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누구의 것도 아냐"…사랑해서 죽였다는 남자를 향한 외침 [김수현의 THE클래식]

입력 2021-09-12 06:15   수정 2021-09-12 08:41

<svg version="1.1" xmlns="http://www.w3.org/2000/svg" xmlns:xlink="http://www.w3.org/1999/xlink" x="0" y="0" viewBox="0 0 27.4 20" class="svg-quote" xml:space="preserve" style="fill:#666; display:block; width:28px; height:20px; margin-bottom:10px"><path class="st0" d="M0,12.9C0,0.2,12.4,0,12.4,0C6.7,3.2,7.8,6.2,7.5,8.5c2.8,0.4,5,2.9,5,5.9c0,3.6-2.9,5.7-5.9,5.7 C3.2,20,0,17.4,0,12.9z M14.8,12.9C14.8,0.2,27.2,0,27.2,0c-5.7,3.2-4.6,6.2-4.8,8.5c2.8,0.4,5,2.9,5,5.9c0,3.6-2.9,5.7-5.9,5.7 C18,20,14.8,17.4,14.8,12.9z"></path></svg>"사랑은 아무도 길들일 수 없어. 협박해도 애원해도 안 돼." -비제 오페라 <카르멘(Carmen)> 1막 아리아 '사랑은 길들일 수 없는 들새:하바네라' 中 카르멘의 가사
"사랑한 죄밖에 없다", "너무 사랑해서 어쩔 수 없었다"…

데이트폭력의 가해자들이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을 찾기 위해 버젓이 내뱉는 말입니다. 이유가 될 수 없는 폭력에 대한 비상식적인 변명을 읊조리는 것이죠. 어떤 인간의 포악한 행동이, 누군가의 안타까운 죽음이 수면 위로 떠 오르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문제임을 인식하게 됩니다. 더 이상 데이트 폭력은 특정 개인 간의 문제에 그치지 않습니다.

국내에서 데이트 폭력으로 입건되는 가해자 수는 연평균 1만여명에 달합니다. 살인이나 살인미수까지 이어진 경우는 연평균 48건에 이르죠. 하루에 26명이 붙잡히고 일주일에 한 번씩 사랑한다고 말하던 이를 죽이거나 사망할 만큼 폭행을 가하는 사건이 일어난다는 의미입니다.

폭력을 행하는 이의 감정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는 타협의 문제가 아닙니다. 아무리 자신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대단한 사랑을 한다 할지라도 한 개인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와 자유를 억압할 자격은 주어지지 않죠. 저질의 소유욕에 불타 인간에 대한 존중심을 무시한 채 개인의 감정만을 밀어 넣는 무식한 일에 그칠 뿐입니다. '몹시 아끼고 귀중하게 여기는 마음', '소중히 여기는 마음'. 사전에 적힌 정의만 보더라도 사랑과 폭력은 절대 공존할 수 없죠.

사랑이란 감정에 누구보다 솔직했던 한 여자가 연인의 집착과 분노에 죽임을 당하는 이야기를 작품화한 비제의 <카르멘>을 이 시점에 조명하고자 하는 이유입니다. 자신의 운명을 예견이라도 한 듯 사랑은 곧 자유라고 끝없이 외치던 카르멘의 아름다운 음성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들립니다. <카르멘> 속 음악은 쾌활한 분위기에 매혹적인 음악을 선사하고, 감정의 소용돌이를 거침없이 표현합니다. 비제의 오페라 작품 <카르멘> 1막 아리아 '사랑은 길들일 수 없는 들새:하바네라'를 가까이 들여다보겠습니다.
프랑스 최고의 오페라 '카르멘'…비제의 영혼에서 피어나다
먼저 작곡가 조르주 비제(Georges Bizet, 1838~1875)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비제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어릴 적부터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는 17세가 되던 1855년에 '교향곡 제1번 C장조'를 작곡하고, 19세가 되던 해에 당대 최고 작곡가에게만 주어진다는 로마 대상을 수상하죠. 그 길로 비제는 음악가로서의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3년간 로마 유학을 떠납니다.

프랑스로 돌아온 비제는 25세가 되던 해인 1863년에 초기 오페라 작품 '진주조개잡이'를 작곡하고 파리 테아트르 리리크에서 상연하면서 작곡가로서 위상을 드높이죠. 이후 오페라 '아름다운 페르트의 아가씨', 모음곡 '아를의 여인' 등 다수의 작품을 선보이던 비제는 1875년 3월 오페라 코미크에서 그의 운명을 바꿀 오페라 <카르멘>을 초연합니다. 프랑스 오페라 중 최고의 작품이라 평가받는 세기의 대작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죠.

