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하고 숨고 싶었다"…사퇴 심경 밝힌 조만호 무신사 대표

입력 2021-06-04 14:36   수정 2021-06-04 15:30

무신사가 조만호 대표 사임과 관련해 임직원에게 보낸 이메일 전문을 4일 공개했다. 조 대표는 임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최근 ‘남혐’ 논란과 관련된 심적 부담을 드러냈다. “무신사 회원을 만나면 인사하고 싶던 자신은 사라지고, 피하고 숨고 싶었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조 대표는 이날 공개된 ‘20년을 마무리하려 합니다’라는 이메일 전문에서 “무신사 운영의 최종 책임자로서 결자해지를 위해 책임을 지고 대표의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여러분들과 6500여 개의 입점 브랜드, 수많은 협력 업체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사퇴의 소회를 밝혔다.

그는 여성에게만 쿠폰을 지급한 사안과 관련해 “큰 고민없이 일부 회원과 일부 상품을 대상으로 잘못된 프로모션을 진행해 고객들로부터 큰 지탄을 받았다”며 “브랜드의 성공을 위해 경주했던 우리의 수많은 노력이 퇴색되는 상황에 놓였다”고 했다.

이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신사 회원임이 드러나는 분을 마주치면 기분 좋게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싶었던 어제의 저는 사라졌다”며 “이제는 거리에서 ‘커버낫-C로고’와 ‘디스이즈네버댓’의 로고가 새겨진 옷을 입은 사람들을 볼 때마다 피하고 숨고 싶어 하는 사람만 남았다”고 토로했다.

그는 “댓글 시스템이 있는 인터넷 서비스의 첫 화면에 접속하는 것, 메신저에 뜬 숫자를 없애는 일에도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게 됐다”며 “상당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크게 나아지지 않고 주변의 위로마저 더 큰 부담이 되어 마음과 정반대의 ‘괜찮다’는 말만 기계처럼 반복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메일 전문.

임직원 여러분께, 20년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무신사 대표 조만호입니다

무신사 구성원 여러분께 가장 먼저, 20년 전 처음 무신사를 만든 이후 지금까지 유지해온 운영자와 대표의 자리를 내려놓을 결심과 소회를 밝힙니다.

특정 고객 대상의 쿠폰 발행 및 최근에 있었던 이벤트 이미지 논란과 관련하여, 무신사 운영의 최종 책임자로서 결자해지를 위해 책임을 지고 대표의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여러분들과 6,500여 개의 입점 브랜드, 수많은 협력 업체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와 함께 이번 일을 겪으면서 한국에서 브랜드 패션 유통을 대표하게 된 지금의 무신사에는 제 개인의 직관에 의존한, 자칫 성급한 추진력보다 앞으로 더 큰 성장과 발전으로 위해 전문화된 팀의 시스템이 더 필요하고 낫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수평적 구조로 독립 운영을 펼칠 스타일쉐어·29CM 에도 부담을 드리고 싶지 않은 마음입니다.

서비스 기획 / 개발 / 디자인 / 영업 / 마케팅 / 물류 / 운영 / PB 사업 / 신규 사업 등 무신사의 거의 모든 부문과 본부에는 이미 많은 경력의 뛰어난 전문가들이 배치되어 좋은 팀워크를 이루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입점 브랜드의 성공을 돕고 고객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드리자’는 목표만을 생각하며 그 동안 저의 뜻에 따라 좋게 말하면 유연하게, 나쁘게 말하면 ‘저의 뜻’이라는 이유만으로 충분한 검토 없이 중요한 결정들이 이루어졌습니다. 물론 창업자이자 대표인 저에 의해 많은 부분이 좌우되는 운영 방식으로 단기간의 고성장을 이루어 내었습니다. 하지만 무신사가 대한민국 패션 산업에 일정 부분 영향을 끼칠 수 있을 만큼 성장한 지금, 저라는 존재가 앞으로 더 크고 건강한 성장을 방해하는 좋지 못한 레거시 중 하나일 수 있다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이제는 전체 조직의 관리와 사업 전반의 관장까지 더 뛰어난 역량을 가진 새로운 리더가 필요한 시점이 된 것 같습니다.

올 한 해, 우리는 입점 브랜드의 ‘매출 증대’와 ‘입점 브랜드 가치 제고’, ‘고객 만족’이라는 멈추지 말아야 할 우리의 의무에 더해 경쟁 관계였던 다른 회사를 이제는 동료로 맞이해야 하는 일, 아직 완벽하게 마무리하지 못한 문제의 해결 등 중요한 과제들을 많이 남겨두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발생한 문제의 해결과 새롭게 관계사가 된 회사와 조화로운 융합, 무신사의 새로운 대표를 포함한 탄탄한 경영진을 구성하는 것까지. 무신사 대표로서 맡은 마지막 소임이라 생각하고 관계된 임직원들과 함께 책임 있게 마무리하겠습니다.

