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고대생도 막걸리 안 마셔"…대학가 풍경 확 바뀐 이유

입력 2023-03-01 08:59   수정 2023-03-01 19:11


코로나19로 만 3년이 지나는 동안 서울 신촌 등 대학 주변 상권은 그야말로 ‘자영업자들의 무덤’이었다. 학생들이 떠나고 거리가 텅 비어 폐점하는 가게가 속출했다.

그랬던 대학상권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캠퍼스 문이 활짝 열리고 경제활동이 코로나19 이전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활발해졌다. 대신 ‘간판’은 확 바뀌었다. 터줏대감이었던 술집들이 쓸려나가고 그 자리를 무인카페, 무인사진관 같은 ‘무인점포’들이 차지했다.

1일 ‘한경·비씨카드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서울시내 5개 대학(서울대·연세대·고려대·한양대·숙명여대) 주변상권의 지난해 비씨카드 가맹점 매출은 2019년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지하철 서울대입구·신촌·안암·왕십리·숙대입구역 1㎞ 이내에 위치한 상점의 비씨카드 매출은 2019년 대비해 4~15% 늘어났다. 2020년과 2021년엔 2019년의 80%까지 떨어졌다.

대학가의 상징이었던 술집·분식집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무인점포들이 들어선 건 코로나19 3년이 가져온 변화다. 대면모임에 스트레스를 받는 대학생들이 모연서 각종 모임이 사라져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매출이 90% 줄었다”(고려대 앞 A주점)는 점포도 있다. 숙명여대 앞에서 43년 동안 순두부로 명성을 얻었던 분식집 ‘선다래’는 지난해 말 폐점했다.

이에 따라 대학상권 자영업자들은 무인화 기기에 익숙한 대학생들을 겨냥해 인건비 등을 대폭 줄일 수 있는 무인점포 창업에 속속 나서고 있다. 최근 신촌의 무인주점 ‘파라삐리포’를 연 손성태 대표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신촌의 경우 임대료가 한창때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무인 매장을 열면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몇몇 자영업자들은 주 타깃을 대학생에서 인근 주민으로 아예 바꿨다. 임대료가 비싼 대학 주변 핵심상권을 빠져나와 변두리로 가게를 옮긴 뒤 배달 전문으로 가게를 운영하는 식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코로나19가 촉발한 대학가 음주문화 변화, 인구감소 등의 요인으로 대학주변 상권의 축소, 혹은 슬럼화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위기의 대학가 술집

“코로나19가 대학가 풍경을 확 바꿔놨어요. ‘사발식’은 석기시대 화석이 돼 버렸습니다.”
2005년부터 서울 안암동 고려대 서울캠퍼스 앞에서 대형 호프집 ‘춘자’를 운영해 온 장현웅 대표(50) 얘기다. 2020년 코로나19 창궐 후 만 3년이 지나면서 대학가 인근 술집들은 존폐 위기를 겪고 있다. 장 대표는 “코로나 사태 전에는 대학생 열댓 명이 우르르 몰려드는 게 일상이었다”며 “가게 곳곳에서 ‘막걸리 찬가’를 부르는 학생들 때문에 귀가 아플 정도였는데, 최근 몇 년 동안은 개강총회가 사라지면서 들을 일이 없었다”고 했다.

1일 한국경제신문이 연세대, 고려대, 건국대 등 서울시내 주요 대학 상권을 취재한 결과 아예 업종을 전환하거나 배달영업 등을 병행하는 술집이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점들이 매출 감소를 견디지 못하고 줄줄이 문을 닫은 자리엔 요즘 대학생에게 인기가 많은 무인 사진관, 카페 등이 들어서고 있다.

연세대 앞 신촌 거리는 유동인구가 급감하면서 신촌역 2번 출구부터 연세대 정문까지 이어지는 연세로 주변 61개 점포 중 17개가 공실이었다. 연세로는 명실상부한 신촌의 핵심 상권이다. 신촌 L공인중개 대표는 “예전처럼 마셔라 부어라 하는 문화가 사라졌다”며 “음식점과 술집이 많았던 상권은 자연스럽게 쇠퇴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대문구는 신촌역 주변을 활성화하기 위해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간 연세로에 적용해온 ‘차 없는 거리’ 정책을 지난달부터 오는 9월까지 일시 중단했다. 고질적 주차난을 해소하고 업종 다변화를 유도하려는 목적이다.

시행 초기이긴 하지만 죽어가는 상권을 살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게 이곳 상인들의 평가다. ‘20년 원조 감자탕’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자동차가 다시 다닌 뒤로도 사람이 늘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성동구 한양대역 인근 ‘나그네 파전’은 단체 손님을 받던 지하 1층 문을 닫고 물품을 보관하는 창고로 사용하고 있다. 주인 김모씨는 “지하 1층 50석은 창고로 쓰고, 이제 단체 손님은 받지 않는다”며 “코로나 이후 포장이나 배달 주문이 늘어나 그쪽으로 전문화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무인점포 급증
코로나 3년을 버틴 자영업자들은 외식업이라는 틀 안에서 다양한 생존 시도를 하고 있다. 밥과 커피, 간식, 술을 함께 파는 가게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화양동 건국대 인근 슈펴형 가맥집(가게맥줏집) ‘화양슈퍼’가 그렇다. 레트로(복고)풍 슈퍼마켓 간판을 단 이곳은 낮에는 커피, 분식 등을 팔다가 밤에는 주점으로 변신한다.

특히 무인점포는 막을 수 없는 대세가 됐다. 연세로의 경우 2020년 이후 26개 점포가 업종을 전환했다. 이 가운데 10개가 무인사진관으로 바뀌었다. 신촌에서 1년4개월째 무인사진관을 운영 중인 강모씨(60)는 유동인구 감소로 외식업에 한계를 느껴 무인사진관으로 업종을 변경했다. 그는 “무인사진관은 인건비가 들지 않아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데다 유지보수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업종다변화 유도 모색해야”
서울대 주변 봉천동 ‘샤로수길’에도 지난해 11월 이후 7개 무인매장이 들어왔다. 이곳 대왕부동산의 김서연 대표는 “금리가 부담스러운 수준으로 오르니 인건비가 적게 드는 무인 매장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불러온 대학가 문화 변화, 인구 급감 등의 요인으로 대학생만 바라보는 외식업 중심의 상권 쇠퇴는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 상권 슬럼화를 막으려면 보다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남들 다하는 무인점포 창업에 우르르 나서기보다 지방자치단체는 지구단위계획 변경 등을 통해 업종 다변화를 유도하고, 상인들도 학생 외 계층까지 유입시킬 수 있는 다양한 마케팅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정철/안정훈/최해련 기자 bj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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