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과 해고, 혼인계약과 근로계약

입력 2023-03-28 15:54  


과거에는 회사를 그저 직장이 아닌 ‘제2의 가족’이라고 부른 적이 있었다. 외환위기 이후 종신고용이 사실상 해체되면서 이와 같은 표현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사회생활을 하는 대부분의 인간관계가 가족과 회사동료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점에서 ‘일터’와 ‘가정’은 한 사람의 인생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이고, ‘근로’관계는 ‘부부’관계와 비교되는 측면이 있다.

법적으로 살펴보더라도 근로계약 관계와 혼인계약 관계는 유사한 측면이 있다. 두 계약은 자신의 의사에 의해 결정되고 인간관계를 창설하는 계약이다. 혼인계약이 가족관계를 창설한다면, 근로계약 역시 노동법적인 관점에서 사용종속관계를 창설한다.

이와 같은 유사점이 있어서 그런지 근로계약과 혼인계약은 그 해소도 쉽지 않다. 근로계약은 '사회통념상 근로자와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근로자에게 책임 있는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해소가 가능하며(대법원 2002. 5. 28. 선고 2001두10455 판결 등 다수), 혼인계약 역시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민법 제840조)가 있어야 이혼이 가능하고,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는 제한하고 있다(대법원 2015. 9. 15. 선고 2013므568 판결). 이와 같은 이유로 실제로 해고소송과 이혼소송을 진행하게 되면, 요건사실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일반 민사소송과 달리 상대방이 온갖 비행을 끄집어 내어 다투는 ‘이전투구(泥田鬪狗)’ 방식으로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근로계약과 혼인계약은 본질적으로 같은 점보다는 다른 점이 많다. ‘부부관계’는 공동사회(Gemeinshaft)에 해당하고, ‘근로관계’는 이익사회(Gesellshaft)에 해당한다. 즉, ‘부부관계’는 비록 남남으로 만났지만 가족이 되어 이제 남남이 아니게 된 관계이지만, ‘근로관계’는 처음부터 경제적 이해관계에 근거한 철저한 ‘남남’인 관계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 보면, 혼인과 마찬가지로 근로자의 종신고용을 바람직한 모습으로 설계한 현행 노동법제는 뭔가 어색한 느낌이 든다. 종신고용의 문제점이 지적돼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적시의 인력 조정 실패로 인한 기업의 경쟁력 약화라는 측면도 있지만 비정규직, 불법파견으로 대표되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화 역시 종신고용이 가져온 폐해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런 거창한 제도적인 문제를 상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실제 해고 사건을 경험해 보면, 현행의 해고법제에 대해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사용자와 근로자의 관계가 여러 사정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파탄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근로자의 귀책사유가 중대하지 않다는 이유로 부당해고로 판단된 경우들이 많다. 즉, 노동위원회와 법원은 오로지 근로자의 중대한 귀책사유가 있는지 여부만을 해고의 정당성 판단에 고려하고 있으며, 중대한 귀책사유가 없다면 원직복직을 할 것을 강제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해고 분쟁에 승소한 근로자들이 직장으로 복귀하는 경우 사용자와 근로자의 관계가 치유되어 원만한 관계로 돌아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는 마치 부부관계가 파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방 배우자가 이혼을 거부해 서로 괴로운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과 동일하다.

물론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거액의 합의금을 지급하며 사직합의를 시도할 수 있지만, 근로관계를 종료할 것인지는 근로자의 손에 결정된다. 근로자가 퇴직을 거부하는 순간 사용자는 해당 근로자와의 근로관계를 어쩔 수 없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부부관계야 자식을 양육해야 한다는 점에서 부부 사이에 갈등이 있다고 하더라도 국가가 쉽게 이혼을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치더라도, 사용자는 왜 이와 같은 상태를 강요받아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의 '이별'을 조금 더 쉽게 해 주는 것이 서로에게 좋은 방향이 아닐까. 따라서 해고가 부당한지 여부를 다투지 않고 근로자와 사용자 상호 간의 귀책사유에 따라 정해진 일정 보상금액을 지급하고 해고를 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해고보상금’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어떨까. 실제로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나라들에서는 이와 같은 ‘해고보상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제도에 대해 사용자에게 해고의 자유를 보장하는 해고자유법이 아니냐는 일부 노동계의 비판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차별이나 보복에 의한 해고 또는 부당노동행위에 의한 해고 등을 금지하고 ‘해고보상금’의 금액을 크게 설정한다면 근로자들이 우려하는 자유로운 해고를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사용자로서는 경제적인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더 이상 껄끄러운 근로자와 같이 근로를 하지 않게 됨으로써 경영상의 부담을 덜 수 있는 호혜적인 제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김종수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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