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MR이 들리는 동네로 이사한 뒤… [다니엘 튜더의 마음수업]

입력 2022-06-21 10:12   수정 2022-06-21 10:13



[한경잡앤조이=다니엘 튜더 마음수업 공동대표] 나는 오디오 기반 명상앱 ‘코끼리’의 공동 설립자 중 한 명이다. 명상, 수면, 심리, 음악 4개의 카테고리를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이 명상앱의 가장 인기 있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자연의 소리’다. 나뭇잎이 바람에 나부끼는 소리,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 지저귀는 새소리, 부서지는 파도 소리와 같은 ASMR 콘텐츠가 인기다. 나는 이런 현상을 보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잠이 오지 않거나, 공부나 업무 등 집중이 필요할 때, 심지어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도 자연의 소리에 도움을 받는다는 것을 알았다.

2년 전 나는 낭만과 운치가 있는 동네로 이사했다. 여기서는 잠깐의 산책에도 이 모든 소리를 무료로 들을 수 있다. (물론 파도 소리는 들을 수 없다) 지하철역도 멀고, 프렌차이즈 음식점도 없고, 큰 아파트 단지도 없는 데다 언덕도 많다. 친구들에게 처음 이 동네로 이사하겠다고 했을 때 다들 첫 반응은 “불편하지 않을까”였다. 아니면 “그 동네 운치 있고 좋지만 나는 못 갈 것 같아”라는 반응이었다.

물론, 그들의 반응처럼 이사한 동네는 불편하다. 콜라 한 캔을 사기 위해 15분 동안 걸어야 하지만 이러한 불편함은 기꺼이 감수할 수 있을 만큼 좋은 점이 훨씬 많다. 그중 최고는 자연과 가까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언제든 고개만 돌리면 산을 볼 수 있고, 개울물 소리도 들을 수 있으며, 여름에는 나무 그늘에 앉아 쉴 수도 있다. 시야를 가리는 고층건물은 우리동네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우리는 자연과 거리가 먼 환경을 만들어놓고 막연하게 자연을 사랑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환경은 편리함은 극대화하고 출퇴근이나 가사 일처럼 일상적인 일의 속도는 늦춰지게 만든다. 게다가 효율성, 일 중독, 경쟁이 우선시 되는 사회에서 도시적인 것을 우선시하지 않는다면 아방가르드 하거나 구식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동네로 이사한 건 신의 한 수였다. 자연과 함께 생활하면서 나는 내가 체감할 수 있을 만큼 행복해졌고 스트레스도 줄었다...고 믿는다. 숙면을 취하면서 마음이 평온해졌다. 조금 높았던 혈압도 정상 수치로 돌아왔다. 내 경험뿐만이 아니다.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사는 것이 인간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많은 연구결과가 뒷받침한다. 런던대 경제학자의 Mappiness 프로젝트는 2만 명의 이상의 참여자들에게 그들의 감정 상태를 하루에 두 번 앱에 기록하게 했고, 연구가 진행되는 동안 참여자들의 위치를 GPS를 기반으로 기록했다. 참여자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분석한 결과(만약 해변에 누워 있다면, 당신은 아마 휴가 중일 것이며, 평소보다 더 행복할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행복은 자연 속에서 더 크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것이 그들의 연구 제목 Mappiness (Map+Happiness) 다. 구체적으로 인간은 물 근처에서 가장 행복감을 느끼며, 언덕에서도 꽤 행복을 느낀다. 나는 이 결과와 ‘배산임수’라는 사자성어가 나오게 된 배경이 같다고 생각한다.

Mappiness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나 살고 싶어 하고 또 거주하려면 많은 돈을 써야 하는 도시에서 가장 행복하지 않다. 이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도시 환경은 인류 역사상 비교적 새로운 것이다. 1800년까지만 해도 3%의 사람들만 도시에 살았다. 현재는 도시에 사는 사람이 근소하게 많지만 2050년에는 인구의 2/3가 도시에 살 것이다. 인간은 편의를 위해 도시를 만들었지만, 정작 도시에 맞춰 진화되지는 않았다. 현대에 와서 바뀐 식생활과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우리는 인간이 설계된 방식과 반대되는 삶을 살고 있다.

우리 모두 도시의 삶을 포기하고 농부가 되자고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상적이고 히피적인 편이지만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거주할 수 있어 감사하게 생각한다. 언덕배기에 있는 집에서 위로 올라가면 산이 있고, 아래로 내려오면 고층빌딩의 숲을 만날 수 있으며 수백만 명의 사람들과 같은 장소에서 문화적 혜택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익숙해진 ‘편리함’을 조금 희생하더라도 우리의 삶에 자연 친화적인 것을 더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믿는다.

최근 몇 년 동안 생물학자 EO Wilson이 발견한 ‘Biophilia(생명애)’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그는 인간은 자연에 대해 본능적으로 사랑을 느낀다고 믿었다. 우리 앱에서 자연 ASMR의 인기가 높은 것도 이 생물학자가 말하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내재된 사랑’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많은 도시가 이 연구를 바탕으로 친환경적인 설계를 추구한다. 건물에 식물, 나무 빗물 정원 그리고 더 많은 자연광을 들이고, 도시 면적 중 더 많은 땅을 공원 조성을 위해 확보하고 있다. 이런 것들은 비용이 들 뿐 아니라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편리함을 위해서도 비용이 드는 건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 편리함을 위해 이미 너무 많은 것을 희생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다니엘 튜더(Daniel Tudor)는 2010년 이코노미스트 한국특파원으로 한국에 온 후 정착해 피자펍 ‘더부스’를 설립하고, 대통령비서실 정책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현재 ‘코끼리’의 공동 창업자로 팀원들과 함께 이용자들이 셀프 멘탈케어를 할 수 있도록 명상,수면 등 다양한 오디오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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