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실리콘밸리보다 실리콘힐스

입력 2020-12-20 18:35   수정 2020-12-21 00:33

‘실리콘밸리의 시조’ 휴렛팩커드(HP)는 193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팰로앨토의 차고에서 탄생했다. 한적한 농촌이던 이곳은 곧 세계 소프트웨어산업 중심지로 변했다. 반도체 재료 실리콘(Silicon)과 계곡(Valley)을 합친 조어(造語) 실리콘밸리는 ‘창업천국’의 대명사가 됐다.

8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정보기술(IT) 혁명의 진원지인 동시에 치솟는 집값과 심각한 교통난, 고율의 세금에 신음하는 곳이 됐다. 주(州)정부의 엄격한 코로나 통제와 봉쇄조치까지 겹쳐 엔지니어들의 불만이 고조됐다. 결국 실리콘밸리를 떠나는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이곳 터줏대감인 HP에서 분사한 클라우드업체 휴렛팩커드 엔터프라이즈(HPE)가 텍사스주 오스틴으로 본사를 이전하기로 했다. IT업체 오라클과 벤처캐피털인 8VC도 오스틴으로 간다. 오스틴에 새 공장을 짓는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 클라우드업체 드롭박스의 CEO 드루 휴스턴은 거주지까지 옮겼다. 올 들어 오스틴으로 이전한 회사는 40개에 이른다.

기업들이 이 도시를 택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PC업체 델을 비롯해 첨단기업이 4000여 개나 있다. 오스틴 서부 구릉지대는 실리콘밸리를 대체할 실리콘힐스(Silicon Hills)로 불린다.

텍사스주의 낮은 세율과 싼 땅값도 한 요인이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연방정부 소득세와 별개로 최고 13.3%의 개인소득세를 내야 하지만 텍사스주에는 소득세가 없다. 기업 활동을 옥죄는 관료주의와 환경·노동 규제도 덜하다.

또 하나는 고급 인력이 풍부하다는 점이다. 인근에 25개 대학과 연구소가 있다. 노동 인구의 절반이 대졸자다. 이는 삼성전자가 1998년 오스틴에 반도체공장을 세운 이유 중 하나다. 고급 일자리를 구한 시민들은 공장 앞 도로에 ‘삼성대로’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오스틴 인구는 1990년 47만 명에서 올해 약 100만 명으로 늘었다. 백인 비율이 절반 이하이고 히스패닉과 아시아계가 많다. 그만큼 개방적이다. 매년 세계 최대 음악축제 ‘SXSW’도 열린다.

사람과 기업, 물류와 돈이 모이는 곳에 미래가 있다. 그나마 미국 기업들은 실리콘힐스로 옮겨갈 자유라도 있지만, 코로나 사태로 가뜩이나 어려운 판에 ‘과세 폭탄’과 ‘징역형 규제’에 휘둘리는 한국 기업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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