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빚 폭증이 경제 충격 부른다"…2022년 한국에서도? [노경목의 미래노트]

입력 2022-01-01 08:23   수정 2022-01-01 08:58


미국은 물론 세계경제를 붕괴시켰던 1929년 대공황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들 사건을 촉발시킨 원인에 대해서는 지금도 여러 분석이 엇갈린다. 하지만 그 원인을 '부채', 특히 가계부채라고 명쾌하게 정리하는 사람들이 있다.

'빚으로 지은 집'이라는 책을 2014년 내놓은 미국의 경제학자 아티프 미안과 아미르 수피가 그들이다. DSR을 비롯한 대출규제가 새해에도 부동산 등 자산 시장의 가장 큰 변수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들의 저작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금융정책을 총괄하는 정책 당국자들이 이 책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가계대출 저승사자'로 통하는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8월 취임 이래 이 책을 금융위 직원들에게 추천하고 있다. 이 책은 금융위 직원들 사이에는 이미 유명하다. 2017년 최종구 당시 금융위원장이 직원들과 만날 때마다 '빚으로 지은 집'을 화제에 올렸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과도할 정도로 가계 대출을 옥죄는 정책 당국자들의 의도를 이해하려면 한번쯤 살펴봐야할 책이다. 책의 내용을 찬찬이 살펴보면, 정권교체와 관계 없이 현재의 가계 대출 규제 기조가 바뀌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도 느껴진다.
'가계 부채 증가 소비 감소'는 필연
풍부한 예시와 통계를 들고 있지만 '빚으로 지은 집'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비교적 간명하다. 부채가 일정 수준 이상 쌓이면 원리금 상환에 들어가는 비용이 늘고, 그만큼 소비 지출이 줄어든다. 이같은 지출감소가 본격적인 소비위축으로 이어지면 경기 불황, 더 나아가 경제 위기가 온다는 것이다.

1929년 대공황이 급작스런 소비 위축에서 시작됐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다만 소비 위축을 부른 이유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뉘는데, 미안 등은 1920년대를 관통한 가계 부채 증가가 소비 위축으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1920년부터 1929년 사이 주택 할부금과 자동차, 가구 등 내구재 소비에 대한 부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경제학자 찰스 퍼슨스가 1930년대에 계산한 결과에 따르면 도시 지역 주택 담보 대출은 1920년부터 1929년 사이 세 배 증가했다.

소비자 금융 분야에서 손꼽히는 전문가인 마사 올니는 '1920년대는 소비자 금융 역사에서 전환점을 이룬 시기였다'고 설명한다. 미국 역사에서 처음으로 내구재를 사려는 소비자들이 매장에서 현금이 아니라 빚을 이용해 사는 것을 자연스럽게 느끼던 시기다. 빚을 내 물건을 구입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변해서 이전보다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빚으로 지은 집'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전에 원리금 상환 부담에 따른 소비 위축이 선행됐다고 지적한다. 2006년을 기점으로 미국 내 소비재 기업들의 파산이 크게 늘어났다는 것이다. 역시 대공황 이후 가계 대출이 가장 급격히 늘어났던 때다.

"소비 지출은 2008년 가을 전에 크게 감소했다. 전미경제연구소(NBER)에 따르면 불황은 리먼브라더스 파산 3분기 전인 2007년 4분기에 이미 시작됐다. 특히 주택 투자와 내구재 소비가 2008년 가을 훨씬 전부터 크게 감소했다. 리먼브라더스 파산 전에 자동차와 가구 관련 소비 지출은 8%, 주택 개조 관련 지출은 5% 줄었다. 가계 지출이 줄면서 기업들도 주자를 줄이기 시작했다."

이같은 분석을 기반으로 저자들은 논의를 확장한다. 어느 나라, 어느 시기에서든 가계 대출이 임계점을 초과하면 필연적으로 큰 경제충격이 뒤따랐다는 설명이다.

"가계부채가 더 크게 증가할수록, 소비 지출 또한 급격히 줄어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을 대상으로 글로벌 금융위기를 연구한 루벡 글릭 등에 따르면 1997년부터 2007년 사이 가계 부채가 크게 증가했던 나라일수록 2008년부터 2009년 사이 가계 지출이 큰 폭으로 줄었다.

동유럽과 아시가 국가들을 포함한 36개국을 대상으로 한 국제통화기금(IMF)의 연구에서도 불황에 따른 소비 감소폭을 가장 잘 예측하는 변수가 가계 부채 증가율임이 나타났다.

영란은행 총재를 맡았던 머빈 킹은 1994년 '부채 디플레이션: 이론과 증거'라는 제목으로 유럽경제학회장 취임 연설을 했다. 여기서 머빈 킹은 '1990년대초 가장 심각한 불황이 일어났던 나라들은 모두 민간 부채가 가장 크게 증가했던 나라들이었다'고 주장했다.

