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500명 기자 중 28명만 라운드 기회…한경 기자 마스터스 무대에 서다

“당신, 로또에 당첨된 거야. (당첨된 걸) 경매에 내놓으면 최소 10만달러(약 1억2300만원)는 받을걸.”

지난 며칠간 눈인사만 했던 미국 기자가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손을 내밀었다. 부러움이 가득한 눈이었다. 벽에 붙은 TV 화면에는 ‘월요일 골프 로또 당첨자 조희찬(Monday Golf Lottery Winner, Heechan Cho)’이 적혀 있다. 지난 9일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마스터스 토너먼트가 열린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내셔널GC에 마련된 기자실에서 벌어진 일이다.


오거스타GC가 마스터스 취재를 위해 찾은 세계 500여 명의 기자 중 추첨을 통해 딱 28명에게만 주는 라운드 기회를 잡은 것이다. 세계 최대 골프축제의 무대이자 빌 게이츠, 워런 버핏 등 ‘명사(名士) 중의 명사’만 회원으로 받는 오거스타GC가 ‘서울에서 온 주말 골퍼’에게 티박스를 내준다는 얘기였다.

509일 만에 이뤄진 타이거 우즈 복귀 소식을 전하느라 지난 5일 동안 10시간도 못 잘 정도로 고된 일정을 소화한 데 대한 보상이라고 믿었다. “그동안 고생했으니 잘 즐기고 오라”는 말을 기대하고, 서울에 있는 데스크(부장)에게 전화했다. 그러나 수화기 건너편에 있는 사람의 생각은 180도 달랐다. “체험기를 준비하자. 독자들이 오거스타에 있는 것처럼 느끼도록 사소한 것까지 꼼꼼하게 취재해 전달해보자.” 1억원짜리 로또는 그렇게 숙제가 돼버렸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은 골프채 확보였다. 오거스타GC 관계자는 “그린피, 캐디피, 식사까지 골프장이 책임진다. 공과 채만 알아서 구하라”고 했다. 티오프 시간은 11일 오전 11시. 당일 아침 인근 골프숍에 들러 “클럽 대여비가 얼마냐”고 묻자 “대여 안 한다”는 퉁명스러운 답이 돌아왔다. “두 시간 뒤 오거스타에서 티오프한다”며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무테안경을 쓴 주인장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 “오거스타 옆에서 평생 살았지만 한 번도 못 가봤다. 나 대신 클럽을 보낼 테니, 오거스타의 흙과 잔디를 많이 묻혀와 달라.”

주인은 “돈은 안 받겠다”며 자신의 채를 내줬지만, 50달러를 건넸다. 고마운 마음에 골프공도 24개나 구입했다. 이제 챙길 건 다 챙겼다. 가속페달을 밟는 오른발에 힘을 줬다.

"타이거 우즈가 섰던 오거스타 1번홀…티샷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오거스타내셔널GC는 외부인들에게 좀처럼 ‘속살’을 공개하지 않는다. 회원권을 가진 300여 명과 동반 라운드하지 않는 한, 제아무리 돈 많은 기업인이건 유명 스타이건 클럽하우스로 들어가는 입구인 ‘게이트3’를 통과할 수 없다.


그런 게이트3를 기자는 지난 11일 통과했다. 흰색 제복을 입은 수문장은 초청장과 신분증을 꼼꼼히 확인한 뒤 큼지막한 무쇠 바리케이드를 치웠다. 그러자 도로를 사이에 두고 줄 지어선 울창한 목련 60그루가 기자를 맞이했다. 오거스타GC의 상징 가운데 하나인 ‘매그놀리아 레인(목련 길)’이다.

미국 가정집 닮은 소박한 클럽하우스

매그놀리아 레인은 300m에 이른다. 200년 넘게 산 고목들이 나뭇잎으로 뒤덮인 가지를 도로 위로 길게 늘어뜨린 덕분에 ‘나무로 만든 터널’ 분위기를 자아냈다. 타이거 우즈가 왜 자신의 집에 ‘미니 매그놀리아 레인’을 만들었는지 고개가 끄덕여졌다.

터널을 서행하며 지나자 시야가 확 트였다. 2층짜리 흰색 클럽하우스가 한눈에 들어왔다. 평범한 미국 가정집을 조금 크게 확대한 모양새다. 내심 기대했던 ‘럭셔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건물 외관의 고급스러움만 따지면 한국 골프장이 한 수 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클럽하우스 앞에 차를 대자 직원 서넛이 모여들었다. 한 명은 트렁크를 열어 골프백을 내렸고, 다른 한 명은 차 문을 열어주면서 발렛 티켓을 건넸다. 눈을 돌리니 또 다른 직원이 클럽하우스 정문을 잡은 채 “들어오라”며 손짓했다.

그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도착한 곳은 ‘챔피언스 온리’란 팻말이 선명하게 붙은 ‘챔피언스 로커’. 마스터스 역대 우승자 55명에게만 허락된 곳이다. 로리 매킬로이도, 어니 엘스도, 브라이슨 디섐보도 열어보지 못한 로커를 기자가 쓰는 영광을 누렸다. 28개 옷장마다 두 명의 챔피언 명패가 붙어 있다. 기자에게 배정된 로커의 주인은 1955년 챔피언 캐리 미들코프와 1988년 챔피언 샌디 라일이었다.

