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인철 오리온그룹 부회장 "새로운 시도? 불필요한 일 없애는 것도 혁신"

입력 2021-08-17 17:50   수정 2021-08-18 00:47


지난해 오리온은 영업이익률 16.9%를 달성했다. 식품업계 평균 이익률이 5%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독보적인 수익률이다. 코로나19 와중에도 매출을 포함한 실적이 창사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높은 수익률의 비결은 허인철 오리온그룹 부회장의 경영철학과 해외시장 개척이다. 오리온의 해외매출 비중은 66%로 국내 매출의 두 배를 차지한다. 허 부회장은 “기업은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속성이 있지만 필요하지 않은 일을 없애는 게 혁신”이라고 강조한다. 불필요한 사업을 줄여 축적한 자원을 미래사업에 투자해야 한다는 의미다. 신세계 이마트 사장 시절부터 ‘혁신 전략가’로 평가받은 허 부회장은 오리온 합류 후 간편식, 음료, 바이오 등 매년 신규사업을 추진해 체질 개선을 주도했다. 제과업체인 오리온을 ‘종합식품기업’으로 바꿔 매출 10조원 규모로 키우는 게 그의 비전이다.
삼고초려 끝 영입한 첫 외부 전문경영인
2014년 7월 취임한 허 부회장은 7년째 오리온그룹을 이끌고 있다. 당시 그룹 경영을 총괄하던 담철곤 회장은 변화가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삼고초려 끝에 영입했다. 담 회장은 처음으로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기면서 ‘부회장’ 직함을 부여했다. 회사 경영에서 전폭적인 권한을 주겠다는 의미였다. 허 부회장은 부임 직후부터 파격 행보를 보였다. 한 달 만에 계열사를 총괄 지휘하던 회장실을 해체했다. 취임 두 달째인 2014년 9월, 허 부회장은 긴급 임원회의를 소집했다. 대학생 세 명이 봉지과자 160개를 연결한 ‘과자 뗏목’으로 한강 횡단을 시도한다는 뉴스를 본 직후였다. 봉지과자 안에 과자보다 포장재인 질소충전재가 더 많다는 것을 비꼬는 퍼포먼스였다. 충격이었다. 허 부회장은 “과대 포장으로 소비자의 신뢰가 추락하고 있다”며 ‘착한 포장’ 프로젝트를 지시했다.

내부 반발도 있었다. 질소 포장지가 내용물을 보호하는 장점이 있는 데다 질소 사용량을 줄이면 내용물이 늘어나 수익성이 떨어질 것이란 지적이 나왔다. 제과업계에선 대형마트(이마트) 경영자 출신인 허 부회장이 업계 사정을 모르고 무리수를 둔다는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허 부회장은 완강했다. 오리온은 그해 11월 20여 개 제품의 포장을 개선했다. 포장재에 들어가는 잉크와 포장재 크기를 줄여 1년에 70억원가량의 비용을 절감했다. 이를 초코파이, 포카칩 등 파이와 스낵 양을 늘리는 데 투입했다. 전략은 성공을 거뒀다. 이후 질소 충전재 함량을 대폭 줄인 스낵류의 매출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허 부회장은 계열사 합병, 부서 통합, 비핵심사업 정리 등을 통해 ‘불필요한 사업’을 줄여나갔다. 중국, 베트남, 러시아 등 글로벌 연구개발 본부 기능을 한국 연구소로 통합한 게 대표적이다. 연구소 통합으로 각 법인이 서로 제품 개발 정보와 노하우를 공유하게 되자 신제품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그 결과 초코파이 탄생 42년 만에 새로운 맛을 출시했다. ‘꼬북칩’ ‘단백질바’ 등 히트 상품도 이렇게 탄생했다. 허 부회장은 “비용을 줄이고 조직의 효율성을 높여 핵심 경쟁력인 제품에 투자하는 것이 오리온의 차별화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해외사업으로 이룬 사상 최대 실적
오리온은 지난해 매출 2조2298억원, 영업이익 3761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사상 최고 실적 경신은 허 부회장 취임 이후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저출산과 수입 과자, 디저트 카페 등의 공세로 정체에 빠진 국내 제과 시장에서 벗어나 일찌감치 해외로 눈을 돌린 전략이 통했다. 지난해 오리온의 매출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34%에 불과했다. 나머지 66%는 해외에서 나왔다.

허 부회장은 취임 후 해외 시장 공략에 속도를 냈다. 글로벌 전략구매팀 신설 등 조직개편을 통해 사업 역량을 끌어올렸다. 중국, 베트남, 러시아 등 해외법인이 따로 원재료를 구매하지 않고, 국내 법인이 한꺼번에 구입하는 통합 관리를 통해 ‘바잉 파워’를 키웠다. 그 결과 중국, 베트남, 러시아에서 글로벌 식품기업을 뛰어넘는 영업이익률을 달성했다.