모리츠 슐라릭과 앨런 테일러는 1977년 스페인, 1987년 노르웨이, 1991년 스웨덴, 1992년 일본의 은행 위기를 분석했다. 결과적으로 4개 나라 모두 은행 위기 발생 전 민간 부채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그런 점에서 이들 은행 위기는 민간 부채 위기라 불러도 무방하다.

미국의 사례와 국제 사례들을 종합해 보면 아주 분명한 패턴이 드러난다. 그것은 바로 경제적 재앙에는 거의 언제나 가계 부채이 급격한 증거라는 현상이 선행해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 상관관계는 매우 강해서 거시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일종의 경험적 법칙에 가깝다. 더욱이 가계 부채의 급격한 증가와 경제 위기는 소비 지출의 급격한 감소와 긴밀히 연관된다."
선진국 대비 악화된 한국 가계부채
물론 현재 한국의 가계부채 수준이 당장 경제 위기나 소비 지출 급락을 촉발시킬 정도인지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빠르게 증가해 주요국 대비 상당히 많은 수준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OECD에서 집계하는 가구 가처분 소득 대비 가구 부채 총액 통계를 살펴보자. OECD 통계 사이트로 접속해 'national accounts at a glance', 'household'를 차례로 클릭하면 살펴볼 수 있다.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제외한 소득 총액과 비교해 가계 부채가 어느 정도인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한국의 해당 비율은 2008년 138.5%에서 지난해 200.7%로 급증했다. 사용 가능한 연소득 대비 두 배 이상의 빚을 한국 가계가 지고 있다는 의미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더욱 암울하다. 2008년만 해도 한국의 해당 비율은 조사 대상 33개국 중 11위 수준이었다. 하지만 2020년에는 6위로 뛰어올랐다. 한국보다 관련 지표가 나빴던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등 유럽 국가들의 가계가 빚을 상환해 해당 비율을 낮춘데 따른 결과다.

한국보다 가계가 더 많은 빚을 지고 있는 국가는 스위스와 노르웨이, 네덜란드, 덴마크, 호주 정도다. 그나마 노르웨이를 제외한 4개 국가는 최근 몇 년간 가계 대출을 줄이며 관련 지표가 개선되고 있다. 노르웨이는 국내총생산(GDP)에서 광업이 25%에 이르는 산유국으로 일반적인 OECD 회원국과 직접 비교하기 어렵다.

빚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도 대공황 직전의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부동산과 주식, 암호화폐를 가리지 않고 빚투(빚을 낸 투자)가 일반화 됐고, 특별한 용처가 없어도 대출 규제가 강화되기 전에 빚을 얻으놓으려는 이들이 많다. 한 금융권 인사는 이같은 현상을 두고 "대출을 리스크가 아니라 권리로 생각하는 이들이 지나치게 많아져 곤혹스럽다"며 곤혹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집값 급등에 대한 우려가 나타날 때마다 거론되는 일본의 경우 버블 붕괴 당시에도 가계 경제는 건전했다. 1996년 가계 가처분 소득 대비 가계 부채는 114.09%로 2008년 당시 한국 수준보다 낮았다. 금융 제도상으로는 집값 이상을 빌려 주택을 구매하는 것도 가능했지만 빚을 적극적으로 내는 가구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는 의미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시켰던 미국 가계 대출은 이후 빠르게 정상화됐다. 2007년 144.70%에 달했던 가처분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이 지난해 101.11%까지 떨어졌다. 한국의 절반 수준이다. 올해 미 중앙은행이 본격적으로 금리 인상에 들어가더라도 그에 따른 부담이 한국과 비교해 크게 낮다는 의미다.

세계 경제가 침체될 경우 한국이 주요 선진국에 비해 더 어려운 시기를 보내게 될 가능성이 높은 부분이다.
'빚으로 지은 집'을 해체하려면
'빚으로 지은 집'에서 나타나는 경제 붕괴는 금융 시스템의 혼란과 맞물려 나타난다. 원리금 부담에 줄어든 소비 지출이 자산가격 급락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은행 건전성에 악영향을 주는 구조다. 한국은 일찍부터 LTV, DTI 규제를 시행해 은행 시스템이 건실하다고 인식되고 있지만 이 역시 과신하기는 어렵다.

한국은 올해 본격 도입하는 차주 단위 DSR을 미국과 EU, 영국은 이미 수년 전부터 시행하고 있다. LTV, DTI가 담보인 집값을 기준으로 대출을 해준다면 DSR은 실제 상환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개인 소득을 기준으로 대출이 집행된다. LTV, DTI 중심의 대출 구조가 DSR과 비교해 자산가격 급락에 취약할 수 밖에 없다.

현재의 가계 부채 규모가 당장 위기를 부를 수준인지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여기서 가계부채가 더 늘어날수록 한국 경제 전반의 위험이 커진다는 점은 확실하다.

지난해 9월 시행되며 여러 대출 수요자들의 원성을 쌌던 대출 총량 규제도 결국 증가폭을 억제할 뿐, 가계 부채 자체를 줄이는 대책은 아니다. 새해에도 금융당국이 DSR과 관련된 금융 규제 강화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노경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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