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반도체 '스타 경영자' 없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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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1-08-13 17:38   수정 2021-08-14 00:08

“다자하오(大家好), 곤니치와(こんにちは), 안녕하세요.”

지난 6월 2일 세계 최대 그래픽처리장치(GPU) 업체 엔비디아의 젠슨 황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가 화상회의를 통해 세계 기자단 앞에 섰다. 대만계 미국인인 그는 3개국 언어로 인사말을 전한 뒤 유창한 영어로 프레젠테이션(PT)을 진행했다. 질의응답에선 영국 반도체 기업 ARM 인수, 반도체 공급난 등에 대해 거침없이 견해를 밝혔다.

젠슨 황은 다른 오너 기업인과 달리 외부활동에 거리낌이 없다. 그는 기자간담회 이후에도 ‘시그라프’, ‘테라텍’ 같은 정보기술(IT) 콘퍼런스 등에 나와 회사 전략과 산업 전망을 얘기했다. 엔비디아가 반도체 기업 시가총액 2위(12일 기준 4960억달러)를 기록할 정도로 성장성을 인정받고 있는 데는 젠슨 황의 활발한 외부 소통이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올해 초 인텔의 구원투수로 등판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팻 겔싱어 CEO도 젠슨 황 못지않게 외부와 활발하게 교류한다. 그의 트위터는 미국 정·재계 인사들이 자주 찾는 사랑방이다. 2~3개월에 한 번씩 인텔 공식 행사에 나올 정도로 PT를 즐긴다.

이처럼 글로벌 반도체 기업엔 업계 관계자는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친숙한 스타 경영자가 많다. 젠슨 황이 매번 입고 나와 그의 전매특허가 된 검정 가죽 재킷을 구글에서 검색하면 약 86만 건의 게시물이 뜰 정도다. 중앙처리장치(CPU) 전문기업 미국 AMD의 리사 수 대표는 ‘갓(God) 리사’로 불릴 정도로 광범위한 팬덤을 구축하고 있다.

반도체 사업은 B2B(기업 간 거래) 성격이 강하다. 과거 경영인들은 스마트폰·PC 제조사 등 고객사만 잘 챙기면 됐다. 요즘은 바뀌었다. 소비자들이 스마트폰에 삼성전자 ‘엑시노스’ 칩이 들어갔는지, 퀄컴의 ‘스냅드래곤’ 반도체가 탑재됐는지 따지기 시작했다. 인텔 CPU와 AMD CPU가 들어간 노트북의 성능에 대해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소통을 강화할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상황이 변하자 글로벌 반도체 기업 CEO들은 외부와 스킨십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부족한 시간을 쪼개 외부 행사에 얼굴을 비치는 게 대표적이다. 젠슨 황 등은 회사의 신기술·신사업을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PT 내용을 직접 꼼꼼하게 챙긴다고 한다. 중장기 비전을 명확하게 제시하기 위해 키워드 선정에도 고심한다. 예컨대 인텔이 최근 개최한 경영 설명회 타이틀인 ‘IDM(종합반도체기업) 2.0’ 등엔 겔싱어 대표의 뜻이 반영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영진의 외부 소통은 회사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리사 수의 마법’이라고 불리는 AMD의 약진이 좋은 사례로 꼽힌다. 그는 2014년 CEO에 취임한 이후 “2016년까지 결과를 내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글로벌 게임 콘퍼런스 등을 찾아다니며 게임기용 CPU를 적극 알렸다. 게이머들은 AMD CPU의 ‘가성비’에 만족하기 시작했다. AMD의 CPU 시장점유율은 리사 수 취임 당시 10% 미만이었지만 최근 20%를 돌파했다. 엔비디아의 GPGPU(AI 연산용 반도체)가 경쟁업체 제품들을 누르고 시장의 표준처럼 받아들여지는 것도 젠슨 황의 적극적인 마케팅 및 소통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한국은 어떨까. 삼성전자 같은 글로벌 반도체 기업은 있지만 스타 경영자는 없다는 의견이 많다. 소통에 적극적인 CEO도 흔치 않다. 대만 TSMC의 경영진이 외국 기자들과도 활발하게 소통하는 것을 감안할 때 아시아 기업의 특징이라고 치부하기도 어렵다.

근본적인 원인으론 경영자 스스로의 소극적인 태도가 꼽힌다. ‘반도체 기업 CEO는 고객사와 기술만 챙기면 된다’, ‘내부 단속이 중요하다’ 등 과거의 틀에 갇혀 ‘은둔형 경영자’란 타이틀을 즐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젠슨 황, 리사 수, 팻 겔싱어 등 글로벌 경쟁사의 경영진은 CEO가 실적만 잘 내면 되는 시대가 지나고 있다는 걸 몸소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반도체 기업들이 매 분기 최대 실적을 올려도 주가는 게걸음인 이유에 대해 CEO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요즘 시장과 투자자들은 일만 하는 경영자를 바라지 않는다. 회사의 비전을 자신 있게 내놓고 미래 전략에 대해 외부와 적극 소통하는 ‘스타 경영자’들에게 신뢰를 보내고 있다.
요동치는 세계 반도체 기업 시가총액 순위
세계 반도체 기업 시가총액 순위가 요동치고 있다. 반도체 시장의 ‘분업화’ 추세가 강해지면서 TSMC, 엔비디아, ASML 등 기업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지만 확실한 미래 사업을 가진 업체들이 약진하고 있다.

12일 기준 세계 반도체 기업 중 시총 1위 기업은 대만의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 TSMC다. 시총이 6000억달러(약 701조4000억원)다. 주가는 지난 1년간 48.8% 상승했다. 5㎚(나노미터, 1㎚=10억분의 1m) 초미세공정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애플 등 대형 고객사를 확보한 덕분으로 분석된다.

작년 상반기까지 4~5위권이었던 엔비디아의 부상도 눈에 띈다. 엔비디아 시총은 4960억달러다. 최근 1년간 주가는 73.9% 올랐다. 인공지능(AI) 반도체 개발에 주력한 게 투자자들을 끌어들였다는 설명이다.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ASML도 선전하고 있다. 시총은 3201억달러로 최근 1년 주가 상승률은 118.4%에 달한다. 첨단 공정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단독 생산하는 점이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인텔 삼성전자 등 종합반도체 기업(IDM)은 상대적으로 부진하다. 두 회사의 최근 1년 주가 상승률은 각각 12.4%, 31.2%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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