에서 지분·채권을 총수 일가나 지주회사 체제 밖 계열사에 매각하면 3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민주당이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위헌 논란까지 일고 있다. 민주당과 정의당 등이 발의한 관련 법안은 사업주나 경영자가 안전 의무를 소홀히 해 노동자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 3~5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안전 의무를 다했다는 입증 책임을 기업 등에 돌리는 조항까지 있다. 여권 인사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조차 “‘범죄의 입증 책임은 검사가 진다’는 형사법의 대원칙을 전환시키는 것”이라며 위헌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형사처벌 강화는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산업재해를 일으킨 기업의 처벌을 강화한 새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이 올해 1월부터 시행됐지만 주요 업종의 사망 사고는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1~9월) 건설업 사고재해 사망자는 349명으로 전년 동기보다 13명(3.9%) 늘었다.

민주당이 진정 검찰을 개혁하겠다면 애꿎은 윤 총장을 내쫓을 것이 아니라 법에 산재해 있는 불필요한 형사처벌 조항들부터 들어내야 한다. 형사처벌 과잉 사회에서 웃을 사람들은 검사와 변호사밖에 없다.

van769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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