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글로벌 인공지능(AI) 반도체 업계가 술렁였다. 세계에서 처리 속도가 가장 빠른 파이낸스 AI 반도체가 나온 것이다. 이 사실만으로도 주목을 끌기에 충분한 일. 정작 업계가 놀란 건 이 반도체를 설계한 곳이 설립된 지 1년을 갓 넘긴 스타트업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파이낸스 AI 반도체는 주식 거래 등 금융에 특화된 반도체. 지금까지 인텔의 ‘고야’가 이 분야를 주름잡던 지배자였다. 넘사벽으로 불리던 ‘세계 최강’을 2인자로 끌어내린 주인공은 한국의 리벨리온이다. 지난달 리벨리온이 공개한 AI 반도체 ‘아이온’은 고야보다 처리 속도가 30% 빠르고, 전력 소비 효율은 배 이상 높다. 벌써부터 삼성전자와 아마존, TSMC 등에서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반도체 팹리스(반도체 설계) 스타트업 리벨리온은 설립된 지 1년3개월 된 새싹기업이다. 세계적으로도 팹리스 업체가 설립 후 1년여 만에 첫 제품을 출시한 사례는 없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회사) 기업인 대만의 TSMC가 아이온 제작을 맡은 것도 업계의 관심을 끌었다. 최근 반도체 쇼티지(공급 부족) 상황에서 TSMC가 신생 기업의 일감을 맡았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팹리스 ARM,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의 박사급 베테랑 개발자도 리벨리온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첫 제품이 나오지도 않은 창업 1년여 만에 300억원 이상을 투자받을 만큼 ‘특별한’ 이력서가 그득했다.
박 대표는 그러나 “삼성과 SK하이닉스 등이 수년 동안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면서 이룬 세계 최고의 반도체 산업 환경에서 리벨리온은 단지 깃발을 꽂았을 뿐”이라고 겸손해했다. 리벨리온의 직원 절반 정도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출신이다. 이들의 경험이 리벨리온의 핵심 자산이라는 얘기다. 삼성전자는 최근 리벨리온에 먼저 연락했다. 리벨리온의 다음 AI 반도체 ‘아톰’을 5나노 공정으로 함께 만들기로 했다.
빠른 결과물을 내놓기 위해 주어진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근무 환경도 조성했다. 회의보다는 토론과 발표가 더 많다. 그는 “똑똑한 사람들이 모였을 때 나타날 수 있는 특유의 비효율 상황인 연구를 위한 연구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업무 속도를 높이기 위해 코로나19 확산에도 재택근무를 하지 않았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관련 직원들이 회사에서 바로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다.
리벨리온은 올해 아이온, 내년 아톰, 2023년 ‘리벨’ 등 맞춤형 AI 반도체를 계속 내놓을 예정이다. 데이터센터용 반도체인 아톰은 아직 시제품이 나오지도 않았지만 세계 1위 클라우드업체인 아마존이 리벨리온에 먼저 협업 요청을 해왔다. 박 대표는 “리벨리온을 제2의 삼성전자, 제2의 엔비디아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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