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 전기차 충전기 설치하긴 했는데…" 한숨 내쉰 이유 [전기차 30만 시대(2)]

입력 2022-11-11 21:00   수정 2022-11-11 23:11


"의무 비율 맞추려고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하긴 했는데…"

서울의 한 아파트 관리자는 이같이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의무 설치 비율에 따라 전기차 충전 시설을 설치했지만, 만에 하나 화재가 발생할 경우 안전 문제에 대해서는 딱히 해법이 보이지 않아서다. 그는 "아파트 대표자들이 대책 사항을 논의하고 있지만 뾰족한 수가 없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정부가 전기차 충전소 의무 설치 비율을 올림에 따라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기 설치 문제를 두고 갈등을 빚고 있다. 과충전 시 발생할 수 있는 전기차 화재 가능성 때문이다. 전기차 화재의 경우 내연기관차보다 진화가 어렵다 보니 우려가 커지고 있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전기차 충전시설 설치 비율을 신축은 총 주차대수의 5%, 기축은 주차대수의 약 2%를 신설하도록 강화했다. 아파트 100세대 이상, 공중이용시설이나 공영주차장은 50면 이상이면 충전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단 기축 시설에 대해서는 준비기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최대 4년까지 유예기간을 적용했다.
지하주차장 설치 아니면 답이 없는 실정
정부가 충전소 설치 의무 비율을 높임에 따라 대다수 전기차 충전 시설은 지하에 설치되고 있다. 지상에 대규모 충전 시설을 마련할 부지를 선정하기 어려운 게 이유다. 단독 주택보다는 아파트 거주가 일반화돼 있어 전기차가 접근하기 쉽고 입지가 양호한 장소로 지하주차장만 한 곳이 없는 현실적 이유도 있다.

문제는 '안전'이다. 전기차는 화재시 불이 순식간에 확 붙는 '열폭주' 현상이 발생해 내연기관차보다 불길을 잡기 어렵다. 현재 전기차 배터리는 리튬이온 배터리가 주를 이루는데, 충전과 방전을 거듭하면서 외부 충격이나 압력 등 문제가 생기면 불이 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기가 빠지기도 어렵고 차들이 빽빽하게 주차돼 2차 사고 등 대형 화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지하 전기차 충전시설 설치에 걱정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아파트단지 내 갈등이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 충전소 부지를 선정할 때 입주자대표회의나 관리운영단 등의 부지 사용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이때 주민들이 전기차 충전 시설 설치를 반대하며 관리사무소 등에 항의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선 화재시 위험하니 전기차 충전기는 무조건 지상으로 빼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처럼 상황이 돌아가다 보니 전기차 차주들도 충전이 어려워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공학부 교수는 "전기차는 내연기관차와 같이 주유소에서 몇 분 만에 주유를 끝내는 시스템이 아니라 완충해야 하는 구조"라면서 "더욱이 미국 등과 달리 아파트 거주가 일반화된 우리나라는 대부분 주차장이 지하에 있기 때문에 모든 전기차 충전을 지상화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과도한 불안감보단 안전규제 마련 '필수'
전문가들은 전기차 화재에 대한 과도한 불안감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전기차 화재 비율이 내연기관차보다 월등히 높은 것도 아니다.

소방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기차 화재 발생 건수는 23건, 내연기관차 화재 발생 건수는 4488건이었다. 같은 기간 국토교통부의 자동차 누적 등록 현황 기준 내연기관차 등록 대수는 2338만2015대, 전기차가 13만4962대임을 고려하면 화재 발생 비율은 전기차 0.017%, 내연기관차 0.019%다. 통계적으로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보다 화재 발생 위험이 높은 건 아니라는 얘기다.

전기차 화재 발생시 진압 매뉴얼도 최근 만들어졌다. 전기차 종류별로 화재 발생시 대처 방안까지 마련돼있다. 효율적 전기차 화재 진압 방법을 찾기 위해 최근 소방당국은 '이동형 수조' 시제품에 대한 실물 화재 진압 시험을 진행하기도 했다.

다만 전기차 화재시 내연기관차보다 불길을 잡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전기차 충전시설을 넓은 공간에 마련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지하주차장 등 좁고 밀폐된 공간에서의 전기차 화재로 인한 인명 피해를 미연에 방지하려면 현실적 대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선 전기차 충·방전 설비의 안전관리 강화 필요성이 거론된다.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전기안전공사에서 제출받은 전기차 충·방전 설비 안전관리 개선방안 연구자료에 따르면 전기차 충전시설 점검 대상 5483개 가운데 337곳(6.1%)이 접지 불량 등의 사유로 부적합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부분의 충전 시설에는 소화 시설 설치 규정이 미비한 것으로 조사됐다. 충전기 강제 정지 기능이 없어 안전에도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충전기 커넥터와 부품은 방수가 되지 않기도 했다.

구 의원은 "초동 화재 대처를 위한 금속 소화기 배치를 의무화하고 충전 전원 긴급·강제 정지 기능을 의무화해야 한다"면서 "전기차 본체 외 커넥터와 부품 등의 방수 보호 등급 적용이나 전기차 충전 설비 법정 검사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필수 교수도 "충전기나 전기차 안전기준 강화가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며 "가령 전기차 충전시 배터리 과열 조짐을 보이면 경보할 수 있는 시스템 등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전기차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보다는 안전기준부터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최수진 한경닷컴 기자 naiv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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