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 미국과 '고슴도치' 중국, 영원히 대화 불가능한 G2 [여기는 논설실]

입력 2021-03-23 09:32   수정 2021-03-23 09:59


중국과 미국·유럽 등 서방국가 간의 대립이 하루가 다르게 격화되고 있습니다. 일부 외신들은 '신(新)빙하기'가 도래했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도무지 끝이 보일 기회를 찾기 힘든 미·중 대립과 관련, 두 나라의 특징을 '여우'와 '고슴도치'에 비견한 전문가의 분석이 나와 눈길을 끕니다. '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처럼 도무지 공통점이라고는 찾아보긴 힘든 양자 간에 타협점을 찾아보긴 쉽지 않아 보입니다.

유럽연합(EU)이 22일(현지시간) 열린 EU외무장관 이사회에서 중국의 위구르족 인권침해를 이유로 중국 관리들에 대한 제재를 채택했습니다. 제재 대상에는 위구르족 탄압에 책임이 있는 중국 관리 4명과 단체 1곳이 포함됐습니다. EU가 중국에 대해 제재를 취한 것은 1989년 톈안먼 사태 이후 처음입니다.

EU가 30여 년 만에 대(對)중 제재에 나선 것과 함께 미국과 캐나다, 영국도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에서 벌어지는 소수민족 인권유린을 비판하며, 동시 제재의 보조를 맞췄습니다. 앞서 설전 끝에 지난 19일 막을 내린 미·중 고위급 회담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서방 세계에 중국을 향해 대대적인 공세에 나선 모습입니다. 특히 홍콩 민주화 사태 등에서도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며 중국과의 우호적 관계 유지에 공을 들였던 EU의 태도 변화가 주목됩니다. 인권과 자유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는 거리가 먼 행보를 보였고, 전 세계를 향해 공격적으로 대하는 중국의 태도를 더는 묵과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듯 보입니다.

이에 중국도 "중국의 주권과 이익을 심각히 침해하고, 악의적으로 거짓말과 가짜정보를 퍼뜨린 유럽 측 인사 10명과 단체 4곳을 제재한다"며 보복 조치에 나서는 등 까칠한 모습입니다.

이처럼 중국과 서방 측간 대립이 심화하는 가운데 미국 하버드대의 유명 역사학자인 니알 퍼거슨 교수가 블룸버그통신 기고에서 미국(서방)을 '여우', 중국을 '고슴도치'에 비유한 분석을 내놔 눈길을 끕니다. 여우와 두더지의 비유는 20세기 유명 사상가인 이사야 벌린 전 옥스퍼드대 교수의 저서 《고슴도치와 여우》에서 빌린 것입니다.

이사야 벌린은《전쟁과 평화》를 통해 드러난 례프 톨스토이의 역사관을 "여우의 재능을 타고났으나 항상 고슴도치가 되고자 했던 인물"이라고 요약했었습니다. 그리스 시인 아르킬로코스의 "여우는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고슴도치는 하나의 큰 것만 알고 있다"는 말을 원용한 이 분류법에 따르면 '고슴도치형' 인간은 모든 것을 하나의 핵심적인 명료하면서도 일관된 비전에 조화시키는 사람을 지칭합니다. 통일된 사고, 하나의 통합된 시스템 집중적인 인물입니다. 벌린은 고슴도치형 인물로 단테와 플라톤, 루크레티우스, 파스칼, 헤겔, 도스토예프스키, 니체, 입센, 푸르스트 등을 꼽았습니다.

반면 전혀 관계없고, 모순되기도 하는 다양한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는 인물군에 대해선 ‘여우형’으로 분류했습니다. 어떤 특정한 도덕적·미학적 원리에 의해서 움직이는 사상 지향적 인물이라기보다는 행동파에 가까운 유형입니다. 이런 유형의 인물로는 셰익스피어와 헤로도토스, 아리스토텔레스, 몽테뉴, 에라스뮈스, 몰리에르, 괴테, 푸시킨, 발자크, 제임스 조이스가 포함됐습니다.

고슴도치형은 전체주의적·관념론적 성향을 지닌 경향이, 여우형은 자유주의적·현실주의적 성향이 많아 보입니다.

퍼거슨 교수는 한가지 문제에 집착하는 중국과 수많은 목적을 동시에 추구하는 미국이 접점을 찾기 힘들 것이라고 봤습니다. 헨리 키신저와 저우언라이가 미·중 수교 협상을 시작했을 때부터 대만 문제에만 집중한 저우와 미·소 핵 경쟁, 방글라데시 독립 등 6가지 문제를 동시에 협상 테이블에 올렸던 미국의 차이가 두드러졌고, 지금도 이런 성향은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미국(서방)과 중국이 근본적으로 사고가 다르고, 말이 통하지 않는 사이라는 퍼거슨 교수의 분석이 얼마나 적확한 것인지는 단언하기 힘듭니다. 다만 이런 성향이 바뀌기 어려운 양국의 기저에 깔린 근본 특징이라면 앞으로도 양국관계 개선을 기대하긴 난망할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입니다.

한편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심화하면서 아시아 각국은 점점 더 미·중 어느 쪽에 줄을 설 것인지를 분명히 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일본 전문가들이 "미국과 일본의 연대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일본 정부에 조언하고 나선 점도 눈길을 끕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의 대외문제 전문가들은 미국과의 밀월관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일본 정부에 이구동성으로 주문했습니다. 사토루 모리 법정대 교수는 "일본이 쿼드(미국 일본 호주 인도 4자 안보협의체) 뿐 아니라 다른 동아시아 국가와의 연대 강화, 국방비 증액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다쿠마 가요 도쿄도립대 교수는 "미·중 간의 간극은 쉽게 메울 수 없다"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간 신뢰 관계를 더 강화해야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일본이 미국 쪽에 섰다는 메시지를 좀 더 분명히 하라는 발언들입니다.

격렬한 패권경쟁의 시기에 한국이 취할 자리는 어디일까요. 한국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요. 쉽지 않은 결정이겠지만, 한국에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잘못된 선택이 불러올 후과는 복구가 절대 쉽지 않아 보이기도 합니다. 다소 모순된 주문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제발 신중하면서도, 신속하고, 그러면서도 결단력 있는 현명한 선택을 취하길 바랍니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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