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갈등, 獨·佛 정권교체…러시아 '우크라 침공 적기' 판단했나[신범식의 국제정치 읽기]

입력 2022-01-18 17:28   수정 2022-02-01 00:31

작년 말 10만 명에 달하는 러시아 병력이 접경 지역에 집결하면서 러시아의 침공 우려와 함께 우크라이나 위기가 다시 고조됐다. 2014년 크림반도 합병 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지역 분리주의자들을 지원하면서 돈바스 전쟁이 발발했고, 이듬해 민스크 협정으로 사태가 일단락되는 듯했다. 우크라이나를 분쟁지역화해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저지하려는 목표가 달성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민스크 협정에 불만을 가진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러시아가 지원하는 반군 간의 크고 작은 갈등은 계속됐다. 돈바스의 광범위한 자치안은 실현되지 못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정권과의 관계 개선이 난망해지고 우크라이나-NATO 관계가 강화되자 민스크 프로세스에 피로감을 느낀 러시아는 새로운 대응을 시작했다. 군사력 및 그에 동반되는 경제적 및 사이버·정보 수단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러시아의 군사적 동원에 서방은 러시아를 비난하며 강력히 경고했고, 러시아는 자국 영토 내 정기 군사훈련에 대한 서방 간섭을 맞비난하며 우크라이나와 NATO가 흑해 연안에서 도발을 지속해왔다고 반박했다. 러시아의 행동이 모험주의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 속내는 복잡해 보인다.
탈냉전 유럽 질서의 변화와 러시아의 대응
소련 붕괴 후 러시아가 체제 전환의 혼란으로 약화되는 가운데 미국은 동맹국과 함께 자국 중심의 유럽 질서를 구축했고, 소련 해체로 유라시아에 발생한 광범위한 지정학적 공백을 미국 주도의 영향력으로 채워갔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냉전의 유산인 NATO를 그 수단으로 활용했다. 1990년 베를린 장벽 붕괴 후 독일 통일을 논의하면서 NATO는 동진(東進)하지 않을 것이라는 서방의 약속은 잊혀졌고, 탈냉전기 NATO는 중동부 유럽을 넘어 옛 소련 공화국 조지아와 우크라이나까지 확장하려 했다.

NATO의 동진은 러시아 서부의 안보 딜레마를 고조시켰지만, 체제 변화의 위협에 대한 우려 또한 크다. NATO 프로그램은 군사·안보적 멤버십 확장일 뿐 아니라 정치·사회적 민주주의 체제로의 변화를 요구한다. 옛 소련 공화국으로까지 확장을 위해 NATO, 특히 미국은 해당국 시민단체를 지원하고 민주주의 이식을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2003년 이후 그루지야, 우크라이나, 키르기스스탄에서 민주화 혁명이 발생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이런 시도가 자국의 사활적 이해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심각히 훼손할 뿐 아니라 러시아 국내 정치의 안정을 해치려는 행위로 규정하며 그 배후에 미국의 러시아 레짐 변화의 기획이 있다고 확신했다.

1990년대 탈냉전기 총체적 혼란 속에서 서방의 확장 및 국익 침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던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 등장 이후 에너지·자원의 부를 바탕으로 강대국 정치에 입각해 서방에 대한 적극적 대응을 모색하게 됐다. 국력 약화로 서방에 의한 현상변경을 강요당하고 핵심 국익을 침해당하던 러시아가 ‘수세적 방어’ 전략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면, 푸틴 이후 국력을 회복한 러시아는 핵심 국익 침해를 더 이상 참지 않고 군사력을 포함한 적극적 수단을 동원하는 ‘공세적 방어’ 전략으로 전환했다. 이는 2008년 조지아 전쟁으로 표출됐다.

1990년대 NATO의 일방적 동진에도 활성화되지 않던 ‘지정학적 단층대’는 푸틴 이후 국력을 회복한 러시아와 현상변경을 계속 시도하는 서방 간 대립으로 활성화됐고, 그 선상에 위치한 우크라이나는 지정학적 중간국 딜레마에 전면 노출됐다.
지정학적 중간국 우크라이나의 선택
페레야슬라프 조약 이후 오랜 시간 러시아 영향력 아래 있었던 우크라이나는 역사적 경험을 통해 내부적으로 친러시아적 동(東)과 유럽지향적 서(西)로 분열된 정체성이 형성됐고, 독립 이후 러시아-서방 경쟁 구도에 끼여 ‘외교적 균형’이 매우 중요했다. 하지만 2004년 오렌지혁명과 2013년 유로마이단 이후 우크라이나의 선택은 러시아의 핵심 이익에 정면으로 반하는 유럽으로의 편입이었다. 2008년 부쿠레슈티 선언 이후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논의가 본격화되고 키예프의 서방 접근이 추진되자 2014년 러시아는 역사적이며 안보적 요충지인 크림반도를 전격 합병해 자국 흑해함대와 그 지중해 진출의 근거를 확보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동부의 친러 분리주의를 지원해 돈바스 전쟁을 방조해 NATO 가입을 저지하려 했다.