무신사와 저의 분리가 필요합니다.

지난 수년간 매일 하루 10번 이상 포탈에서 [무신사]를 검색하여 거의 모든 외부 반응을 살피고, ‘명예 QA요원’으로 불릴 정도로 하루 100번 넘게 무신사에 접속하여 서비스 전체를 모니터링 해왔습니다. 아마 어느 시점부터 저는 무신사에 동기화되어 ‘무아일체’화 되었던 것 같습니다. 고백하건대, 그런 저에게 이번 일은 회복이 어려워 보이는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러했겠지만, 저 역시 1년 365일 내내 무신사를 통해 더 많은 브랜드와 더 좋은 상품을 선보이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그 일환으로, 약점이라 여겨왔던 부분을 극복하고자 당시로는 큰 고민없이 일부 회원과 일부 상품을 대상으로 잘못된 프로모션을 진행해 고객들로부터 큰 지탄을 받았습니다. 또한 정도의 길을 걷고 있는 대다수의 입점 브랜드와 고객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브랜드 상품만을 취급하겠다고 강조한 취지가 본뜻과 다르게 받아들여지면서, 브랜드의 성공을 위해 경주했던 우리의 수많은 노력이 퇴색되는 상황에 놓이기도 하였습니다.

충분히 예방하여 발생하지 말았어야 하는 일이었으나 그러지 못한 부분은 명백히 저의 불찰이고 발생한 일에 대해 최종적으로 제가 책임져야 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비슷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철저히 시스템을 갖추겠지만, 만약 같은 상처를 다시 입게 된다면 저 역시 무신사 대표이기 이전에 한 명의 자연인으로서 온전히 삶을 이어가기 어려울 것 같다는 무거운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스타일에서 무신사 회원임이 드러나는 분을 마주치면 기분 좋게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싶었던 어제의 저는 사라지고, 이제는 거리에서 ‘커버낫-C로고’와 ‘디스이즈네버댓’의 로고가 새겨진 옷을 입은 사람들을 볼 때마다 피하고 숨고 싶어 하는 사람만 남았습니다. 댓글 시스템이 있는 인터넷 서비스의 첫 화면에 접속하는 것, 메신저에 뜬 숫자를 없애는 일에도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상당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크게 나아지지 않고 주변의 위로마저 더 큰 부담이 되어 마음과 정반대의 ‘괜찮다’는 말만 기계처럼 반복하고 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무신사와 저의 분리를 이뤄낼 수 있을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만 무신사 대표직에서 내려오는 것이 우선 하나의 방법일 것 같습니다.

브랜드의 성공을 도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무신사가 패션 생태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말합니다.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님을 설명하고 싶습니다.

제가 무신사에 처음 쇼핑 기능을 붙일 당시에는 동대문 도매 시장에서 사입한 상품을 판매하는 이른바 ‘보세’ 쇼핑몰과 해외에서 글로벌 유명 브랜드를 들여온 ‘병행 수입’ 쇼핑몰, 그리고 지금보다 더 만연한 ‘가품’을 유통하는 쇼핑몰, 온라인을 그저 땡 처리 채널로 인식한 ‘브랜드 이월 상품’ 쇼핑몰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당시에는 디자이너 브랜드나 소규모 브랜드들이 설 자리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국내에서 손 꼽히는 유명 디자이너들조차 자력으로는 패션쇼를 진행하기 어려웠고 직접 옷을 만들고 판매하여 성공을 이루기보단, 당시의 패션 대기업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이름의 임원으로 합류하는 것이 성공의 척도였던 시절이었습니다.

