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관계의 혼란스러운 재편 속 한국은 어떻게 해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문제는 사람과 정책이다. 우리가 재도약하기 위해서는 역사와 조상이 간 ‘길(道)’을 바라보면서 미래의 길을 찾아야 한다.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지금, 과거 동아시아 세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신라의 장군이자 무역상인 장보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장보고는 790년경 섬(海島)에서 태어나 841년에 암살당한 인물이다. 《삼국사기》에 등장한 장보고는 짧고 냉소적으로 기술돼 있다. “장보고와 정년은 신라 사람이다. 그들의 고향과 조상(父祖)은 알 수 없다.”는 내용과 함께 “청해진의 궁복은 왕이 자기 딸을 왕비로 받아주지 않자 원망하면서 청해진에 머물면서 모반했다.”고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런데 《신당서》와 그 시대 최고의 문장가인 두목이 묘사한 장보고는 전혀 다르다. 장보고와 정년은 싸움을 잘 했고, 특히 장보고가 용맹했다고 기록돼 있다. 일본에서는 ‘장보고(張保皐)’를 보배롭고 고귀하다는 의미의 ‘장보고(張寶高)’라고 남기기도 했다. 천태종의 좌주였던 엔닌(圓仁)은 장보고에 편지를 보내 흠모하고 우러른다고 각별하게 칭송했다. 장보고는 현재까지 일본 교토부의 적산선원에서 ‘적산대명신’으로, 히에이산의 원성사에서 ‘신라명신’으로 모셔지고 있다. 초대 주일 미국대사였던 에드윈 오 라이샤워 교수는 박사논문에서 장보고를 ‘해양식민지를 다스리는 총독, 해양상업 제국의 무역왕(The Trade Prince of the Maritime Commercial Empire)’이라고 평가했다. 이른바 청해진 체제를 상업제국으로 인식한 것이다. 장보고는 현 상황에 적합한 발전모델과 이론 등을 구축하고 실현시키는 정책과 전략들을 제시할 수 있을까. (윤명철, 《장보고, 그에게 길을 묻다》)
황해와 동중국해, 남해를 연결하는 항로는 3개의 주선과 간선들이 입체적으로 연결됐다. 장보고는 각각의 항로에 익숙한 본국신라인들, 재당신라인들, 재일신라인들을 ‘범(汎)신라인’으로 네트워크화해 항로를 일원화시켰다. 또한 탁월한 위치와 해양환경을 갖추고, 국제무역과 국내산업을 연결하는 수륙교통의 요지인 청해진을 국제교통의 ‘인터체인지(IC)’로 만들었다. 이러한 시스템 속에서 신라와 당나라, 일본, 아라비아 상인들은 물론이고, 승려들과 사신들도장보고 선단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윤명철, 《장보고 시대의 해양활동과 동아지중해》)
9세기 국가들과 대상인들은 무장력을 갖춘 해상 관리자가 해적들을 퇴치해 바다를 평정하고, 무역로를 보호해 주길 원했다. 이런 상황에서 장보고가 등장하며 범신라인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청해진을 국제교통의 ‘인터체인지(IC)’로 만들었다. 신라와 당나라, 일본, 아라비아 상인들은 물론이고, 승려들과 사신들도 장보고 선단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