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경제의 정치화' 귀결은…

입력 2021-04-18 18:06   수정 2021-04-19 00:05

지난달 30일 청와대 브리핑을 둘러싸고 작은 논란이 있었다. 대통령 비서실은 당일 국무회의에서 있었던 이자제한법 및 대부업법 시행령 개정 사항을 브리핑했는데 대통령이 ‘신용이 높은 사람은 낮은 이율을 적용받고, 경제적으로 어려워 신용이 낮은 사람이 높은 이율을 적용받는 구조적 모순을 지적’했다고 회의 내용을 공개했다. 시장경제 원리상 당연한 금융 상식을 구조적 모순이라고 언급했으니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고 청와대 비서실은 나중에 잘못 전달됐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그동안 정부의 여러 정책을 볼 때 대통령의 언급은 잘못 전달된 것이 아니라 회의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믿고 있다.

출범 직후 최저임금 대폭 인상부터 수십 번의 부동산 정책까지 현 정부 정책은 가난한 이의 생계 보장, 투기세력 척결 등 온정적이고 감성적 용어로 포장돼왔다. 하지만 개인의 경제활동은 감성에 의존하지 않고 온정적이지도 않다.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 가격과 품질을 일일이 따지고 사업할 때 보다 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대부분 국민의 일상적 경제활동이다. 이 같은 수많은 개인의 경제활동이 합쳐져 국민경제를 이루는 것이므로 우리가 매일 보는 경제현상은 온정적 또는 감성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경제 문제를 시장 논리에 따라 풀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든가 특정 목표 달성에 이용하는 것은 전형적인 ‘경제의 정치화’ 현상이다. 경제의 정치화는 부패와 비효율을 초래하고 경제체제 내에 모순을 축적시켜 종국에는 ‘시장의 보복’을 불러온다.

경제논리에 따른다면 대통령이 바라는 ‘신용이 낮은 사람이 낮은 이율을 적용받는 것’이야말로 진짜 구조적 모순이다. 이 구조적 모순이 실제로 생기면 브리핑에서 대통령이 우려한 ‘저신용자는 불법 사금융에 내몰리는 상황’이 발생한다. 금융회사가 신용에 비례해 대출이자율을 적용할 수 없다면 자기 신용에 합당한 이자를 내고서라도 대출받고자 하는 저신용자는 공식적인 대부시장에서 배제돼 자기 신용보다 훨씬 더 높게 책정된 이자율이 기다리고 있는 암시장, 즉 불법 대부시장이 유일한 선택지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낮은 신용의 저소득층이 더욱 고통받는 결과가 나타난다.

또한 보다 나은 주택에서 거주하고 싶은 평범한 시민의 욕구를 ‘투기적 행태’로 치부하고 공급 확대보다는 수요 억제에 매달린 결과가 현재의 부동산 가격이다. 부동산 수요·공급의 경제 문제를 ‘투기와의 전쟁’이라는 정치 아젠다로 변질시킨 데 따른 시장의 보복이기도 하다. 여당이 졸속으로 통과시킨 ‘임대차3법’도 마찬가지다. 이는 부동산 임대차를 거래 당사자 간 계약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고 다수 임차인의 설움과 고통을 해소한다는 명목으로 정치적 이익을 얻고자 한 법 개정이었다. 그 결과가 전세와 월세의 폭등이었으며 이는 경제 논리에 충실한 많은 이가 예상한 바였다.

이번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의 변화는 지난 수년간 자행된 경제의 정치화에 대한 반작용이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투기 의혹은 단지 방아쇠였을 뿐 부동산 문제, 경기 침체, 일자리 부족 등이 뿌린 화약은 이미 오래전부터 차곡차곡 쌓여져 왔다.

경제의 정치화가 만들어 내는 왜곡과 부작용을 부유층, 기득권층은 이런저런 방법으로 회피할 수 있고 견딜 수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 서민은 그런 능력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추락하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의 정치화가 만연한 사회에서는 소득 양극화가 심해지는 것이고 보다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하는 정치권력일수록 불평등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이번 선거 결과가 여당이든 야당이든 향후 경제의 정치화를 시도하려는 정치권에 주는 분명한 경고로 받아들여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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