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서민 울리는 '두더지 때려잡기식' 대출 규제

입력 2021-09-06 17:31   수정 2021-09-07 08:50

“실수요가 90인데 대출 공급량을 70으로 줄이라 하면 나머지 20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예 대출을 못 받거나 더 높은 금리로 밀려나는 거죠.”

최근 벌어지는 ‘대출 대란’을 두고 한 시중은행 부행장급 임원이 내놓은 촌평이다. 그는 “실수요자에게 어려움이 없도록 하려면 실수요가 얼마나 되는지부터 정확히 판단해야 한다”면서도 “문제는 대출받으려는 사람 100명 중 실수요자가 10명인지 50명인지 70명인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가계부채 증가율에 연 5~6% ‘금’을 그어둔 채 “무주택 서민 실수요자에 대한 자금 공급은 지속하겠다”고 공언하는 금융당국의 모순을 꼬집은 것이다.

대출 규제의 불똥이 실수요자에게 튄다는 우려는 현실이 된 지 오래다. 여당과 정부는 그동안 연이은 부동산 대책의 핵심 수단으로 대출 규제를 강화해왔다. ‘투기 수요를 차단해 집값을 잡겠다’는 논리였다. 분양가 9억원 넘는 주택에 대한 중도금 집단대출 금지, 시세 15억원 넘는 주택의 주택담보대출 금지 등 한때 위헌 논란까지 빚은 조치들로도 주택시장 상승세가 꺾이지 않자 규제의 칼날은 더 무뎌졌다. 금융당국의 ‘구두 지도’에 은행들이 대출 종류와 신청자를 가리지 않고 한도를 줄이거나 급기야 대출 자체를 중단하고 나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최근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게 전형적인 실수요자로 꼽히는 전세대출자들이다. 임대차 2법, 공급 부족 등으로 전셋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전세대출은 올해도 가파르게 늘었다. 올 들어 지난 8월까지 5대 은행에서 늘어난 전체 가계대출 증가액(28조6610억원)의 절반(51.5%)을 전세대출이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 이들 은행의 전세대출은 이 기간 14조7540억원 불어났다. 증가율은 14%로 전체 가계대출 증가율(4.3%)의 세 배를 넘는다. 가계대출 증가 속도를 낮춰야 하는 은행들이 전세대출부터 줄이고 나선 이유다.

은행이 대출을 줄이는 방법은 간단하다. 대출 한도를 축소하고 금리를 올리면 된다. 공적 보증으로 정해지는 전세대출 한도는 금융사가 자율적으로 조정하기 어렵다 보니 은행들은 대신 금리를 올렸다. 최근 우리·국민·신한은행 등이 전세대출 금리를 0.2%포인트 안팎 올린 결과 이제 대형 은행에서도 연 2%대 전세대출 금리를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급증한 가계빚을 선제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금융당국의 취지는 충분히 수긍할 만하다. 일부 전세대출이 갭투자를 부추기는 부작용이 있다는 지적에 동의하는 시장 참여자도 적지 않다. 하지만 누구도 공감하지 못하는 지금의 ‘두더지 때려잡기’ 식 대출 규제로는 그 어떤 정책 목표도 달성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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