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대형마트에선 설익고, 밍밍한 토마토를 팔까.’
강원도 화천에서 ‘안스퓨어팜’을 운영하는 안수민 사장(63·사진)의 고민은 여기서 시작됐다. 대형마트 등 오프라인 채널에서 판매하는 토마토는 대부분 덜 익은 상태에서 수확한다. 완전히 익은(완숙) 토마토는 대개 산지에서 출발해 소비자에게 도착하는 동안 물러지기 때문이다.
‘기존 방식으론 가장 맛있는 토마토를 팔 수 없다’고 생각한 안 사장이 완숙 토마토를 유통업체에 공급하기 시작한 건 2013년이었다. 유통기한이 짧아지더라도 가지에 끝까지 매달려 맛과 향이 최고로 올라온 토마토만 수확했다.
종전까지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캄파리 품종도 유럽에서 들여왔다. 캄파리 토마토는 방울토마토보다는 크고, 일반 토마토보다는 작다. 과육이 탄탄하고 맛이 진한 게 특징이다. 안 사장은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 ‘레옹’의 주인공 이름을 따 마틸다 토마토라는 브랜드명도 붙였다.
마틸다 토마토는 생산 초기 시장에서 외면받았다. 우선 대형마트 바이어들부터 완숙 토마토를 원하지 않았다. “가장 맛있는 상태의 완숙 토마토를 들고 가면 이것보다 덜 익은 토마토를 가져오라고 퇴짜 놓는 유통업체가 태반이었다”는 게 안 사장의 설명이다.
가까스로 매대에 올려도 이번엔 소비자들이 낯설어했다. 일반 토마토보다 두 배 이상 비싼 가격도 문제였다. 안스퓨어팜이 있는 화천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토마토를 나눠주는 등 직접판매에 나서면서 입소문이 나기는 했다. 하지만 수확량에 비해 수요가 턱없이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2015년만 해도 콜드체인 시스템을 활용한 컬리의 새벽배송은 낯선 개념이었다. 그런데도 안 사장은 컬리가 자신의 철학과 딱 맞는 업체라고 확신했다. 그는 “당시만 해도 컬리는 이름 없는 작은 회사였지만, 가장 맛있는 상태에서 수확한 토마토를 소비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판로였다”고 회상했다.
컬리의 새벽배송에 올라탄 마틸다 토마토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덜 익은 토마토에 익숙했던 소비자들은 완전히 익은 토마토가 자기 집 문 앞으로 배달된다는 사실에 열광했다. 안스퓨어팜은 지난해 마틸다 토마토를 팔아 컬리에서만 3억5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마틸다 토마토는 컬리 마니아들 사이에 ‘품절 토마토’로도 불린다. 새벽에 수확한 완숙 토마토를 다음 날 아침 소비자에게 전달하다 보니, 판매할 수 있는 수량이 넉넉지 않다는 한계가 있다. 주문 가능한 시간보다 '품절'이라고 공지된 시간이 더 많아 붙은 별명이다.
안 사장은 “새벽배송이라는 시스템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완숙 토마토의 대중화는 어려웠을 것”이라며 “물류·유통혁신이 과거엔 불가능했던 초신선식품의 공급을 가능케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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