스니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커뮤니티 형태였던 무신사의 초창기 시절부터 자신만의 브랜드 네임과 로고를 만들어 브랜드를 런칭하는 분들을 곁에서 지켜봐 왔습니다. 그들을 많은 사람에게 소개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콘텐츠로 풀어내기 시작한 것이 ‘무신사 매거진’이고 이후 쇼핑 기능을 더한 것이 ‘무신사 스토어’인 것입니다. 저는 무신사를 통해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국의 수많은 ‘숀 스투시’를 소개하는 일을 해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브랜드를 런칭하고 유의미한 판매고를 달성하기까지 많은 것들이 필요합니다. 무신사는 단순 쇼핑몰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필요로 하는 다양한 것들을 브랜드에 제공하고 있습니다. 초창기의 무신사는 브랜드를 위해 포토그래퍼를 고용하여 화보를 찍어주었고 소속 에디터들은 패션 브랜드 행사장을 취재하였습니다. 브랜드 디렉터 인터뷰나 쇼룸 취재를 통해 그들이 가진 브랜드에 대한 철학, 시즌 컨셉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웹을 통해 전하던 글과 사진 위주의 콘텐츠는 영상이 더해졌고 페이퍼 매거진과 다수의 온라인 서비스를 통해 만나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패션 브랜드를 위한 패션 특화 공유 오피스 [무신사 스튜디오], 팝업 행사를 열 수 있는 이벤트 공간 [무신사 테라스], 패션 브랜드가 선호하는 대형 옥외 디지털 광고까지 준비하였습니다. 무신사 외 채널에도 다양한 방식의 홍보가 가능한 홍보대행 지원 사업도 시작했습니다.

생산을 위한 자금 지원과 물류와 CS팀 운영, 제품 생산, 오프라인 공간 마련을 위한 컨설팅까지. 온라인 유통 기업이 반드시 제공할 필요가 없는 영역까지도 무신사의 운영 경험으로 쌓인 것들을 적극적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무신사의 이런 노력을 통해 브랜드에 대한 아이디어와 디자인 능력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브랜드를 만들 수 있게 되었고, 실력과 노력이 뒷받침된 브랜드는 큰 자본과 전국적인 오프라인 유통망 없이도 무신사를 잘 활용하여 수백억 원대의 매출을 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브랜드의 자체 노력과 능력이 8할 이상이었겠으나, 실제 이런 과정을 거쳐 수천억 원대의 가치를 인정받은 회사도 생겨났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무신사가 2조 가치로 첫 투자를 확정했을 때보다 더 기뻤습니다.

얼마 전 오픈 한 서울 최대 규모의 백화점에는 무신사의 주요 브랜드들이 다수 포진했습니다. 그들을 모셔가기 위해 콧대 높던 백화점에서 많은 부분을 양보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브랜드의 성공을 위한 조력자의 역할이지만, 백화점과 대기업 위주였던 패션 유통 산업 구조에서 중소 규모 브랜드들이 큰 영역을 차지할 수 있도록 도와 더 건강한 생태계를 만드는 데 기여했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의(衣)의 혁신을 이루어내고 있다는 긍지를 가져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하는 대표님들의 꿈이 실현될 수 있도록 도움을 줬던 부분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무신사는 다양한 패션 브랜드가 입점한 패션 플랫폼이자 동시에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세상에 알리고 싶은 대표님들의 꿈이 모인 곳이고, 이 자체가 무신사의 자랑이자 어떤 가치와 견줄 수 없는 큰 자산입니다.

고객의 관점에서도 기존에 소수의 대기업 위주였던 제한된 브랜드 패션 시장의 좁은 선택지에서 벗어나, 수천여 개 브랜드가 경쟁하는 무신사를 통해 검증된 브랜드와 상품을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거대 유통 대기업과 자본 시장의 투자자들도 흔히 말하는 도메스틱 브랜드에 집중하게 되면서 브랜드의 경쟁력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시장의 규모 또한 커지고 있습니다. 과거, 가격 거품 논란이 있었던 브랜드 패션 시장이 소비자에게 합리적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고, 품질 논란이 있었던 비 브랜드 패션 시장 참여자들에게도 국내 브랜드가 통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결과적으로 소비자 편익 증대에 기여했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신사가 제공하는 다양한 서비스와 패션 콘텐츠도 나만의 패션 스타일을 찾고 싶은 고객분들의 길잡이 역할을 해왔습니다. 무신사를 이용해 스타일 변신을 하거나 패션에 자신감을 얻게 된 고객 후기를 접할 때면 무신사의 활동 하나 하나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매일 같은 일을 하지만, -내가 만든 옷을 누군가가 멋있게 입어주는 기쁨, 새로운 브랜드와 상품을 발견하는 즐거움, 마음에 꼭 드는 스타일이 연출되었을 때의 자신감- 그 일을 통해 매일 십 수만 건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점을 스스로 기억했으면 합니다.

우리의 길을 계속 갑시다.

