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필이 빚어낸 관(管)과 현(絃)의 '환상 하모니'[송태형의 현장노트]

입력 2022-11-04 17:12   수정 2022-11-04 19:22


오케스트라의 한자어는 관현(管絃)악단 또는 교향(交響)악단입니다. 두 단어의 한자 뜻을 함께 모아 오케스트라를 설명한다면 관악기와 현악기의 음향을 서로 어울리게 울리는 단체입니다.
3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오스트리아 지휘 거장 프란츠 벨저-뫼스트가 이끄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빈필)는 관악기와 현악기, 타악기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울리는 음악의 한 정점을 보여줬습니다. ‘2022 빈 필하모닉 내한공연’의 첫날 공연 현장입니다.

본 공연에 앞서 특별 연주곡으로 현악 파트가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가 연주됐습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애도하기 위한 곡입니다. 고요하고 가녀리게 흐르는 아름다운 현악 선율에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단원 대표인 다니엘 프로샤우어 제1 바이올린 수석의 사전 제안에 따라 연주가 끝난 후 관객은 박수를 치지 않았고, 지휘자와 단원들은 모두 약 1분간 눈을 감고 묵념을 올렸습니다.

숙연한 분위기 속에 1부 프로그램 연주가 시작됐습니다. 바그너의 ’파르지팔‘ 전주곡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죽음과 변용‘입니다.두 곡을 끊김 없이 마치 한 곡처럼 이어 연주한 게 특이했습니다. 전주곡의 ‘성배’ 모티브가 점점 여리게 끝맺자마자 마치 악보에 ‘아타카(attacca)’라도 쓰여 있는 것처럼 ‘죽음과 변용’의 여린 ’죽음의 모티브‘가 이어졌습니다. 두 작품의 주제의식과 악기 편성, 두 작곡가의 관현악 어법이 비슷해서 그런지 절묘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음과 변용’에서 벨저-뫼스트와 빈필은 진가를 드러냈습니다. ‘파르지팔’ 전주곡 연주가 평범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죽음과 변용’ 연주가 비범했습니다. 벨저-뫼스트는 공연 약 한 달 전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 이 곡과 빈필 간 특별한 인연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지휘자로서 이 곡을 빈필과 연주했다”며 “이 작품을 빈필의 사운드를 염두에 두고 작곡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슈트라우스 전문가’로 꼽히는 벨저-뫼스트는 죽음을 목전에 둔 환자의 가쁜 숨결을 특유의 다채로운 관현악 어법으로 악보에 옮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음향 세계를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멋들어지게 ’빈필 사운드’로 연출해냈습니다. 독주 악기와 오케스트라 간, 독주 악기 간, 악기 파트 간, 악기 전체가 울리는 총주 등 거의 모든 ‘교향(交響)’에서 탁월했습니다. 특히 서주 라르고에서 환자의 어린 시절을 표현하는 듯한 독주 선율을 오보에에 이어 바이올린이 연주할 때 이 선율과 함께 어우러지는 바순 선율의 합이 숨막힐 듯 아름다웠습니다. 빈필 최초의 여성 악장 알베나 다나일로바의 표현력과 ‘33년차 첼로 수석’ 하랄트 뮐러의 관록이 합해진 결과입니다.

죽음과의 투쟁이 본격적으로 이뤄지는 제시부와 발전부에서는 호른과 트롬본 등 금관 파트가 황금빛 사운드’를 주도했습니다. 20년 이상 경력의 베테랑 수석들의 활약이 돋보였습니다. 과감하게 휘몰아가는 벨저-뫼스트의 극적인 표현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현악의 힘차고 빠른 트레몰로 화음에 맞춰 금관을 비롯한 모든 관악기들이 ‘정화’의 모티브를 일제히 뿜어내는 하이라이트에선 압도적인 ‘빈필 사운드’의 전율을 느끼게 했습니다.

2부에서 벨저-뫼스트와 빈필은 기어를 바꿔 달았습니다. 무겁고 장중하고 숭고하기까지 한 1부 레퍼토리와는 결이 다른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8번을 연주하기 위해서입니다. 보헤미안 색채가 물씬 풍기는 활달하고 역동적인 교향곡입니다. 빈필의 ‘젊은 피’들로 채워진 목관 수석 진용이 눈에 띄었습니다. ‘다니엘 오텐잠머(클라리넷·36)-세바스찬 브라이트(오보에·24)-뤽 망홀츠(플루트·27)-루카스 슈미트(바순·27)’ 입니다. 10년차인 오텐잠머를 제외하고 모두 1~2년차 새내기들입니다.

드보르자크 8번에서도 모든 ‘교향’이 뛰어났지만 이들 젊은 목관 주자들이 특히 빼어났습니다. 목관 파트의 솔로나 듀오를 작품의 성격에 딱 맞는 음색과 음량으로 귀에 착착 들어오게 연주하면서도 도드라짐 없이 전체 오케스트라 음악 속에 유기적으로 녹아들게 했습니다. 거의 한몸처럼 리드미컬하게 움직인 오텐잠머와 안드레아 괴츠의 클라리넷 듀오는 보는 즐거움과 함께 유연하고 섬세한 다이내믹(셈여림) 및 완급 조절로 오케스트라와 하나 되는 연주를 들려줬습니다. 커튼콜에서 벨저-뫼스트가 이들 ‘클라리넷 남매’를 가장 먼저 일으켜 세운 이유입니다.

악장 다나일로바를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1부보다 더 적극적인 동작과 뛰어난 연주력으로 템포와 강약을 주도했고, 현악 연주자들도 악장의 리드에 한결같이 반응했습니다. 180년 전통의 빈필이 ‘최고’의 지위를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는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연주였습니다.

앙코르로 빈필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동생인 요제프 슈트라우스가 작곡한 ’자이쎌른 왈츠‘를 들려줬습니다. ‘국가 애도 기간‘에 아무 설명 없이 흥겨운 빈 왈츠를 연주하는 게 신경 쓰였나 봅니다. 앙코르곡 연주 전에 벨저-뫼스트는 이례적으로 마이크를 잡고는 정중하게 말했습니다. “빈 왈츠는 그저 가벼운 음악에 그치는 게 아니라 빈의 영혼과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한국에 위로의 마음으로 이 곡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벨저-뫼스트와 빈필은 4일 둘째 날 공연에서는 전날과 전혀 다른 색채의 프로그램으로 관객을 맞이합니다. 1부에서는 브람스의 ‘비극적 서곡’과 교향곡 3번, 2부에서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들려줍니다. 이들이 모두 장기로 삼고 있는 곡들이어서 전날 못지않은 ‘교향’을 만들어낼 것으로 기대됩니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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