프랑스 작가 프로스페르 메리메가 쓴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카르멘>을 작곡할 당시 비제는 걸작을 남기고 싶은 욕구가 굉장히 강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당시 예술성이 높다는 찬사를 받던 비제의 작품 대다수가 대중으로부터 큰 인기를 얻는 데에는 사실상 실패했기 때문이죠. 이에 비제는 <카르멘> 작곡 당시 자신의 모든 음악적 역량을 쏟기 위해 며칠씩 밤을 새워가며 열중했다고 합니다. 특히 <카르멘>의 대표적 아리아 '하바네라'는 10번 넘게 최종본을 수정해가며 애정을 쏟아부었다고 하죠.

그러나 비제의 바람과는 달리, <카르멘>은 초연 이후 관객들로부터 엄청난 혹평에 시달립니다. 몇몇 청중은 토마토를 던지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불결한 작품이라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도 했다고 하죠. 이유는 당시 청중들에게 비친 파격적인 소재의 불편함 때문이었습니다. 먼저 조금은 순종적이고 누가 봐도 선한 이미지를 가지는 전형적인 인물이 아닌 감정 표현에 거침이 없는 최하층민 집시 여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부터 문제였습니다. 당시 카르멘 역을 맡았던 성악가가 관능적인 연기를 할 때면 직접적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관중이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여기에 무대 위에서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칼로 찔러 죽이는 치정 살인 장면이 등장한다는 점, 카르멘이 자신의 부도덕함(당시 청중 시점)을 인정하지도 뉘우치지도 않은 채 작품이 막을 내린다는 점 등이 비난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으로 거론됐죠. 당시 오페라 극장이 가족들이 함께 여가를 즐기거나 연인끼리 선을 보는 장소로 주로 사용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들의 껄끄러움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자신의 모든 기량을 끌어모아 작품에 바쳤던 비제는 대중의 차가운 반응에 무력감과 좌절감을 얻고 <카르멘> 초연 3개월 만에 목숨을 잃고 맙니다. 37세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은 그의 사인에 대해 지인들은 <카르멘> 작곡에 혼신의 열정을 쏟아 체력이 낮아진 비제가 기대에 못 미치는 성과에 극도의 스트레스를 얻은 것이 심장질환을 유발했다고 증언하죠.


불행인지 행운인지 <카르멘>의 인기는 비제가 세상을 떠난 직후부터 절정으로 치닫습니다. 공연이 계속될수록 작품에 대한 입소문이 퍼졌고, 바로 그해에 프랑스를 넘어 유럽 전역에서 대중의 열정적인 환호를 자아내는 작품으로 자리 잡죠. 그리고 비제가 숨을 거둔 지 140년이 지난 현재 전 세계 오페라 극장에서 반드시 연주돼야 할 세기의 작품으로 손꼽힙니다. 비제가 직접 누릴 수 없었던 영광과 명예를 오랫동안 세상에 갚아주듯이 말이죠.

열정을 가지고 매 순간 자신이 원하는 사랑에 집중했던 집시 여인 카르멘과 그녀와 사랑에 빠졌다가 집착과 소유욕을 이기지 못해 결국 자신의 연인을 살해하는 군인 돈 호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카르멘>. 작품의 대표 아리아 '하바네라'는 전주만 듣고도 모든 이들이 고개를 끄덕일 만큼 대중적인 음악인데요. 익숙한 멜로디 뒤 '자신이 원하는 사랑은 자유 그 자체이며, 누구도 자신을 소유할 수 없다'고 마음껏 외치는 카르멘의 심정에 집중하면서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자유' 단 하나만을 원했던 집시의 고백…매혹적인 분위기 압도
'딴따단딴 딴따단딴' 작품은 오케스트라 속 첼로 연주자들의 긴장감 넘치는 부점(附點) 연주로 시작됩니다. 여기서 쓰이는 리듬은 쿠바에서 생겨나 스페인에서 유행한 민속 춤곡 '하바네라(아바네라)'에서 차용된 것이죠. 극 전반에 드리우는 '하바네라' 리듬은 탱고와 공통의 운율을 지닌 2박자의 리듬에 셋잇단음표가 추가돼 매우 쾌활하면서도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전주가 흐르면 청중은 물론 무대 위 모든 인물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카르멘은 남자들을 찬찬히 쳐다보면서 매혹적인 음색으로 "사랑은 들에 사는 새, 아무도 길들일 수 없죠"라고 읊조립니다. 두터우면서도 차분하고, 안정적이면서도 귀를 간지럽히는 목소리가 공연장 전체에 울려 퍼지죠. 이는 비제가 강렬하고 당당한 여인의 모습을 구현하고자 기존 오페라에서 주로 쓰이던 소프라노가 아닌 음역이 낮은 메조소프라노를 주인공으로 발탁한 영향입니다. 이 작은 변화는 묵직하면서도 점차 파멸로 밀려가는 극 서사를 표현하는 데 더없이 적합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내 카르멘은 자신의 사랑을 갈구하는 남자들에 경고라도 하듯 "거절하기로 마음먹으면 아무리 불러도 소용없죠. 협박해도, 애원해도 안 돼요"라는 가사를 강한 어조로 내뱉습니다. 그리곤 "말을 잘하거나 말 없는 분 중에서는 후자를 택할래요.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저를 즐겁게 하니까요"라고 외치면서 기존의 수동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나 자신이 직접 원하는 사람을 선택하고, 자유롭게 사랑하겠다는 의지를 마음껏 드러냅니다. 이때 가사 사이사이 낮은음에서 높은음으로 음정을 끌어올리는 부분은 화려하면서도 고혹적인 분위기를 퍼뜨리면서 관중의 이목을 집중시키죠.

