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오감의 컴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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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1-11-17 18:03   수정 2021-11-18 00:02

1980년대 중반 공중파에서 방영하던 애니메이션 중 ‘꼬마자동차 붕붕’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알에서 태어난 자동차가 주인공과 여행을 다니며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도와주는 내용이었는데, 독특한 점은 꽃향기를 맡으면 힘이 세진다는 것이었다.

향기를 맡으면 힘이 세지는 것이 말이 될까? 아니, 그보다 먼저 자동차가 향기를 맡는다는 게 말이 될까? 온갖 상상이 다 이뤄지는 애니메이션 내용이니 그런 질문 자체가 부질없지만 상상력의 한계는 끝이 없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향기를 맡고 힘이 세지는 것은 여전히 말이 안 돼도 자동차가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아직은 생소한 뉴로모픽 칩 덕분이다. 뉴로모픽은 신경을 뜻하는 뉴로(neuro)와 형상을 뜻하는 모픽(morphic)을 결합한 단어로, 인간 두뇌의 신경 구조와 작동 원리에서 영감받아 만든 반도체 칩이다. 특히 이미지, 소리와 같은 비정형 데이터뿐 아니라 감각도 처리할 수 있어 차세대 인공지능(AI) 반도체라고도 불린다.

지금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컴퓨터는 ‘폰 노이만’ 구조로, 숫자나 문자와 같이 정해진 형태의 데이터를 중앙처리장치(CPU)와 메모리, 입출력장치를 순차적으로 거쳐 명령을 수행한다. 반면 뉴로모픽 컴퓨팅은 뇌의 구조를 컴퓨팅에 도입한 것으로, 신경세포인 뉴런을 시냅스로 서로 연결해 뇌가 세상을 인식하고 의사 결정하는 것처럼 데이터를 병렬적으로 동시에 처리한다. 2012년에 고양이 얼굴을 식별하는 데 1만6000개의 프로세서가 사용됐지만 뉴로모픽 칩은 단 하나로 가능하다고 한다. 전력 소모 또한 현재의 1억분의 1 수준까지 낮출 수 있다.

다만 아직 상용화 단계는 아니며 인텔을 비롯한 주요 기술 기업 중심으로 개발하고 있다. 최근 발표한 인텔의 뉴로모픽 칩인 로이히2는 생쥐의 후각 수준으로 발전했고, 촉각으로 사물의 표면을 인식하는 인공피부도 개발할 수 있게 됐다. 싱가포르국립대는 이 칩을 활용해 인공피부로 덮인 로봇손을 개발, 점자를 인지하는 시연도 선보였다. 수년 후에는 일부 영역에서 상용화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최근 한국에서도 주요 반도체 기업과 학계가 힘을 모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니 반가운 일이다.

돌이켜보면 놀라운 일이다. 최초의 마이크로프로세서인 인텔 4004가 처음 선보인 50년 전만 해도 이 작은 칩으로 이런 엄청난 성능을 낼 수 있다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텔 4004가 나오기 전에는 공학용 연산을 위해 방을 가득 채운 거대한 컴퓨터가 필요했지만, 이제 휴대폰에 탑재하는 단 하나의 칩도 그 성능을 뛰어넘는다.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없었다면 지난 코로나19 상황을 어떻게 지냈을지 상상이 안 될 만큼 지금은 일상 곳곳에서 쓰이고 있다. 이런 발전을 계속 거듭하면 언젠가는 유튜브의 ‘먹방’을 시청하며 음식 냄새도 함께 맡을 수 있지 않을까? 상상만으로도 멋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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