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장수 총리인 아베 신조 집권기에 ‘관제 춘투’라는 말이 유행했다. 정부 주도의 춘계 임금 인상 투쟁을 말한다. 2012년 집권에 성공한 아베 총리는 연초 경제계를 만날 때면 어김없이 임금 인상을 압박했다. 2013년엔 ‘3%대 인상’이란 수치까지 제시했다. 명분은 탈 디플레이션이었다. 임금 인상으로 소비가 늘고 물가가 오르면 경제도 선순환으로 전환할 것이란 기대다.하지만 아베 집권 9년간 임금은 기대와 달리 움직였다. 일본의 평균임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최하위권으로 떨어졌다. 일본 경제도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지난 1분기 국내총생산(GDP)은 두 분기 만에 마이너스로 전환했고 엔화 가치는 최근 24년 내 최저치로 곤두박질쳤다. 한때 세계 2위였던 1인당 GDP는 지난해 28위로 추락했다.
물가 관리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경제 수장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재무관료 출신으로 경제 생리를 잘 알고 있는 그가 할 말은 아니다. 더구나 노동계 간담회도 아니고 경총에서라면 더욱 부적절하다. 실업률과 임금(물가)이 반비례 관계(필립스곡선)라는 건 경제학의 기본이다. 임금은 올리란다고 올리고 내리란다고 내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노동의 수요와 공급, 생산성에 따라 노사 자율로 정해져야 한다.
임금을 무턱대고 올리는 기업도 없다. 추 부총리가 콕 찍은 ‘IT’와 일부 ‘대기업’은 사람을 못 구해 난리인 곳이다. 전문 인력은 급여가 기대에 못 미치면 다른 회사로, 심지어 해외로 떠난다. 소위 개발자들이 그렇고 반도체·배터리·인공지능(AI) 인력 상황이 그렇다. 삼성전자, LG전자, 네이버, 카카오 등이 10% 안팎의 임금을 올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기업마다 특수한 사정도 있다. 대한항공은 총액 기준 임금을 10% 올리기로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 2021년 임금을 동결했다가 3년 만의 인상이다. 당장 “이제 좀 살만해 돈 좀 더 준다는데 그걸 말리냐”는 얘기가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를 35번 언급하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강조했다. 한 달여 만에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관치의 기운은 정부 국정운영 철학을 의심케 한다. 물가를 잡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정부가 할 일은 규제 철폐다. 최근 만난 한 기업 총수는 “윤 대통령 말마따나 그는 정치 신인이고 부채도 없는데, 공무원은 여전히 ‘관치 습성’을 못 버린 것 같다”고 했다. 이 말이 기우에 그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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