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인 이상 사적모임 금지'가 낳고 있는 촌극 [여기는 논설실]

입력 2021-03-31 09:30   수정 2021-03-31 14:39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4·7 재·보궐선거로 전국이 뜨거운 용광로 같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선거에 목숨 거는 바람에 400명대에서 줄지 않는 코로나 신규 확진자 상황이나 백신 확보 차질 우려 등 문제가 메인뉴스에서 잠시 비켜나 있는 듯하다. 하지만 선기 시기 정치인들의 활동 반경이 넓어지면서 때아닌 방역 지침 위반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상임 선거대책위원장과 홍영표 민주당 의원이 최근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열린 재경전북도민회 정기총회 행사에 참석한 뒤 호텔 내 식당에서 16명이 함께 식사했다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4명씩 방을 나눠 이른바 '쪼개기 모임'을 했지만, 한 곳에서 식사한 것 자체가 방역수칙(5인 이상 사적모임 금지)을 어긴 것이란 지적 때문에 서울 강남구가 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보다 며칠 뒤엔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이장섭 민주당 의원 등 10여명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카페에 모였다는 신고가 영등포구에 접수됐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이준석 전 미래통합당 최고위원, 오신환 전 국민의힘 의원 등 6명이 여의도의 한 카페에 모여 역시 방역수칙 위반이란 신고가 들어갔지만, 영등포구 조사 결과 "위반이 아니다"란 판단이 내려졌다. 한 치의 물러섬 없는 선거 정국이다보니 기초단체는 물론, 서울시도 행여 정치적 오해를 살까봐 신고 및 민원 접수, 현장 조사, 당사자 의견 청취, 방역당국 유권해석 등을 아주 조심스럽게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정치인들이 선거 시기에 5인 이상 모이는 게 무슨 대수냐 싶지만, '사적(私的) 모임'이냐 아니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수 있는 간단치 않은 사안이다. 평소 '5인 이상 사적모임 금지'라는 10음절의 방역수칙만 들어봤을 뿐,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이들도 서울시의 관련 행정명령 고시와 공고를 보게 되면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게 된다. '친목형성 등 사적 목적을 이유로, 5인 이상의 사람들이 사전에 합의·약속·공지된 일정에 따라 동일한 시간대, 동일한 장소(실내/실외)에 모여서 진행하는 일시적인 집합 모임활동 금지'라는 짧지 않으면서도, 애매모호한 지침 때문이다.

서울시 관계자가 밝혔듯이, 많은 조사 사례가 쌓였어도 유형이 워낙 다양해 사례별로 따져봐야 하는 고충이 없지 않을 것이다. 사법기관의 판단이 아니라 행정기관의 처분이란 점에서 그 처분의 객관타당성, 신뢰성, 일관성을 놓고 이견 분출과 갈등은 불가피해 보인다. 김어준 사건에서도 마포구의 과태료 미부과(결국 방역지침 위반이 아니라는 판단) 처분을 서울시가 직권 취소해달라는 진정이 접수됐을 정도다. 서울시는 '직권 취소'를 하게 되면 자치구의 모든 과태료 처분을 직권 취소하는 게 가능해져 생각보다 복잡한 사안이라며 질병관리청과 법무부에 관련 질의를 하고 법률 자문을 구하고 있다고 한다.


어쩌다가 이런 애매한 상황이 초래됐는지 복기(復棋)해볼 필요가 있다. 그 결과 크게 네가지 짚어볼 대목이 드러났다. 첫째, 시작부터 문제였다. 서울시는 '5인 이상 사적모임 금지' 행정명령을 내린 작년 12월 23일 보충 설명자료에서 "거리두기 3단계는 마지막 선택지다. 3단계 격상 없이 (3차 대유행) 확산세를 꺾기 위해…"라는 해설을 달았다. 3단계 격상 시 당초 기준인 '10인 이상 모임·행사 금지'보다 강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인식도 있었다고 했다. 결국 3단계 격상은 부담스러워 피하고 싶은데, 격상의 효과는 얻고 싶어 택한 일종의 타협책이 '5인 이상 금지'였다는 얘기다. 당시는 2.5단계에서 이를 적용했는데, 지금의 2단계로 하향(2월15일)한 이후에도 여전히 강력한 사적모임 금지 명령을 유지하고 있으니 시민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적정 수준을 넘어선 너무 강도높은 방역수칙이 그 실효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형국인 것이다.

둘째, 탁상행정 문제다. 작년 말 집합금지 행정명령의 인적(人的) 적용범위에 대한 질의&응답 자료를 보면 서울시민의 경우, 다른 시도를 방문할 때에도 '5인 금지' 명령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산이나 광주로 출장간 직장인이 그 지역 사람들이나 회사 관계자들과 5인 이상 회식을 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게 과연 지켜질 수 있을까 싶다. 해당 지역민들은 그 지역 지침을 따를텐데, "나는 서울서 왔으니 회식에 갈 수 없다"고 하면 꽉막힌 융통성 없는 사람으로 치부되지 않을까.

셋째, 이를 준수해야 하는 시민들 입장에서도 헷갈리는 게 사실이다. 그리 복잡하지 않은 지침 같지만, 여러 경우의 수에 대한 질의가 이어지면서 첫 고시 내용(A4용지 2페이지 분량)이 9페이지로 크게 늘어났다. '사진에 합의 약속 공지된 일정에 따라'라는 구절도 중간에 보강됐다. '영유아를 포함하면 8인까지 모임 가능', '거주공간이 동일한 가족'에서 '직계가족 또는 거주공간이 동일한 가족'으로 일부 완화됐고, 결혼 상견례 모임도 예외로 인정해주는 등 여러 예외가 생겨났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예외 규정을 갖다 붙인들, 이런 저런 모임의 성격을 모두 구분해놓긴 힘들다. 그러니 지자체의 판단에 대해 '정치적으로 봐줬느니 안봐줬느니' 따지고 들면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이런 행정명령을 강제한 정부나 지자체 관계자들, 정치인들도 한 명의 시민, 자연인으로 돌아가면 본인들도 방역수칙을 크게 신경 안쓴다는 사실이 이번에 나타난 셈이다. 총리와 여당 대표까지 지낸 유력 대선 주자,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은 '내가 어차피 공인(公人)인데, 내가 가는 모임은 다 공적모임이지'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번에 속된 말로 '시범 케이스'에 딱 걸렸다. 자기들은 지킬 의사와 의지가 별로 없으면서 국민들에게만 강요한 꼴이다. 전대미문의 감염병 사태이긴 해도 사상 유례 없는 시민 생활 규율이 맞닥트린 딜레마이자,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 대증요법이 낳은 웃지 못할 촌극인 것이다. 이를 두고 전시행정이라 얘기해도 반박할 말이 없게 생겼다. 한심하다.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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