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연민과 공동체 정신 팬데믹 시대의 '큰 울림'

입력 2021-11-09 16:54   수정 2021-11-10 08:24

러시아 대문호 도스토옙스키(F M Dostoevsky·1821~1881)의 파란만장한 삶을 다 적으려면 여러 권의 책으로도 모자란다. 반체제 음모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고 형장으로 끌려갔다가 총살형 집행 5분 전에 사면을 받았다.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9년의 형기를 채우고 수도로 귀환해 잡지사를 경영했지만 두 번이나 파산해 지금 우리 돈 4억원 내지 5억원 정도 되는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빚쟁이를 피해 유럽을 떠돌아다니는 동안 도박 중독에 걸려 10년 가까이 거지꼴을 하고 카지노를 들락거렸다. 평생 간질, 천식 등 온갖 만성질환에 시달렸다. 첫딸과 막내아들을 먼저 떠나보냈다. 그가 삶 속에서 겪은 이 모든 고통은 전대미문의 천재성과 합쳐져 인간 비극을 밑바닥까지 파헤치는 심오한 문학을 창조했다.

《가난한 사람들》에서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에 이르기까지 도스토옙스키의 거의 모든 소설이 탐구하는 선과 악, 신과 인간, 자유, 사랑, 구원의 문제는 고통으로 회귀한다. 고통은 절대적이고 동시에 상대적이다. 어떤 고통은 위로를 거부하고, 어떤 고통은 섣불리 언급하는 것조차 부도덕하게 만든다.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고통에 대한 답을 도스토옙스키는 연민에서 찾았다. 그가 연민을 가리켜 “유일한 인간 실존의 법칙이다”라고 할 때 그것은 값싼 동정도, 박애주의로 치장한 허망한 구호도 아니다. 범죄에 대한 무책임한 용인도 아니다. 그는 사회 평론에서 범죄자들을 향한 지나치게 가벼운 형벌은 그릇된 동정이라고 질타했다. 도스토옙스키에게 연민은 인간의 비극성에 대한 깊은 슬픔과 공감에서 출발해 고통의 분담으로 마무리되는 실천적 사랑의 행위다. 연민의 시선으로 고통을 응시할 때 나와 타자 간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타자는 단순한 객체에서 주체로 전변한다. 20세기 최고의 도스토옙스키 연구자 미하일 바흐친의 지적처럼 타인의 ‘나’를 객체가 아니라 주체로 단언하는 것이 도스토옙스키 세계관의 핵심이다.

나와 타자의 관계 속에서 이해되는 연민은 만년의 도스토옙스키가 집요하게 탐구한 ‘공동체 정신’에서 완성된다. ‘공동체 정신’은 공동생활이나 공동체적인 삶과는 결을 달리한다. 그것은 개별적인 ‘나’와 개별적인 ‘너’가 인간적인 유대를 바탕으로 맺는 관계들의 총합이다. 이때의 ‘나와 너’는 다른 집단에 대한 배제와 증오 혹은 이해타산으로 조성되는 ‘우리’가 아니라 보편적 고통에 대한 심오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공감의 연대다. 그의 ‘공동체 정신’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해 주는 것은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에서 노수도사 조시마가 강조하는 “만인은 만인 앞에 만사에 대해 죄인이다”라는 정언이다. 러시아어의 ‘죄를 짓다’라는 단어는 ‘책임이 있다’를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조시마의 말은 ‘만인은 만인에 대해 책임이 있다’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여기서 책임이란 법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개개인이 자발적으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고통의 짐을 나누는 능동적인 윤리의 문제다. 도스토옙스키는 결국 고통에 대한 실천적 연민에서 상생과 공존의 가능성을 발견했던 것이다. 러시아어로 ‘연민(sostradanie)’이 ‘함께(so)’와 ‘고통(stradanie)’을 합성한 단어, 즉 ‘함께 고통당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물론 고통을 나눈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연민이 인류를 고통에서 구원해 줄 수도 없다. 그러나 연민에 대한 지향이 없다면, 고통을 나눈다는 생각조차 불가능하다면 세상은 동물의 왕국이 될 것이다.

도스토옙스키가 태어난 지 200년이 흘렀다. 연구자들은 도스토옙스키가 어떤 시대 어떤 독자에게건 ‘동시대적으로’ 읽힌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우리가 무엇을 하건, 어떤 시대를 살건, 그가 파헤치는 인간 본성의 심연으로 따라 들어가다 보면 우리는 거기서 우리 자신을 만나게 된다. 그동안 아인슈타인, 비트겐슈타인, 카뮈 등 수없이 많은 작가와 예술가와 학자들이 그를 찬양하고 흠모한 이유다. 벌써 2년째 우리는 전 인류를 강타한 사상 초유의 팬데믹에 맞서 살아가고 있다. 바로 이런 시대이기에 도스토옙스키가 위대한 고전에 새겨놓은 연민의 서사는 그 어느 때보다 우리에게 커다란 울림을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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