그러면 카르멘을 감싸고 있는 무대 위 인물들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그녀가 부른 가사를 똑같이 속삭입니다. 마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기억하고 단체로 그 매력에 취한 모습을 보이는 듯하죠. 이때 카르멘은 "사랑"이라는 가사를 각기 다른 음정으로 4번 부르면서 자신이 내린 사랑에 대한 정의는 확고하며, 이외에는 관심 없다는 태도를 드러냅니다.

이내 카르멘은 움직이면서 "사랑은 집시 아이, 제멋대로지요.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나는 사랑할 수 있죠.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면 그때는 조심하세요"라고 당돌한 가사를 이어갑니다. 그러면 등장인물들이 "조심해"라는 가사를 큰소리로 외치면서 관중의 의식을 환기시키죠. 이때 함께 등장하는 탬버린과 트라이앵글의 소리는 청중의 신경을 자극하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작품이 진행되면서 그녀의 마성에 더 깊게 빠져드는 남자들과 이에 크게 주의를 두지 않고 아름다운 음성으로 노래를 부르는 카르멘의 모습이 대립하면서 긴장감은 고조됩니다.

이후 곡의 후반부에 들어서면 다시 한번 등장인물들이 합창으로 카르멘의 가사를 되뇌고, 카르멘은 자신이 원하는 남자를 찾은 듯 대중을 흘겨보다가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해도 나는 사랑할 수 있죠.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면 그때는 조심하세요"라고 마지막 소절을 내뱉습니다. 특히 조심하라는 말을 기억하라는 듯 F#음을 페르마타를 이용해 아주 길게 끌면서 자신의 감정을 가감 없이 꺼내 보이죠. 이때 오케스트라 연주자는 물론 등장인물 모두가 카르멘의 선율 길이에 집중하다 동시에 음을 멈추면서 아리아는 끝을 맺습니다.


d단조의 긴장감 넘치는 춤곡 리듬에 D장조 선율로 표현되는 카르멘의 솔직한 감정이 더해지면서 청중이 풍부한 분위기에 휩싸이도록 하는 <카르멘>의 '하바네라'. 자신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던 연인의 칼에 찔려 죽어간 그녀가 원했던 것은 엄청난 부귀영화와 귀족이라는 신분도 아닌 자유 그 하나뿐이었습니다. 집시 여인이 받는 무시와 천대, 차가운 시선과 욕설에도 담담했던 카르멘의 가슴이 무너졌던 순간은 바로 마음을 줬던 그에게 자신의 감정과 자유, 권리를 모두 짓밟히는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2021년. 믿었던 연인으로부터 폭행을 당하는 이들의 심정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데이트폭력의 재범률은 무려 70%. 사회의 힘으로 연인에게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이들의 아픔을 멈출 수 있는 순간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피해자가 원하지 않아도 처벌할 수 있도록 반의사불벌죄를 폐지했다면, 경찰이 접근금지 조치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면 말이죠.

더는 빛처럼 찬란한 누군가의 젊은 시절이 멍과 피로 물드는 일들이 벌어지지 않길. 이기적인 감정에 취해 상대의 목숨을 앗아가는, 그 가족의 심장에 칼을 꽂는 가해자에게 우리의 차갑고도 날카로운 시선이 모여 작은 변화가 시작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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