오리온 매출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중국 법인 실적은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의 충격을 딛고 이전 수준으로 회복했다. 5000여 명을 감축하고 유통 채널을 바꾸는 등 혹독한 구조조정을 추진한 결과였다. 2017년 192억원으로 전년의 10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던 중국법인 영업이익은 3년 만인 지난해 1832억원으로 늘었다. 허 부회장은 “베트남에선 내년에 글로벌 식품업체인 몬델레즈를 제치고 1위 식품기업이 될 것”이라며 “러시아에서도 매년 20% 성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과사업 ‘only’ 탈피해 신성장 엔진 장착
허 부회장이 취임한 2014년 오리온엔 제과사업뿐이었다. 국내 제과시장은 정체돼 있었다. 해외시장을 더욱 공격적으로 확장하는 전략도 검토했지만 해외시장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는 미래 성장을 위해 제과사업 이외의 성장 엔진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3대 신사업을 추진했다.

첫 번째 신사업은 기존 제과 경쟁력을 기반으로 한 간편대용식이었다. 2018년 7월 간편대용식 ‘마켓오 네이처 오!그래놀라’를 선보였다. 제주용암수를 내놓으며 음료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허 부회장은 “미국 유럽에서 영양과 건강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화되고, 일본에선 콘플레이크 시장이 축소하고 그래놀라 시장이 커지고 있는 점을 눈여겨봤다”며 “국내에서도 그래놀라가 콘플레이크를 대체하면서 대용식 시장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래에는 제과, 식품, 건강기능식품, 바이오의 경계가 허물어질 것으로 보고 바이오 시장에도 진출했다. 국내 바이오업체와 손잡고 중국 시장 공략에 나섰다. 중국 내 합자법인 산둥루캉오리온바이오 기술개발유한회사를 설립하고 결핵 백신, 대장암 진단 키트의 임상과 인허가를 준비 중이다.

허 부회장은 “3대 신사업 매출이 아직 크지 않지만 미래 핵심 사업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며 “기존 사업과 신사업 비중을 7 대 3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업무 전반에 윤리의식 갖춰야"…글로벌 탄소배출 관리체계 구축
오리온 ESG 경영 박차
‘윤리적인 글로벌 식품기업.’

허인철 부회장이 지향하는 오리온의 미래다. 오리온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화두로 떠오르기 전인 2015년 윤리 경영을 경영 방침으로 채택했다. 허 부회장은 “업무 전반에 윤리의식이 스며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윤리 경영 실천의 첫 화두는 친환경이다. 한국 법인은 지난해 충북 청주 공장의 에너지 절감 스팀 공급 장치, 프라이어(감자 튀김기) 오일 쿨링 열 교환기 등을 개선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기존 대비 5% 감축했다. 전북 익산 공장은 저효율 냉동기를 고효율 냉동기로 교체해 연간 탄소배출량을 218t 줄였다. 이 같은 친환경 경영 활동을 통해 두 공장의 탄소 배출량을 연간 900t가량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어린 소나무 32만 그루를 심는 것과 같은 효과다.

중국 법인은 랑방 공장의 스윙칩 프라이어와 공장 보일러에서 배출되는 폐열을 회수·재활용하는 설비를 구축해 연간 1000t가량의 탄소배출량을 감축할 계획이다. 베트남 미푹 공장에선 지붕에 태양전지를 설치, 제품 생산에 활용하고 있다.

허 부회장이 도입한 ‘착한 포장’ 프로젝트도 계속하고 있다. 오리온의 대표 스낵인 오징어땅콩, 스윙칩, 포카칩은 포장지 내 빈 공간을 줄여 연간 83t가량의 포장재를 절감했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40%에 해당하는 규모다. 포장재에 사용하는 잉크도 줄였다. 2015년 22개 브랜드, 2019년 10개 브랜드의 포장지 디자인을 단순화했다. 이를 통해 연간 약 178t의 잉크 사용량을 줄였다.

올해 3월엔 ‘글로벌 탄소배출 통합관리체계’를 구축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 베트남, 러시아 등 해외 법인과 협업해 탄소배출 관리에 나서기로 했다. 이를 위해 생산, 설비, 관리 등 6개 부서의 실무 담당자를 모아 ‘그린 태스크포스팀(TFT)’을 꾸렸다.

오리온그룹 관계자는 “그린 TFT는 전사적 협업을 통해 탄소배출 목표 설정, 데이터 통합·관리, 에너지 절감 방안 등을 수립해 실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 허인철 부회장은

△1986년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1986년 삼성그룹 입사
△2006년 신세계 경영지원실장(사장)
△2012년 이마트 대표(사장)
△2014년 오리온 부회장(총괄 부회장)
△2017년 오리온홀딩스 대표(총괄 부회장)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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