외부에 잘 드러나진 않는 일이지만, 무신사는 브랜드 간 디자인 유사 상품이나 라벨 교체 상품에 대해 무수히 많은 중재와 필요한 조치를 취해 왔습니다. 그리고 무신사의 매출 및 이익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더라도 입점 브랜드의 상표권 및 디자인 보호에 대한 지원을 지속해 왔습니다. 상표권의 맹점을 악용해 글로벌 오리지널 브랜드의 승인 없이 국내 상표권을 선점한 브랜드에 대해서도 여전히 입점 불가라는 단호한 정책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간단해 보일지 모르지만 이러한 일들은 매우 민감하며 많은 이들의 이해를 조율해야 하는 지난한 일들의 연속입니다. 그리고 대부분 단기적으로는 무신사의 매출과 이익이 감소하고 경쟁 유통사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결론 나 버리기 마련입니다.

만약 우리가 브랜드 패션 비즈니스를 더 많은 상품 확보와 매출을 우선하여 숫자와 돈으로만 생각했다면 결코 지금처럼 입점 브랜드를 보호하기 위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의무도 법적인 문제도 없으며 남들은 하지 않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런 일들은 결국 진정성 있게 브랜드를 만드는 이들의 저변을 더 넓히고 브랜드를 대하는 우리의 철학을 알리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최종적으로는 무신사가 대형 유통사의 공세를 이겨내고 입점 브랜드와 함께 최고의 브랜드 패션 플랫폼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지금은 너도나도 브랜드에 대해 상생 지원 계획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무신사는 수년 전부터 자발적으로 브랜드에 생산 대금을 무이자로 대여해 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지금까지 매년 확대해 왔습니다. 이는 패션 유통 플랫폼 중 최초라고 생각합니다.

2015년, 소비자들로부터 사랑 받으며 매년 수십 퍼센트의 신장세를 이어가고 있던 브랜드조차 봄부터 많은 수량의 겨울 상품을 준비하느라 어려움을 겪는 상황을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전년의 영업 이익과 브랜드 대표님의 개인 사재를 털어도 여전히 자금이 부족하여 곤란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브랜드 대표님과 상의하여 추가로 필요한 생산 자금을 무이자로 빌려주고 겨울 상품을 판매한 다음에 돌려받기로 한 것이 현재 동반성장 프로젝트의 첫 시작이었습니다.

당시의 무신사는 가능성만 인정받을 뿐, 쌓아둔 영업 이익도 적고 외부 투자도 받지 않은 작은 회사였던 점을 고려하면 꽤 큰 결단이었고 모험이었습니다. 브랜드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수 있어 좋았고 신뢰가 쌓여가는 것이 기뻤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브랜드 대표님들과의 대화가 일이자 취미였고 그 자체로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분들과 대화하면서 브랜드가 필요로 하는 것 중에 무신사가 준비할 수 있는 부분을 캐치해 무신사가 나갈 방향을 가다듬었습니다. 무신사의 성장 비결은 얼핏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은 브랜드가 필요로 하는 것을 귀 기울여 듣고 잘 준비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이 일만 계속 잘해 나가도 충분히 더 큰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해외 진출은 숙제입니다.

한국의 좋은 생산 시스템과 수준 높고 감각적인 디자인 능력, 경쟁력 있는 가격, 성숙한 패션 시장 등 한국 패션 브랜드는 이제 글로벌 시장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습니다. 그간 무신사가 중소 브랜드들이 더 많은 국내 고객에게 도달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면, 이제 해외 고객에게도 우리 입점 브랜드를 소개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준비를 시작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언어권의 고객에게 우리 상품과 콘텐츠를 도달하도록 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수년간 스스로 숙제라고 생각하고 크고 작은 시도를 해왔으나, 국내 시장의 높은 성장세를 쫓아가는 데 우선순위가 밀려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무신사 대표로서 제 개인의 임무는 여기서 마치고 회사와 관련된 업무는 모두 내려놓지만, 중장기적으로 성장 가능성 높은 신생 브랜드를 발굴하고 한국 패션 브랜드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에서 저의 역할을 찾아보려 합니다.

저의 지난 20년을 좋은 브랜드를 국내 고객들에게 알리는 데 써 왔다면 앞으로의 20년은 한국 브랜드가 해외 고객들에게도 사랑받을 수 있게 하는 데 쓰겠습니다.

고객 분들의 신뢰도 회복합시다.

무신사의 초창기 커뮤니티 시절, 지금은 없어진 명동 스니커 멀티숍의 매니저분이 기억납니다. 우연히 방문하게 된 숍의 매니저 분께서 당시 크지도 않았던 무신사를 잘 알고 있고, 본인도 무신사 회원이라며 처음 보는 저에게 적지 않은 할인을 해주었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제가 굉장히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았고 따뜻한 유대감을 느꼈었습니다. 무신사 스토어를 오픈 하면서 이때의 좋은 기억을 되살려 우리 회원들에게 기분 좋은 할인 혜택을 제공해주고 싶었습니다.

