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호 칼럼] 최저임금, 결정 방식부터 틀렸다

입력 2021-06-21 17:50   수정 2021-06-22 00:08

연례행사인 ‘최저임금 전쟁’이 시작됐다.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최저임금(시급 기준 올해 8720원) 결정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노동생산성 등 각종 통계를 분석한 결과 “내년 최저임금 인상 요인이 없다”고 지난 20일 발표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노동계는 조만간 1만원대로 올려달라고 요구할 전망이다. 올해도 험난한 여정이 예상된다. 최저임금은 400여만 명의 저임금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 소상공인, 한계 중소기업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다.

노사의 신경전을 보면서 든 생각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는 것이다. 진작 나왔어야 할 최저임금 결정 체계 개편 목소리가 소리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30여 년간 소모적인 대립·갈등을 유발해온 현행 결정 방식부터 고친 뒤 금액(인상 여부) 협의에 들어가는 게 순서상 맞다. ‘게임의 룰’을 손보지 않고, 객관적이고 공정한 판정을 내릴 심판도 정하지 않은 채 노사는 다시 물러설 수 없는 링 위에 오르고 있다. 올해도 최저임금을 둘러싼 노사 극한 대립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걱정이 앞서는 이유다.

최저임금위원회는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 공익위원 9명씩, 27명으로 이뤄져 있다. 근로자, 사용자위원의 대결 구도 속에 캐스팅보트를 쥔 공익위원들의 투표로 최저임금이 정해지는 관행을 되풀이해 왔다. 공익위원 인선권한을 가진 정부가 최저임금위원회 뒤에 숨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비겁한 모습을 보여준 점도 부인할 수 없다.

현행 노사합의 방식으론 갈등과 불확실성만 증폭시킬 뿐이라는 점은 정부도 안다. 정부는 2019년 2월 최저임금위원회를 전문가로 구성된 구간설정위원회와 노사공익이 참여하는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하는 방식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입법을 위한 국회 논의가 지지부진하고 공익위원들이 집단사퇴하면서 흐지부지됐다. 노사는 물론 정권 말기를 맞은 정부도 의욕이 전혀 없어 보이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업종·지역별 최저임금 차등화 논의도 지지부진하다. 객관적인 경제지표에 따라 예측가능하게 최저임금이 결정되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말뿐이었다.

미국은 주(州)마다 최저임금이 다르고, 일본은 지역·업종별로 차등 적용한다. 중국 캐나다 등은 지역별로 구분 적용한다. 영국 프랑스 벨기에 등은 연령별로도 최저임금을 달리 책정한다.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화는 현행 법률로도 가능하다. 최저임금법 4조1항은 ‘최저임금은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하여 정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제도 시행 첫해인 1988년에는 제조업을 저임금그룹(식료품, 섬유, 신발 등 12개 업종)과 고임금그룹(석유, 화학, 철강 등 16개 업종)으로 구분해 적용하기도 했다. 이후 이 조항은 사문화됐고, 30년 넘게 단일 최저임금을 유지하고 있다.

‘기업지급능력’을 최저임금 결정 기준에 포함시켜달라는 경영계 요구도 정부는 거부하고 있다. 기업이 지급능력을 초과해 임금을 지급하게 되면 경영에 문제가 생기고 중장기적으로 생존을 위협받게 된다. 단기적으로는 기업이 제품가격 인상이나 인력 감축 등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어 물가와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

2018년과 2019년 최저임금이 각각 16.4%, 10.9% 급등한 뒤 일자리 감소와 자영업자, 영세 중소기업 휴폐업 등 후유증이 적지 않았다. 최저임금 영향을 받는 근로자의 95%는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경총에 따르면 지난해 최저임금 미만율(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 비율)은 15.6%로 역대 두 번째였다. 소상공인이 밀집된 도소매와 숙박음식 업종, 소규모 기업에서 특히 높았다. 이 와중에 중소기업들이 요구한 주 52시간제와 중대재해처벌법의 업종·지역(규모)별 차등 적용도 묵살당했다. 이래저래 자영업자와 중소기업만 죽어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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