하지만 NATO의 동진 기회를 현실화하기 위해 미국은 25억달러를 군사원조로 지출했고, 대전차 미사일 등 무기를 지원했다. 영국은 해군기지 건설을 지원했고 미국이 제공한 감시선이 배치됐다. NATO와 미국 군사고문단도 파견됐다. 순항미사일을 장착한 NATO 군함의 흑해 순환배치가 지속됐고 전략폭격기 기동도 증가했다. 지원에 힘입은 우크라이나 역시 돈바스 접경지역에 방어선을 강화하고 전차 등의 전력을 증파했다. 2020년 6월 NATO는 우크라이나에 ‘강화된 기회의 동반자(EOP)’ 지위를 부여해 양자관계를 격상했다. 작년 4월 젤렌스키 대통령은 돈바스 분리주의자들과의 싸움을 끝낼 유일한 방법은 NATO 가입뿐이라고 강변했다.

특히 조속한 NATO 가입을 목표로 양측은 공동 군사훈련을 확대해 갔다. 2015년 우크라이나에서 연합훈련을 한 뒤 2021년 6월 흑해에서 연합훈련을 2주간 실시했고, 9월엔 미군 등 다국적군 훈련도 진행했다. 훈련센터 명분의 군사기지 건설도 진행 중이다. 러시아의 대응이 없다면 NATO 가입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이런 합동 군사훈련에 대해 레드라인을 넘었다는 러시아의 경고에 미국은 레드라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맞받았다. 러시아는 기동성 높은 부대의 국경 배치로 돌발 상황에 대비했다. 이런 군사력 배치는 지난해 이미 수차례 있었는데, 이는 침공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NATO-우크라이나 연합훈련 대응의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연말 대규모 병력의 국경 배치는 서방을 협상테이블로 나오게 했다. 러시아가 요구한 협상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외교의 시간과 그 이후
지난해 12월 15일 러시아는 미국과 NATO에 안전 보장 관련 조약안 초안을 전달했는데, 그 요지는 △NATO의 러시아 인근 국가에 중·단거리 미사일 및 핵무기 배치 중지 △NATO 동진 및 우크라이나 등 옛 소련 국가의 NATO 가입 중단 △러시아 국경 근처에서 군사훈련 중지 등이다. 러시아의 요구에 대해 지난 1월 10일부터 러-미, 러-NATO, 러-유럽안보협력기구(OSCE) 간 연쇄협상이 진행됐다. 1월 10일 제네바에서 미·러는 웬디 셔먼 국무부 부장관과 세르게이 랴브코프 외무부 차관을 대표로 7시간 반에 걸친 마라톤 회담을 했다. 타스통신은 러시아가 미국에 안전보장안 수용을 요구했으나 미국이 거부했고 양국 입장이 평행선을 달렸다고 전했다. 미국 대표단은 지도부에 협상 결과를 보고하고 다음주에 러시아에 문서로 답을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큰 기대는 난망해 보인다. 미·러 회담에서 성과를 도출하지 못한 러시아는 다음 날 우크라이나 접경지역에서 3000여 명의 병력을 동원해 실사격 훈련을 진행하고 전투기와 헬기를 추가 배치해 압박 수위를 높였다.