커뮤니티로 시작한 만큼 구매 금액과는 별개로 커뮤니티 활동으로 쌓인 포인트를 회원 등급에 반영하거나, 통상 1년 단위의 구매액만 회원 등급 지표로 산정하는 것과 달리 상대적으로 긴 기간의 구매액을 반영하는 정책을 시행했고, 이러한 활동이 무신사 성장에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정확한 판매 데이터에 근거한 정직한 랭킹 시스템과 판매 수량의 투명한 공개, 광고 없는 상품 정렬, 인위적 보정을 거치지 않은 후기 노출 등은 일견 당연한 듯 보이지만 고객의 관점에서 여러 차례 고민하여 만들어진 결과물입니다.

회원 등급에 따른 추가 할인 혜택, 추가 적립금, 쿠폰, 적립금 선 할인, 전 상품 무료배송, 네 가지 후기 운영 등 다른 곳에 없는 다양한 정책을 만들 때도 우리 회원들이 더 많은 혜택을 누리길 바랐고, 이를 통해 회원들로부터 칭찬을 듣고 사랑 받는 서비스가 되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 같습니다.

큰 규모의 서비스가 된 지금, 세심하게 살피지 못하여 잘못된 정책을 펼친 것은 사실입니다. 무신사에 대한 고객들의 기대감과 애정이 컸던 만큼 더 큰 지탄을 받았습니다.

이번 일은 단기간 무리한 목표 달성만을 생각한 미숙한 경영자로서 온전히 저의 불찰입니다. 저는 이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일선에서 물러나지만, 여러분들께서는 우리가 지금까지 가져왔던 ‘입점 브랜드의 성공을 돕고 고객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드린다.’라는 목표를 잊지 않고 서비스를 이어가 주십시오. 결국 고객들께 진심은 통할 것이라 믿습니다. 다시 사랑 받는 서비스가 되어 우리가 목표한 ‘입점 브랜드를 도와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것을 고객들의 지지 속에 달성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임직원들의 사기가 꺾인 것이 가장 큰마음의 부담입니다. 이번 쿠폰 논란으로 인해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멈추게 되었고, 거래 업체와 고객들께 사과하는 직원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대표로서 많이 괴로웠습니다.

지금의 상황이 상당 부분 해결될 때까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겠습니다만, 어려운 시기에 개인의 사정이 더해져 이런 결심을 전하게 되어 미안한 마음이 앞섭니다.

새로운 리더가 더 좋은 경영을 펼칠 것이라 믿습니다. 기존 사업을 강화하고 새로운 신규 사업을 통해 회사의 지속 성장을 견인할 것입니다. 지금보다 더 체계적인 기준에 따라 능력과 성과에 대한 합당한 보상이 이루어지도록 거듭 당부하겠습니다. 후임 대표는 현재 내부에서 선정 절차를 진행 중이며, 빠른 시일 안에 공지하겠습니다.

덧붙여 앞으로의 성과에 대한 보상과는 별개로 지금까지 저를 믿고 무신사를 함께 만들어 온 본사 임직원 여러분과 무신사와 뜻을 함께하기로 한 관계사 구성원, 그리고 근시일 내 합류할 분들께 제 개인의 주식 중 1000억 원 상당을 나누고자 합니다. 오래 전부터 생각해 온 일이나 시기를 특정하지 못했습니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이 함께 있는 지금, 무신사에서의 제 역할을 마무리하면서 전하게 되었습니다.

구성원 한 분 한 분에게 감사와 미안한 마음, 앞으로의 무신사를 부탁하는 마음과 함께 직접 얘기하고 싶지만, 이 글을 빌려 알리는 점 이해해 주십시오. 이 시간에도 각자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임직원 여러분과 지금은 각자 꿈을 찾아 떠나갔지만 초기에 지하 사무실에서 함께 동고동락했던 직원들까지, 그간 저를 믿고 지금까지 달려와 주어 정말 고맙습니다. 앞으로 더 큰 도약을 여러분께 부탁 드리겠습니다. (주식의 나눔은 수개월 내 구체적인 기준과 방안을 마련하여 별도로 전하겠습니다.)

ps. 20년 전 은평구 갈현동 반지하 빌라의 좌식 책상에서 시작된 여정을 성수동 지하 두 평 사무실에서 끝마칩니다. 진심으로 제 일을 사랑했습니다. 여러분께 기억되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2021-06-03
조만호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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