쌈장에 떡볶이 재료까지…한국이 아니라 일본 슈퍼입니다 [정영효의 인사이드 재팬]

입력 2021-06-04 05:52   수정 2021-06-04 09:45



오사카시 니시요도가와구 지부네 지역의 대형 슈퍼마켓인 헤이와도 프렌드마트에 들어서면 찐만두와 떡볶이, 고추장, 식초음료 같은 한국식품을 모아놓은 진열대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간사이 지역에서 165개 점포를 운영하는 상장 슈퍼마켓 체인 헤이와도가 이번 달부터 개최하는 '한국식품 페어'다.

오카모토 헤이와도 홍보 담당자는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이 막히자 한국식품 수요가 늘었다"며 "고객이 여행과 외식을 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행사를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일본 전역에서 ‘K푸드’ 행사
6월 현재 한국 식품 특별전을 여는 슈퍼마켓 체인은 일본 전역의 17곳에 달한다. 도쿄와 오사카 같은 대도시 뿐 아니라 일본 최북단 왓카나이의 사이죠에서부터 본토 최남단 가고시마의 슈퍼밸류규슈까지 전국 각지의 슈퍼마켓에서 한국페어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리고 있다. 편의점 체인인 로손도 지난달까지 간토 지역에서 한국식품페어를 진행했다.

지금 일본 열도는 한국 음식에 푹 빠져있다. 일본에서 한국 음식이 뜨기 시작한게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2004년 드라마 겨울연가의 인기로 1차 한류가 불어닥친 이후 일본의 거의 모든 슈퍼에서 한국 소주와 라면, 김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1~2년새 일본에서 부는 한국 음식 열풍은 차원이 다르다고 현지 식품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고추장, 쌈장 등 장류와 라면사리와 라볶이 짜장볶이 등 분식류에서부터 양념치킨 순두부찌개 부대찌개 등 가정간편식(HMR)까지 한국의 마트를 그대로 옮겨놓은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다양한 한국 식품을 찾아볼 수 있다.

얼마 전까지는 도쿄 신오쿠보의 한국 식품점이나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의 대형 마트에서나 구할 수 있었던 품목이다. 지금은 동네 슈퍼와 편의점에서도 온갖 종류의 한국 식품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편의점 체인인 미니스톱은 지난 3월부터 대상그룹의 가정간편식 안주인 곱창과 돼지두루치기까지 팔고 있다. 일부 한류팬이 호기심에 먹어보는 수준을 넘어 보통의 일본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찾는 요리가 됐다는 의미다.

몇 년전까지만 해도 한국 식품을 소개하는 특별전을 제안하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도쿄지사와 한국 식품회사들이 일본 유통회사들을 찾아다녀야 했다. 지금은 일본 전역의 슈퍼마켓 체인들이 한국 식품회사에 '한국페어를 개최하자'며 먼저 손을 내민다.


남성들도 “이태원 클라쓰 안주 먹어보자”
최근의 한국 음식 열풍은 사랑의 불시착과 이태원클라쓰로 대표되는 4차 한류와 코로나19가 합작해서 만들어진 현상이라는 분석이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난 일본인들이 넷플릭스로 시청한 한국 드라마에 열광하고, 이것이 자연스럽게 한국 음식에 대한 수요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한국 식품의 일본 수출이 급증한 시점도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확산한 때와 일치한다. aT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담배를 제외한 우리나라 가공식품의 일본 수출 규모는 2억7489만달러(약 3061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5% 늘었다. 1분기 CJ그룹과 대상그룹 일본법인의 매출은 626억원과 229억원으로 두자릿수 성장했다.

'K-팝' 아이돌 그룹이 주도한 지금까지의 한류는 산업 측면에서 일본의 10대 소녀팬들이 공연을 감상하고 음반을 사는데서 그친다는 한계가 지적됐다. 반면 이번 한류는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한류의 주요 소비자층이었던 여성 뿐 아니라 남성들까지 자연스럽게 드라마에 등장하는 한국 요리와 안주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설명이다.

가정간편식과 장류 수출이 급증한 것도 집에서 한국 요리를 직접 만들어 먹어보려는 일본인이 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지난해와 올해 1분기 가정간편식 수출액은 1882만달러와 2416만달러로 각각 68.7%, 28.4%씩 늘었다. 고추장 수출규모도 45.1% 급증했다.

요코하마시에 거주하는 나카무라 에미코씨는 "한국 식재료를 사서 유튜브 조리법을 보면서 양념치킨과 순두부찌개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국 식품회사에는 '한류드라마에 등장한 배우를 섭외해 그가 회식 장면에서 먹었던 안주를 광고로 찍고 싶다'는 일본 유통회사들의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
日 원조 시장도 한국산이 점령
일본 소비자의 기호도 막연히 '한국 음식'을 찾는 수준을 넘어섰다. 탕류, 조림류, 분식류 등 취향이 세분화됐다. 코로나19 이전까지 매년 300만명 안팎의 일본인들이 한국을 여행하면서 눈 높이가 높아진 탓이다.

일본인의 눈높이가 바꿔놓은 대표적인 시장이 김치다. 일본의 김치시장은 20년새 700억엔(약 7099억원) 규모로 커졌지만 일본 식품회사들이 90% 안팎을 점유하고 있다. 쓰케모노(일본식 야채절임) 시장이 5000억엔에서 3000억엔으로 줄어들자 쓰케모노 제조사들이 김치 회사로 전업한 영향이다.

김치라고는 해도 쓰케모노 제조사들이 만들다보니 살균한 배추에 고추가루 소스를 부은 배추절임에 가까웠다. '드라마 한류' 이후 분위기가 바뀌었다. 대상재팬 관계자는 "진짜 한국김치인 발효 김치를 콕 집어서 찾는 일본인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일본 시장에서 대상 종가집김치의 1분기 매출은 지난해보다 48% 늘었다.

일본이 원조를 자부하는 시장에 한국산이 역수출되는 현상도 벌어진다. 마시는 식초음료는 2005년 일본의 식품회사인 미즈칸이 처음 개발했지만 지금은 CJ의 미초와 대상의 홍초가 일본 시장의 50% 가까이를 차지한다.

노리마키와 후토마키 등 김말이 요리와 교자(일본 만두)가 발달한 일본에서 한국식 냉동김밥과 만두가 인기를 끄는 것도 이색적으로 받아들여진다. 1분기 CJ재팬의 비비고만두와 미초 매출은 작년보다 175%, 91%씩 늘었다. 임경일 CJ재팬 사장은 "일본식 만두가 기름지다보니 일본인들은 야채가 듬뿍 들어간 한국 만두를 먹는 순간 공통적으로 '건강한 맛'이라는 평가를 내놓는다"고 말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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