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깎지 않고 가능할까"…'주4일제' 장애물 뭔가 봤더니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입력 2022-01-30 15:49   수정 2022-01-30 20:23



대통령 후보들을 위주로 정치권에서 주4일제를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내에 주5일제를 최초로 도입했던 금융권도 임금 감축 없는 주4일제를 요구하며 군불을 때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선제적으로 도입한 외국의 사례는 어떨까. 그리고 주4일제를 도입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뭐가 있을까.
스페인 "근로시간 단축 기업에 지원금"…3년짜리 실험
스페인은 보수적인 카톨릭 국가라는 이미지와 달리 1919년 바르셀로나 44일 파업으로 서유럽에서 가장 먼저 8시간 노동제를 도입한 국가라고 한다. 이런 전통 탓인지 스페인은 지난해 3월 초 200~400개의 기업의 3000~6000명의 근로자에게 임금 삭감 없이 주4일제를 시험 도입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이들의 주당 근로시간은 32시간이 된다. 진보 군소 정당 '마스파이스'의 제안을 집권당이 받은 결과다.

영국 '가디언'지의 보도에 따르면 스페인 정부는 주4일제 도입에 따른 인력 추가 채용, 교대 근무 개편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을 보상한다는 방침이다. 첫해에는 100%를, 2년차에는 50%를, 3년차에는 33%를 보전해 준다는 계획이다. 이 시험에는 3년간 5000만 유로가 투입된다. 특히 EU에서 스페인에 지급하는 코로나19 회복기금을 재원으로 한다는 계획이라 국가적 차원의 실험이다.

물론 스페인 내부에서도 비판적 시각이 있다. 스페인의 경제단체 CEOE 측은 "20세기 초반 스페인 내전 이후 최악의 불경기 상황에서 무슨 짓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또 정부 비용 보전이 종료된 이후까지 기업들이 영속적으로 주4일제를 도입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결국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주4일제가 성공하기 위한 관건은 임금 감축이 없는지가 관건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물론 주4일제를 지지하는 입장에서는 "생산성이 크게 높아졌다"는 점을 근거로 들지만, 절대 근로시간이 줄어들어 입은 손해를 복구하기란 쉽지 않다.

오민 의회정보실 국외정보과 해외자료조사관은 '영미권 국가들의 주 4일 근무제 현황 및 사례'라는 보고서에서 "스페인의 대기업 텔레포니카는 지난해 10월1일 주4일제를 도입하는 대신 임금을 15% 삭감했다. 이렇게 되자 2만여명의 직원 중 불과 150여명(0.75%)이 주4일 근무를 희망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결국 주4일제는 기업과 근로자 누구 한쪽의 희생이 필요한 '제로섬' 게임이 될 수 있다. 물론 세금이 투입되는 경우엔 별론으로 할 수 있을 듯하다.
◆"재정 여력 되는 IT, 핀테크 기업에서나 가능"…부작용 사례도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업무 특성상 대면·제조업체에서는 주4일제 도입이 어렵다. 제조업의 경우 근로시간만큼 생산량이 나오고 수익으로 직결되기 때문에 주4일제 도입은 쉽지 않다. 앞서 본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임금 감축을 전제로 한다면 근로자들 조차도 희망하지 않을 것은 명약관화다.

그래서 주4일제는 수익성이 좋고 임금 재량의 폭이 큰 금융권이나 IT 업종, 핀테크 분야 기업들이 도입을 시도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정부의 지원을 전제로 한다는 한계가 있다.

해외에서 성공사례로 유명한 영국 '아톰은행'은 임금 변화 없이 전 직원 430명을 대상으로 주4일제를 도입한 것으로 유명한 회사다. 다만 이 은행은 창립 초기부터 비대면(온라인) 거래를 주목적으로 한 기업이다. 다만 이 은행조차도 고객전담팀 등 일부 대면 부서에는 주4일제를 적용하지 않고 있다.

또다른 성공사례로 회자되는 마이크로소프트 재팬(일본지사) 역시 '워크라이프초이스 챌린지 2019'를 통해 2300여 명의 직원들에게 10만엔의 휴가비를 지원하고 임금 삭감 없이 금요일을 쉬도록 하는 정책을 펼쳤다. 반응은 당연히 좋을수밖에 없다. 다만 역시 대면 업무 부서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수익성은 잘 알려져있다시피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금융권이나 IT기업들을 중심으로 주4일제 도입이 논의된다는 점이 눈에 띈다.

성공사례만 들려오는 것은 아니다. 독일 전자상거래 회사 Digital Enabler도 "직원이 업무에 집중한다면 근무시간 5시간 내에 일을 마칠 수 있다"며 근로시간 단축을 실험했다. 하지만 근무시간 동안 휴대폰, 소셜 미디어 사용, 사무실 내 잡담, 가족이나 친구들과 연락하는 것 등을 금지했다. 처음에는 환호하던 직원들도 지날수록 근로시간 압박감과 외부 단절을 불편해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스웨덴은 2015년 공립 양로원을 대상으로 하루 8시간 보상 수준을 유지하면서 6시간으로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프로그램을 시도했다고 한다. 당연하게도 근로자들의 호평을 받았지만 추가 채용, 보상 비용의 증가로 제도가 지속되지 못했다.

주4일제 도입에 대한 사회적 시선도 노동시장 이중 구조화 논란, 상대적 박탈감 등으로 인해 곱지만은 않다. 배달의민족은 주4.5일제에 이어 올해 1월 주32시간 근무제를 도입하기로 발표해 직원들의 환호를 이끌어냈지만, 일각으로부터 "가맹점 수수료 할인 같은 것은 생각도 하지 않느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근로시간 감소 없는 주4일제 "성공적"
일각에서는 주4일제 옹호론자들이 "오히려 생산성이 향상됐다"며 제시하는 수치도 허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스페인 경제단체 CEOE는 "주4일제를 시험 도입하면 근로자들의 의식적으로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한다"고 말했다. 테스트 기간이 끝난 다음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지적이다. 또 안 그래도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핀테크나 IT기업의 매출은 매년 성장하고 있는데, 이를 기준으로 삼아 주4일제 도입으로 인해 직원의 생산성이 좋아졌다고 측정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도 덧붙여 진다.

이 때문에 일반 기업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스페인의 실험이 전세계적으로 관심을 모으는 이유다. 이런 국가적 규모의 시험은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일각에선 그나마 현실적인 방안은 근로시간 감축 없는 주4일제라는 의견도 나온다.

미국 콜로라도주의 볼더카운티 소속 6개 공공기관은 2021년 1월 새로운 시험에 돌입했다. 주40시간을 지키면서 주4일을 근무하도록 한 것이다. 출근시간은 오전 7시 반이고, 10시간의 근무를 실시한다.

4개월 실험 진행 후 공무원들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주4일제 시행 후 오히려 이른시간부터 늦은 시간까지 문의전화 등에 응대할 수 있고, 주민들도 아침 일찍 공공업무를 본 후 출근을 할 수 있다는 점때문에 민원인들에게 호평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사실 이 제도는 근로시간 단축 없는 주4일제라는 점에서 '유연 근로제'에 가깝다.

오민 국회 조사관은 "주4일제는 임금 보전, 산업별 노동형태의 차이점 등으로 인한 노동 양극화,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단위 인건비 상승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 문제 등이 존재한다"며 "우리의 산업지형이나 사회구조가 다른 나라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많은 실험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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