72세 전담 캐디와의 만남

옷을 갈아입고 레스토랑으로 이동했다. 소시지 감자 비스킷 등으로 구성된 소박한 뷔페였다. 실제 마스터스 PGA 선수들에게 제공되는 메뉴와 같다고 했다. 먹는 둥 마는 둥, 곧바로 야외 연습장으로 향했다. 마스터스 대회 기간에 선수들이 연습하던 바로 그곳이다. 이날 함께할 기자의 전담 캐디는 이미 연습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찜해놓은 곳은 김시우가 3라운드에 나서기 전에 연습한 자리였다.

72세 흑인 남성 캐디는 오거스타GC에서 12년 동안 일해 왔다고 했다.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 같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월터라고 부르면 된다고 했다. 월터는 기자가 웨지를 꺼내든, 드라이버를 고르든 언제나 “좋은 선택”이라고 맞장구를 쳐줬다. 기자의 얼굴에 ‘긴장’이 써 있는지, 조금이라도 풀어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피라미드 모양으로 쌓아놓은 타이틀리스트 공은 새 공이 아니면 ‘A급 로스트 볼’이었다. 치기 미안할 정도로 광이 났다.

긴장한 탓인지 10분 만에 온몸이 땀에 젖었다. 그걸 봤는지, 월터는 “그린에서 연습해보지 않겠냐”고 했다. 우즈처럼 무심하게 공 2개를 그린에 툭 던지고 퍼터를 건네받으려 잠깐 고개를 돌린 사이, 공은 저 멀리 굴러갔다. 머리를 긁적이자 월터는 “실제 그린은 더 빠르다”며 껄껄 웃었다.

1번홀 티박스에 오르다

시계가 오전 10시40분을 가리키자 월터가 클럽을 챙기기 시작했다. 티박스로 가자는 신호였다. 심장 박동이 빨라졌고, 얼굴은 땀으로 흥건해졌다. 온몸이 고장난 듯했다.

두 가지만 떠올렸다. 라운딩 당첨을 통보받은 9일 임성재 선수와 데이비드 마허 아쿠쉬네트 최고경영자(CEO)가 건넨 조언. 임 선수는 “바람 신경 쓰지 말고 페어웨이 한가운데로 공을 보내는 데 집중하라”고 했고, 마허 CEO는 “절대 길게 치지 마라. 짧게 쳐서 오르막 퍼팅을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렇게 1번홀(파4) 티박스에 올라섰다. 세계 랭킹 50위 이내 선수만 오를 수 있는 티박스에 선 게 믿기지 않았다. 기자가 선 곳은 선수들이 친 ‘마스터스 티’(445야드·407m)가 아니라 아마추어 회원들이 치는 ‘멤버 티’(365야드·333m)였다.

따뜻한 기온(섭씨 25도), 잔잔한 바람,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날씨는 완벽했고, 동반자(AP통신, 게티이미지, 영국 더선 기자)들도 상냥했다. 티를 던져 순서를 정했는데 마지막 타자가 됐다. 1~3번 타자들의 티샷은 모두 페어웨이를 지키지 못하고 좌우로 흩어졌다. 순간 눈동자 14개(동반자 3명, 캐디 4명)가 일제히 기자를 향했다. 링 위에 선 복서마냥 시야가 좁아지고 숨이 턱 막혔다. 왼쪽 볼엔 작은 경련이 일었다.

두 번 연습 스윙을 한 뒤 자세를 잡았다. “레츠 고, 존(기자의 영어 이름)!” 윌 그레이브스 AP통신 기자의 응원 소리가 들렸다. 최대한 힘을 빼고 허리를 돌렸다. ‘땅!’ 클럽 헤드가 공을 맞히는 소리는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꿈의 라운드가 시작됐다.

평균타수 90…비거리는 200m
5%의 사나이 조희찬

전 세계 기자 500명 중 28명만이 당첨. 5% 확률의 라운드 기회를 얻은 조희찬은 11년차 아마추어 골퍼이자 8년차 골프 기자다. 박인비, 리키 파울러와 같은 1988년생이다. 로리 매킬로이보다 한 살 형이다. 키 182㎝, 몸무게 100㎏으로 임성재(183㎝, 90㎏)보다 조금 더 무겁다. 평균 비거리는 200ｍ. 핸디캡은 +18로 ‘보기 플레이어’다. 라이프 베스트는 81타. 오거스타GC 라운드 기회를 얻기 전까지 가장 좋은 ‘뽑기’ 성적은 로또 4등(5만원)이었다.

골프 기자로서의 목표는 두 가지다. 타이거 우즈 단독 인터뷰와 30년 뒤에도 골프 기자를 하는 것이다.

▶(2회)양탄자 잔디, 유리알 그린에서 계속

오거스타(미국 조지아주)=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