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어느 요양병원장의 하소연

입력 2021-12-20 17:29   수정 2021-12-21 00:23

“대법원에선 이겼지만 형사소송 3건이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난 10월 대법원에서 1년 계약직 직원의 연차휴가는 26일이 아니라 11일이라는 판결을 이끌어 낸 김학재 요양원 원장(78)의 말이다. 경기 의정부에서 직원 30여 명으로 요양원을 운영하는 김 원장은 1년 계약직 근로자의 미사용 연차수당 청구권이 ‘26일’이라는 지침을 강요한 정부와 해당 지침을 이용해 수당을 받아간 직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최종 승소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지난해 초 한 근로감독관이 김 원장을 찾아왔다. 근로감독관이 “왜 연차수당 26일치를 주지 않느냐”며 몰아세우자 김 원장은 어쩔 수 없이 수당 70여만원을 내줬다. 금액을 떠나 김 원장은 1년 계약직의 연차휴가권이 26일에 달한다는 점에 도저히 수긍할 수가 없어 홀로 소장을 냈다.

“나는 혼자 법원에 나갔는데 정부에선 변호사 4명이 나왔더라. 옮고 그름이 아니라 승소를 위해 일사불란한 그들 앞에서 나는 영락없이 반정부군이 돼 있었다.” 소송을 시작하자 주변에선 무모한 싸움이라며 말렸다. 그는 실제 재판 과정도 상상을 초월할 만큼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대법원은 김 원장의 손을 들어줬지만 고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민사소송과 별도로 ‘26일치 수당 미지급’이 임금체납이라는 이유로 기소된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다. 김 원장은 “대법 판결 이후엔 태도가 조금 누그러졌지만 검사는 발언도 못 하게 하고 도둑놈 취급만 해서 애를 먹고 있다”고 했다.

김 원장은 지금까지 1년 계약직 직원에게 법정 연차휴가인 11일이 넘는 15일의 휴가를 보장해 왔다. 이번 소송에서 15일치가 아니라 11일치만 반환 청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죄인 취급’이었고, 소송 이후 요양원에선 계약직과 정규직 간 노노 갈등까지 불거졌다.

상황이 이런데도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 정부는 “고의가 없다”는 이유로 책임을 면제받았다. “상식을 주장하는 국민을 찍어누르기만 하는 정부에 꼭 따지고 싶었다. 입법을 한 국회와 행정을 한 정부는 무슨 목적을 달성했는지 모르지만 결국 골탕먹은 건 국민뿐”이라는 게 김 원장의 주장이다.

고용노동부는 결국 대법원 판결에 따라 지난 16일 1년 계약직 근로자의 미사용 연차수당 청구권은 26일이 아니라 11일이라는 내용으로 연차유급휴가 행정해석을 변경했다. 뒤늦게 바로잡긴 했지만 아직도 곳곳에선 영세 소상공인과 단기 계약직 근로자 간 다툼이 계속되고 있다. 언제까지 부실한 입법과 엉성한 행정의 대가를 선량한 국민이 치러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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