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착한 오지랖'이 필요한 지금

입력 2021-10-10 17:23   수정 2021-10-11 00:06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주인공들은 오지랖이 넓다. 입원한 이웃의 병간호를 하고 집에 혼자 남아 있는 아이를 돌봐주는가 하면 밑반찬은 매번 이웃집 몫까지 만들어 나누곤 한다. ‘가까운 이웃이 먼 사촌보다 낫다’는 말처럼 기쁜 일과 슬픈 일을 함께 나누고 서로 위로와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요즘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많아지고 개인주의가 만연한 탓인지 예전처럼 이웃끼리 가까이 지내기가 쉽지 않다. 먼저 다가가 볼까 싶다가도 혹시 상대방이 불편해하지는 않을지 조심스럽다. 드라마 속 1988년 쌍문동 골목 사람들의 모습은 서로에게 무심한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지나고 보니 필자도 오지랖이었던 기억이 있다. 2004년 태국 주재 대사관 재경관으로 근무할 때 쓰나미가 남아시아 일대를 강타했다. 사고 수습이 재경관 업무는 아니었지만 슬픔에 빠진 유가족을 돕기 위해 전염병 위험을 무릅쓰고 피해가 심한 카오락 지역에서 한국인 희생자 시신 수습을 지원했다. 쓰나미로 태국에서 자국민을 잃은 39개국 중 우리나라가 가장 먼저 모든 희생자의 시신을 거둔 국가가 되는 데 나의 오지랖이 조금은 기여한 것 같다.

서민 금융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도 오지랖의 효과는 컸다. 필자가 지난 3년간 현장에서 만난 117명의 서민 중 안산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에서 필자가 상담한 중증 청각장애인은 건설 현장에서 임금을 제때 받지 못해 휴대폰까지 정지돼 있었다. 일단 채무 조정을 통해 연체된 2000만원의 빚을 절반 이상 감면해 한 달에 10만원씩 나눠 갚도록 안내해드렸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기초생활수급자 대상이 될 것 같아 물어 보니 그동안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서 신청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사람들의 무관심과 차별, 불합리하고 답답한 관료주의 시스템하에서 어떻게든 살아보고자 몸부림친 주인공의 안타까운 이야기가 떠올랐다. 주거급여 대상자로 생계비를 지원받을 수 있도록 바로 주민센터에 신청을 도와드렸다.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대신 해준 것밖에 없는데도 너무 좋아하며 감사 인사를 하던 그분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보통 오지랖은 쓸데없는 참견이라고 여겨지지만 코로나19 장기화 등으로 더 혹독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영세 자영업자나 소외된 이웃들을 생각하면 우리 모두에게 약간의 오지랖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남의 일을 제 일처럼 생각하고 발 벗고 나서서 돕는 착한 오지랖이 어려운 이웃에게 새로운 삶의 희망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퇴근길에 가끔 들르던 단골식당 사장님이 잘 계시는지, 오지랖을 떨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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