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널뛰기 단골' 터키 리라화

입력 2021-03-22 17:46   수정 2021-03-23 00:40

화폐 단위 중에는 귀금속 무게를 재는 데서 유래한 것이 많다. 금속을 천칭에 달아 가치를 매기던 옛 풍습이 반영된 것이다. 1794년까지 프랑스에서 쓰였던 ‘리브르’, 2002년까지 이탈리아에서 통용된 ‘리라’는 모두 로마시대에 무게를 측정하던 ‘천칭(리브라·libra)’에서 유래했다. ‘파운드’는 ‘리브라’의 첫 글자를 변형한 화폐 단위(£) 겸 약자(略字)로 표기되는 무게 단위(lb)로 쓰인다.

로마제국 판도 안에 있던 다른 국가들처럼 터키도 금·은의 무게 단위인 ‘리라’를 화폐 단위에 적용했다. 오스만튀르크제국은 1844년 ‘오스만리라’를 도입했다. 공화국이 수립된 1923년에는 ‘터키리라’가 등장했다. 하지만 화폐로서 ‘무게감’은 빈약했다. 미국 달러당 9터키리라로 고정된 화폐가치는 달러페그제 폐지(1970년) 이후 1980년 달러당 80터키리라, 1990년 2500터키리라로 값이 뚝 떨어졌다. 1990년대 중반부턴 ‘세계에서 가장 가치 없는 통화’로 기네스북에 단골로 등재됐다.

2005년 달러당 135만터키리라까지 돈값이 추락하자 화폐 단위를 100만분의 1로 낮춘 리디노미네이션이 단행됐다. 하지만 ‘신(新)리라화’ 도입 후 안정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대미관계 악화로 2018년 3월 달러당 4터키리라대 초반이던 화폐가치가 8월에는 거의 두 배인 7터키리라대로 폭락한 ‘통화위기’가 닥친 것이다. 터키중앙은행이 환율 방어를 위해 부랴부랴 기준금리를 연 24%까지 올리는 강수로 급한 불을 껐다. 당시 한국에선 터키리라화로 가격이 매겨진 명품을 반값에 사겠다는 ‘직구 붐’이 일기도 했다.

화폐가치가 널뛰는 일이 잦다보니 터키리라화는 브라질 헤알화, 아르헨티나 페소화,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화와 함께 신흥국발(發) 금융위기의 ‘진앙’으로 지목받곤 한다. 이들이 ‘불량 화폐’ 취급을 받는 데는 산업기반이 없고 정치상황마저 불안정해 포퓰리즘이 창궐한다는 점이 공통적으로 꼽힌다. 외채는 많고 외화보유액은 빈약한 탓에 자연스레 돈도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터키리라화 값이 한때 17%나 폭락하는 일이 또 벌어졌다. 기준금리 인상을 주도해온 터키중앙은행 총재가 넉 달 만에 전격 해임되는 등 정치·경제 불안이 재차 불거진 영향이다. 불안정성 탓에 이젠 암호화폐와 비교될 판이다. 터키리라화가 그런 ‘오명’을 씻고 어원처럼 ‘무게’와 ‘균형’을 갖춘 화폐로 거듭날 수 있을까.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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