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철의 글로벌 북 트렌드] 무너지는 일본 중년 남성들의 초상

입력 2021-06-10 17:55   수정 2021-06-11 02:12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2021 세계 성별 격차지수’에서 일본은 조사 대상 156개 나라 가운데 120위를 차지했다(한국은 102위).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와 전근대적인 직장 문화는 일본 사회의 혁신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여겨지고 있고, ‘남자는 직장에서 돈을 벌고 여자는 집에서 가정을 돌본다’는 생각이 일본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다. 일본 총리를 지낸 모리 요시로 전 도쿄올림픽·패럴림픽대회조직위원장이 “여성은 말이 많아 회의가 오래 걸린다”는 성차별 발언을 하는 등 유력 정치인들은 여전히 망발을 일삼으며 여성 멸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사회의 가부장적인 지배 이데올로기에도 점차 균열이 생기고 있다. 세계적인 페미니즘 열기와 ‘미투 운동’의 확산, 관련법 개정 등으로 직장 안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한 갈등 표출도 늘고 있다.

2015년 일본 중년 남성이 겪는 고뇌와 좌절을 소개한 책 《남성표류(男性漂流)》로 일본 사회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던 오쿠다 쇼코(田祥子)가 이번에는 《버림받는 남자들(捨てられる男たち)》이라는 전작보다 훨씬 노골적이고 도발적인 제목의 책을 선보였다. 1966년생 여성 르포 작가인 오쿠다는 20년 넘게 중년 남성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르포르타주 성격의 이번 신간에는 일본 남자들이 처한 애절한 상황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책은 여성 활약에 농락당하는 남자들, 성희롱이란 낙인이 두려워 사소한 말이나 행동조차도 조심할 수밖에 없는 남자들, 위아래에서 공격당하며 당황해하는 남자들, 직장과 가정 그리고 사회에서조차 버려질까 두려워하는 남자들 등 다양한 위기에 처한 일본 중년 남자들의 초상을 소개한다. 평소에는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던 남자들이 눈이 충혈될 정도로 울분을 토해내거나 필사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는 장면이 곳곳에 등장한다.

‘마타하라’(임신 여성에 대한 괴롭힘), ‘파타하라’(남성 육아에 대한 괴롭힘), ‘파워하라’(상사 갑질 괴롭힘), ‘세쿠하라’(성희롱 괴롭힘) 등 책에는 직장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괴롭힘의 유형이 소개된다. 책에 등장하는 중년 남자들은 부하 직원의 성장을 간절히 바라며, 장시간 노동 문제를 해소하는 데 앞장서고, 여성 직원 채용을 늘리기 위해 애쓰는 등 직장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직장에서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처자식을 돌보기 위한 뜨거운 열정을 지닌 평범한 가장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왜 꼰대 취급을 당하며, 성희롱의 당사자로 지목되고, 망신을 당하면서 자리에서 끌려내려오고 있을까.

저자는 다양한 인터뷰를 통해 ‘무지각적 괴롭힘’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오랫동안 남성 지배적인 직장 문화에서 체득한 언어와 생활 습관이 문제다. 또 다른 문제는 약자를 배려하기 위한 제안과 행동이 오히려 약자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임신 또는 육아 중인 여성 직원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업무량이 적은 부서로 이동을 제안하지만, 정작 이 제안을 듣는 여성은 경력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괴롭힘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버림받는 남자들》에 소개된 내용은 일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세대 간 또는 남녀 간 갈등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도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내용이 가득하다.

홍순철 <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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