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병철 삼성 회장 유훈에 연설 중 울컥한 진대제 전 장관

입력 2021-03-30 16:02   수정 2021-03-30 16:14


지금으로부터 약 34년 전인 1987년 9월25일 오전 8시께. 암 투병 중이었던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이 불시에 경기 용인에 있는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에 방문했다. 당시 이윤우 공장장(前 삼성전자 부회장)과 진대제 연구팀장(前 삼성전자 사장, 前 정보통신부 장관, 現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 등 세 명이 호출을 받았다.

이 회장의 손엔 '한국 반도체는 일본을 베낀 것'이라는 기사가 실린 신문이 들려 있었다. 당시 일본은 256K D램을 개발,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고 반도체 강국으로 군림하던 때였다. 한국은 일본을 따라잡기 위해 256K D램을 연구 중이었다.

신문 기사는 당시 '마이크로칩'이라고 불렸던 시스템반도체 관련 얘기였다. 진대제 스카이레이크 회장에 따르면 당시 일본 소니의 디스플레이칩이 없으면 삼성전자가 컬러 TV를 만들 수 없던 시기였다. 진 회장은 "아날로그칩(시스템반도체)은 정말 만들기 어렵다"며 "나중엔 삼성이 아날로그칩에 일본업체의 로고까지 베꼈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한 동안 화를 내던 이 회장은 세 명 앞에서 "영국이 증기기관을 만들어 400년 간 세계를 제패했는데, 나도 그런 생각으로 반도체에 투자한 것이다. 앞으로 열심히 잘 해내라"고 말했다. 이 공장장과 진 팀장은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이 회장은 이틀 후 응급실에 실려갔고 두 달 후 작고했다. 진 회장은 삼성전자가 1993년 메모리반도체 부문 세계 1위로 올라서기까지 이 회장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고한다

30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개최한 '반도체 산업이 흔들린다: 반도체 산업 패러다임과 미래' 세미나에서 기조연설을 맡은 진대제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은 "이 회장의 유훈을 앞으로 반도체 종사자들에게 넘겨드리겠다"며 "한국 반도체 종사자분들 지금까지 잘 하셨고 한국 반도체를 계속 잘 유지하고 발전해달라"고 말했다. 진 회장은 이 회장의 유훈을 말하며 목이 메어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어 진 회장은 "반도체 기술 인재를 양성하고 선도하는 기업들의 의욕을 고취시킬 수 있는 정책 환경이 조성돼야 반도체 패권을 장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권태신 부회장 "메모리 성공에 취해선 안 된다"
이날 세미나에선 미국 등 주요국의 반도체 산업 육성 정책을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업체) 등 시스템반도체 부문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권태신 전경련 부회장은 개회사에서 "내년 세계 반도체 시장은 우리나라 국가 예산 558조원에 버금가는 약 530조원 규모로 전망된다"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반도체 수요는 급증할 수밖에 없어 우리 기업들에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과 중국 등 글로벌 강국의 반도체 산업 육성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며 "우리도 과거의 성공에 취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국 정부의 반도체 육성책에 주목했다. 노 센터장은 "미국이 무역 제재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는 데 단기적으로는 성공했다"며 "중장기적으론 팹리스에 편중된 반도체 산업 구조를 재편하고 미국 내 생산시설 투자를 유도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2024년까지 시설투자비의 40%를 세액공제하고 반도체 인프라와 연구개발(R&D)에 228억달러를 지원할 계획이다. 유럽연합(EU)는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이 최대 500억 유로를 투자하기로 합의한 상황이다. 반도체 기업 투자 금액의 20∼40%는 보조금 형태로 지급할 것으로 알려졌다.
안기현 반도체협회 전무 "한국의 1등 리더십 약해져"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각 국의 '반도체 내재화' 움직임에 주의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안 전무는 "시설을 자국에 구축하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며 "미국 EU 일본 모두 자국 산업 육성을 위해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 1위 한국 메모리반도체 산업에 대한 우려도 나타냈다. 안 전무는 "한국 기업이 1등은 맞는데 전 보다 경쟁의 간격이 좁혀지고 있다"며 "중국 리스크는 줄었지만 기술 격차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서 '1등에 대한 리더십'에 대한 우려가 생겼다"고 말했다. 이어 "메모리반도체를 세계 1위로 가져가야하기 때문에 제일 중요한 게 '투자'"라며 "적절한 시점에 투자가 진행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인력 양성'에 대한 조언도 나왔다. 안 전무는 "대만은 과거 반도체 교수 300명을 매년 뽑아서 운용했다"며 "한국 대학에서 반도체 교수를 많이 뽑고 이를 토대로 인력을 육성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홍대순 글로벌전략정책연구원장은 '기회이자 위기'라고 진단했다. 그는 "차 레이스에선 곡선코스에서 순위가 바뀐다"며 "반도체 산업은 현재 곡선코스에 와있기 때문에 치고 나갈 수 있는 기회이자 뒤로 밀릴 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 지원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홍 원장은 "미국은 1987년에 반도체 제조기술 연구조합 '세마테크'를 출범시켜 정부와 인텔 등 대기업이 투자한 덕분에 오늘날의 퀄컴이 탄생할 수 있었다"며 "대만도 1973년 설립한 ‘산업기술연구원(ITRI)’을 통한 지원 덕분에 TSMC, UMC와 같은 글로벌 기업이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반도체 산업은 기업 간 경쟁구도를 넘어 국가 간 경쟁에 직면한 만큼 정부와 기업은 사활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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