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송영길 대표가 서둘러야 할 결단

입력 2021-05-25 17:23   수정 2021-05-26 00:31

야구로 치면 깨끗한 안타를 한 방 날린 셈이라고 할까. 한국과 미국 대통령이 원자력 발전 분야 협력 강화에 합의하면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보름 전 발언이 주목받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 1주일 전 문재인 대통령에게 신개념의 원전산업 육성과 두 나라 간 협력 필요성을 공개 제언했던 것 말이다.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가 탄소중립화를 위해 소형모듈원자로(SMR) 분야를 연구하고 있으니, 이 분야에서 한국과 미국이 전략적 협력을 통해 세계 원전시장을 지배하는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할 필요가 있다.”

그가 지난 14일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간 간담회에서 이 말을 했을 당시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기조와 배치되는 소신 발언’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SMR은 한국 기업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인정받은 분야인데도 탈원전에 발목이 잡혀 제대로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 의제를 미리 파악하고 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그가 여당 내의 대표적인 탈원전 신중론자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문재인 정권 초기 탈원전의 서슬이 시퍼렇던 2019년 초에 신한울 원전 3·4호기 공사 재개 필요성을 공개 언급했고, 지난달에는 그와 가까운 여당 국회의원들이 ‘혁신형 SMR 국회포럼’을 출범시켰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원전분야 협력은 문 대통령이 아니라 바이든 대통령이 강력하게 요구해 합의됐다고 한다. 원전 시장을 중국·러시아의 손아귀에서 되찾기 위해서는 ‘원전 강국’ 한국의 도움이 필요함을 분명히 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도그마’에 빠져 기업들이 어렵게 키워 온 기술생태계와 일자리의 보고(寶庫)를 어떻게 짓밟아왔는지는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무(無)탄소 에너지’인 원전을 배제한 채 전국 산림과 해양생태계를 훼손해가며 태양광·풍력으로 ‘205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을 하겠다는 황당한 정책을 ‘아니면 말고’로 지켜만 보기엔 상황이 심각하다. 송 대표가 대통령 면전에서 ‘원전’을 언급한 것은 그래서 더 주목받았다.

5선 국회의원인 송 대표는 ‘86 운동권 그룹’의 맏형이지만 국내 2위 광역시인 인천시장으로 시정(市政)을 경험하면서 현실 감각을 길러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치권의 운동권 후배 대다수가 ‘친문’ 우산 밑으로 꼬여들어 교조적인 좌파 정책에 장단을 맞출 때 ‘현실’을 환기시키는 발언으로 존재감을 높여왔다. 문재인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 12월 중국에 다녀온 뒤 한국 자동차산업의 미래를 걱정하는 글을 트위터에 올린 게 단적인 사례다. “현대자동차 충칭공장의 노동자 평균 나이 26세(울산 46세), 월급 94만원(울산 800만원), 생산성 160(울산 100 기준). 품질은 더 좋다고 한다”는 메모를 올렸다.

왜 그런 차이가 나는지를 짚지는 않았지만, 그가 말하려는 메시지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현대자동차 국내 공장이 ‘고비용 저효율’의 대표적 사업장으로 전락한 게 강성 노동조합에 발목 잡힌 탓임은 일부 친문 정치인들조차 공공연하게 인정하는 터다. 단체교섭에서부터 파업 등 쟁의행위에 이르기까지 ‘노동권 보호’ 구실 아래 노조에 일방적으로 치우친 제도를 강행해 온 결과가 송 대표의 ‘충칭쇼크’였다. 현대차만 그런 게 아니다. 거의 모든 업종에 걸쳐 주요 사업장을 강성노조가 장악하고는 근무 성과에 관계없이 정년은 물론 매년 호봉승급까지 보장받는 ‘철밥통’을 쌓아 올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낸 게 민주당 정권이다.

기존 노동자들의 기득권만을 철통같이 지켜주는 나라에서 일자리에 새 피가 돌 리 없다. 2030 젊은 세대의 취업난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고, 좌절한 청년들이 암호화폐 같은 투기자산 시장과 빚더미 속으로 빨려들고 있는 현실을 코로나 사태 같은 외부환경 탓으로 돌릴 수 없다. 송 대표가 취임 직후 20대 청년들을 초청해 연 간담회에서 “코로나 사태가 아니었다면 촛불을 들었을 것”이라는 말을 들은 배경이다. 임기 2년짜리 당대표에게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없다면, 청년세대의 좌절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성실하게 짚어내 근본 처방을 내놓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할 것을 요청한다. 젊은 세대가 사회생활 출발점에서부터 자존감에 상처를 받고 분노부터 키우는 나라에서 제대로 된 미래를 기대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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