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흥선대원군은 아들인 고종이 즉위하자 왕권 강화를 위한 조치를 시행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임진왜란 때 타버린 경복궁을 중건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돈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은 재정이 고갈된 상태였죠. 농민의 삶은 피폐했고, 지배층의 부패가 심해 세금을 늘리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당백전’(사진)이라는 화폐의 발행이었습니다. 흥선대원군은 기존에 유통되던 ‘상평통보’에 더해 당백전을 함께 발행했습니다. 당백전은 이름대로 명목가치는 상평통보의 100배였지만, 실제 가치는 5~6배에 불과했습니다. 당백전은 처음 6개월 동안 1600만 냥이 풀렸습니다. 당시 상평통보 유통량이 당백전 유통량보다 적었기 때문에 단기간에 어마어마한 현금이 풀린 것을 의미하죠.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상대적으로 가치가 높아진 상평통보는 시중에서 사라지고, 막대하게 풀린 당백전의 화폐가치는 계속 하락했습니다. 이는 인플레이션을 의미합니다. 1866년 쌀 한 섬에 7~8냥 하던 것이 2년 후에는 여섯 배나 폭등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악화는 실제 가치가 낮은 것, 양화는 실제 가치가 높은 것이죠. 조선의 사례에서는 당백전이 악화, 상평통보는 양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백성들은 악화인 당백전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백전의 가치는 더욱 하락했고, 물가가 올라 백성들의 생활은 더욱 어려워졌죠. 흥선대원군이 당백전을 발행해 자금을 마련하려던 계획은 결과적으로 국가 경제에 큰 피해를 주며 1년도 안 돼 주조를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잘못된 정책으로 화폐의 신뢰가 떨어지면 의도한 정책목표를 달성하기는커녕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는 게 당백전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정영동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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