1월 12일 브뤼셀에서 크림반도 합병 이후 중지됐던 NATO-러시아위원회가 열렸으나 성과는 없었다. 4시간가량의 회의 직후 옌스 스톨텐베르그 NATO 사무총장은 우크라이나는 자국 안보 사안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으며, NATO는 개방정책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날 빈에서 러시아-OSCE 협상도 있었지만, 별다른 성과 없이 이견만 확인했다. 회의 직후 마이클 카펜터 OSCE 주재 미국 대사는 정치적 수사들이 날카로워졌으며 전쟁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음을 경고했다. 랴브코프 차관도 수일 내 대화 재개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연쇄 협상의 가시적 결과는 없었으며, 양측이 솔직한 입장을 확인했다는 점이 성과라면 성과일 것이다. 하지만 향후 수주에서 수개월이 걸릴 외교의 시간 이후에는 진실의 시간을 대면해야 할 수도 있다. 러시아에 현재 유럽 안보구조 하에서 적대적 서방에 우크라이나가 결합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위험이다. 러시아가 이를 막을 수단으로는 강제력밖에 없어 보인다. 우크라이나를 자국의 영향력 아래 잡아두기는 어렵더라도 군사적 위협과 결정적 상황에서의 군사력 사용을 통해 서방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고리를 약화시키고, 우크라이나의 반러시아적 국가 능력을 무력화하는 것이 러시아의 현실적 목표인 것이다. 푸틴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으며 우크라이나의 진정한 주권은 러시아와의 파트너십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합리적 시간 내에 법적 구속력이 있는 보장이 필요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자국 안보에 대한 위협을 제거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어쩌면 일정한 비용을 치르고서라도 지금 이 위협을 제거하는 것이 나중에 대응하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들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는 듯하다. 미국의 우선순위가 중국이라는 점은 명백하며, 독일 및 프랑스가 리더십 교체기에 들어서 있다. 러시아의 목표 달성을 위해 위협과 최후통첩을 진행하기에 나쁘지 않은 시기이며 잠재적 이익이 비용보다 클 것이라는 판단에 무게를 실어줄 만한 환경이다. 실제로 푸틴이 그렇게 판단하고 있다면 향후 수주 내지 두어 달의 외교의 시기를 보내며 군사적 위협을 지속할 것이다. 물론 이 기간에 러시아 국내 여론을 우호적으로 조성하는 작업도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어떤 수준이든 우크라이나와 서방의 결속을 와해 내지 동결할 수 있는 결정적 기회를 포착해 군사력 사용을 감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를 통해 우크라이나 정권의 붕괴와 친러 정부의 구성안, 우크라이나의 분할안, 실패 국가로 만들어 이민자 위기를 촉발해 유럽을 압박하는 안 등 다양한 러시아의 선택지를 확대할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유럽안보체제에 ‘위험한 기회’의 시간
미국 등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위해 대응 전쟁을 벌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비군사적 수단에 의존하는 대응 입장은 협상에서 러시아에 우위를 부여한다. 그래서 서방은 협상 과정에서 러시아 요구에 더 강경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으며, 협상 결과가 타협적으로 잘 마무리될 가능성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결국 서방이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는 경제 제재이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와 NATO 회원국에 대한 안전 재보장을 강화하는 대응을 추가할 수 있다.

다만 이번 위기 상황을 통해 미국은 NATO 동맹국은 물론 중립적이거나 균형을 추구하던 유럽 국가들을 모아 결속을 촉진할 기회를 얻었다는 점에서 손해만 보는 것은 아니다. 또한 러시아와 중국이 군사적으로도 점차 밀착되는 상황에서, 러시아가 유라시아 서부에 집중하게 해 동부에서 중·러 협력의 여지를 줄여가는 것도 부수적 이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러시아가 군사적 행동을 감행할 경우 미국의 대응과 강력한 경제 제재는 조 바이든 행정부 이후 기대되던 미·러 관계 개선의 기회를 완전히 차단함으로써 지구적 신냉전의 구조화를 촉진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비관적 전개를 막아낼 유일한 방법은 러시아와 서방 진영 간의 지속적 대화 내지 물밑 접촉을 통해 양측이 수용할 수 있을 만한 타협점을 찾는 것인데, 이는 최대한으로는 유럽안보체제를 미세 조정하거나, 최소한으로는 현상을 유지하는 사이의 어떤 지점이 될 수 있다. 향후 지속될 공식·비공식의 외교적 접촉과 협상의 시간은 향후 유럽안보체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위험한 기회’의 시간이 될 것이다.

■ 신범식 교수는

유라시아 및 메가아시아 시대의 비교지역연구를 개척하는 국제정치학자다. 서울대와 모스크바국제관계대에서 국제정치, 비교정치, 지역연구를 수학했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부소장, 국제문제연구소 복합안보센터장으로 재직 중이다. 국회, 외교부, 통일부,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북방경제협력위원회 등에서 자문 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유라시아 국제관계, 러시아 정치·외교, 동북아 지역협력, 환경·에너지 국제정치, 메가아시아 비교지역연구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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