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프리즘] 조세당국, 인플레이션 즐기나

입력 2022-04-21 17:25   수정 2022-04-22 00:20

인플레이션(지속적 물가 상승)에 본격 주목한 경제학자는 존 베이츠 클라크였다. 40세 이하 젊은 경제학자 중 탁월한 성과를 낸 사람에게 주는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 명칭으로 길이 남은 바로 그 학자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였던 그는 1895년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실질금리 개념을 소개하는 논문을 썼다. 조지 애컬로프와 로버트 실러는 공저 《야성적 충동》에서 클라크의 논문 이후 경제이론의 세계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평가했다.

금리는 명목금리와 실질금리로 구분된다. 은행에 3%의 이자를 받기로 하고 1년간 돈을 맡겼다면 연 3%는 명목금리다. 올해 물가상승률이 4%라면 실질금리는 연 -1%가 된다. 통상 시장금리는 물가상승률과 실질성장률의 합으로 계산된다. 만약 올해 인플레이션율이 4%이고 실질성장률이 2.5%라면 연 6.5% 안팎에서 시장금리가 형성돼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이론상이다.

그런데 이처럼 경제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인플레이션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한국 조세당국이다. 물가가 오르건 말건 수십년간 과세표준과 세율이 그대로인 세목이 수두룩하다.

상속세가 대표적이다. 상속세는 과표를 기준으로 30억원까지 10~40%의 세율을 적용하고 30억원을 초과하면 50%를 매긴다. 공제는 일괄공제 5억원과 기초공제 및 그 밖의 인적공제 중 큰 금액을 적용한다. 문제는 이 과표와 세율, 공제가 2000년부터 그대로라는 점이다.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7.3%다. 올해는 4% 안팎 더 오를 전망이다. 인플레이션 여파로 상속재산 금액이 커진 만큼 조세당국은 세금을 더 가져간다. 조세당국이 사실상 인플레이션을 즐기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과거 상속세는 그야말로 부자들만의 세금이었는데 이제 서울에서 웬만한 집 한 채 가진 중산층도 대상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근로소득세도 마찬가지다. 근로소득세의 분기점은 과표 8800만원이다. 8800만원 이하는 6~24% 세율이, 그 이상에선 35~45% 세율이 매겨진다. 8800만원 이하 구간의 세율은 2010년부터 변동이 없다. 2010년 이후 지난해까지 소비자물가가 22.9% 올랐다는 점을 감안하면 과표 구간과 세율을 그대로 둠으로써 조세당국은 중산층과 저소득층에서도 사실상 증세를 이뤄냈다.

증세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예를 들어 살펴보자. 2009년에 과표가 4500만원인 근로자가 있다고 치자. 이 근로자가 받는 연봉이 12년간 소비자물가 상승률만큼 높아졌다고 하면 2021년 과표는 5530만원(만원 아래는 절사)이 된다. 이 근로자의 2009년 근로소득세는 567만원이었는데 2021년엔 805만원으로 치솟는다. 증세 폭은 42%에 이른다. 인플레이션율만큼 임금이 늘어 실질소득이 증가하지 않았는데 정부가 238만원을 사실상 강탈한 것이다. 그 여파로 가처분소득이 줄어든다.

다음달 10일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는 세제에 대해선 명확한 공약을 내세우지 않았다. 하지만 윤 당선인은 작은 정부와 시장 주도 성장을 강조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이 세 부담을 낮추는 것이다. 세금을 거둬 정부가 쓰는 것보다, 세금을 덜 낸 가계와 기업이 지출을 늘리는 것이 경제에 더 좋다.

당장 손봐야 하는 세제는 상속세와 증여세다. 중산층에까지 상속세를 물리는 것은 과하다. 세율은 그대로 두되 과표 구간을 상향할 것을 제안한다. 20% 세율 구간을 과표 1억~5억원에서 1억~10억원으로, 30% 세율 구간을 5억~10억원에서 10억~20억원, 40%는 10억~30억원에서 20억~50억원, 최고 세율인 50%는 50억원 이상으로 높이는 게 그간 방치돼 온 상속세를 정상화하는 방법이다. 근로소득세 역시 같은 방법으로 고칠 수 있다. 줄어드는 세금은 소비 확대에 따른 부가가치세 증가로 만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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