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108번뇌'와 '처럼회'

입력 2022-04-24 18:01   수정 2022-04-25 00:17

2004년 17대 총선의 키워드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이었다. 그 바람을 타고 열린우리당이 과반 압승(152석)을 거뒀다. 당선자 중 108명이 초선이었다. 대부분이 386 운동권 출신인 이들을 ‘탄돌이’라고 불렀다. 고(故) 노회찬 의원은 “(386들이) 길 가다 지갑을 주웠다”며 운동권 출신들이 당시 얼마나 쉽게 여의도에 입성했는지를 빗댔다.

탄돌이들의 위세는 대단했다. 여당 의원 모임에서 한 재선 의원이 “초선들 군기를 잡겠다”고 하자 “군기 잡겠다는 사람의 귀를 물어뜯겠다”고 대들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당 지도부도 쩔쩔맸다. 당시 이부영 당 의장(대표)과 천정배 원내대표는 국가보안법과 사학법 개정안 등 이른바 ‘4대 개혁 입법’을 추진했다. 국가보안법은 여야 합의로 독소 조항을 없애는 개정안까지 마련했다. 그러나 ‘폐지’를 고집하는 탄돌이들의 반발에 부딪혀 결국 국가보안법 개정이 무산됐다. 지도부가 그 책임을 지고 동반 사퇴했다. 108명의 ‘좌충우돌’ 초선들은 국정 현안에 강경책만 고집하다 당의 단결과 집중력을 떨어뜨린다고 해서 ‘108번뇌’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이후에도 이라크 파병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 굵직한 현안마다 반기를 들며 당을 뒤흔들었다. 열린우리당은 결국 18대 총선에서 의석수가 반토막(81석) 나며 참패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에 ‘108번뇌’ 트라우마가 소환되고 있다. 이대로라면 초선 강경파에 끌려다니다 자멸한 열린우리당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는 우려다. 그 중심에 ‘처럼회’가 서 있다. 처럼회는 2020년 6월 당내 초선들이 모여 만든 ‘행동하는 의원모임 처럼회’의 준말이다. 최강욱 김남국 김용민 등 친(親)이재명계 의원이 주축인 10명 안팎의 소모임이다. 그러나 이들은 강경파 당원들의 ‘문자폭탄’을 무기로 대선 후 권력 공백기를 틈타 171석 거대 여당의 핵심 세력으로 떠올랐다. 이들은 대부분 검찰 피의자 신분임에도 불구, 당내 반발 여론을 짓누르고 ‘검찰 힘빼기 입법’(검수완박)을 밀어붙여 여야 합의안까지 만들어냈다. “지금은 ‘처럼회’가 민주당”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가 21대 총선 직후 180명의 당선자 전원에게 ‘108번뇌의 교훈을 잊지 말자’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게 불과 2년 전이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면 어떤 결론에 이를지는 불문가지다.

박수진 논설위원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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